프롤로그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살아남은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의 자전적 수기 <죽음의 수용소에서>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나온다.
“한 가지만 당부하겠네. 가능하면 매일같이 면도를 하게. 유리 조각으로 면도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 때문에 마지막 남은 빵을 포기해야 하더라도 말일세. 그러면 더 젊어 보일 거야. 뺨을 문지르는 것도 혈색이 좋아 보이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지. 자네들이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어. 일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불쌍하고, 비실비실 거리고, 병들고, 초라해 보이는 사람들은 이른 시간 안에 가스실로 가게 될 거야. 그러니 명심하게. 늘 면도를 하고, 똑바로 서서 걸어야 하네. 죽음에의 선발을 두려워하지 말게.”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中)
아우슈비츠에서는 노동을 할 힘이 남아 있지 않으면 가스실로 보내졌다. 이 규칙을 안 사람들은 살아남겠다는 목적을 가졌고, 본능적으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았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면도를 하고, 혈색을 좋아 보이게 하여 다른 수용자들보다 건강해 보이게끔 한 것이다. 작가 본인을 포함한 위의 조언을 받아들인 수용자들은 상대적으로 ‘생산적인’ 사람으로 분류되어 가스실 행을 피할 수 있었다.
마케팅 이론 중에 ‘포지셔닝’이라는 이론이 있다. 시장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경쟁 브랜드들 사이에서 자기 브랜드만의 강점, 자기 브랜드를 선택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 소비자의 인식 속에 자리 잡는 전략이다.
학생 때 이 책을 읽었을 땐 ‘삶의 의미’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노력의 차이로 이해했다. 하지만 10년 차 AE가 되어 책을 다시 읽어보니 위의 조언이 묘하게 ‘포지셔닝’과 겹쳐 보인다.
살아남기 위해 1) 간수에게 2) 수많은 수용자들 가운데에서 3) 본인이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과정은
선택받기 위해 1) 소비자에게 2) 수많은 경쟁 브랜드들 사이에서 3) 몸부림치는 브랜드들과 닮아 있지 않은가?
단순히 내가 일할 수 있음을 말로 주장한 게 아니라, 다른 수용자들보다 더 건강해 보이기 위해 면도를 하고, 뺨을 문지르고, 고양이 세수를 하는 노력들은
브랜드들이 경쟁 브랜드들 사이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제품을 디자인하고, 컨셉을 고민하고, 광고를 만들어내는 과정과 겹쳐 보이지 않는가?
2020년 한 해에만 새로 생긴 국내 외식 업종에서 브랜드가 707개, 사라진 브랜드가 679개라고 한다. 한국 내 다른 업종에, 글로벌까지 확장하면 무수히 많은 숫자의 브랜드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시대이다. 실제로 광고회사의 AE로 10년을 보내면서 내가 경험한 브랜드들 중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사라진 브랜드들도 여럿 있다.
죽음의 수용소라는 극한의 상황과 직접 비교는 당연히 어렵지만,
마케팅이 전쟁에 곧잘 빗대어지고, 브랜딩이 실제로 브랜드 종사자들의 생업이 달린 활동임을 생각하면
수용소 안에서 생을 갈구하는 이들의 노력과 매일매일 TV와 유튜브, 내 SNS에 노출되어 클릭과 구매를 갈구하는 브랜드의 광고들은 닮은 부분들이 많다.
또 죽음의 수용소 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일매일 치열한 경쟁을 치러내는 현대인들의 삶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들이 많다.
이렇게 비교를 하다 보니, 포지셔닝이 단순히 마케팅, 광고 전략 중 하나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삶에 적용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써나갈 글을 통해 퍼스널 브랜딩의 관점에서, 광고/마케팅이 아닌 나의 일상에서, 포지셔닝의 필요성과 접목법을 하나하나 이야기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