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의 크리스마스 인 유럽
파리의 첫밤에 무슨 생각을 하다가 잠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았는지 일찍 눈이 떠졌다.
창밖으로 슬금슬금 동이 터오는 파리의 아침은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들의 분주함 속에서 활기가 느껴지고, 역시 눈앞에는 에펠탑이 보인다.
에펠탑 뒤쪽 먼 곳으로부터 동이 터오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모습에 자동적으로 카메라를 집어 든다.
창밖으로 내려다보면 볼수록 드는 생각은 이 도시에 에펠탑이 없었다면 참 많이 허전했을 것 같다는 거다.
셔터를 누르고 LCD 창에 뜬 사진 속에서 손가락으로 에펠탑을 가려보았다. 밋밋하다.. 도시가..
많은 곳을 둘러보고 많은 것을 눈에 담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건 빼곡하게 잘 짜인 스케줄대로 칼같이 움직이는 것보다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했던 여행이 오래 마음속에 남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의 일정도 되는대로 멋대로 할 예정이다.
일찌감치 호텔 조식을 충분히 즐긴 다음, 베르사유 궁전으로 출발해보기로 했다.
베르사유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파리의 RER 이 좀 위험한 구석이 있다고 해서,
메트로와 버스를 혼합한 여정으로 가기로 했다.
Porte Maillot 메트로 M1 역에서 지하철 탑승
→Chateau de Vincennes 방향으로 타고 가다가
→Franklin-Roosevelt 역에서 M9 호선 Pont de Serves 방향으로 환승
→ 종점 Pont de serves에서 내려서
→171번 버스를 타고 가다가 종점 하차, 종점이 베르사유 궁전 앞
연말을 맞아 파리에 소매치기와 집시들의 출몰이 많아 조심해야 한다길래 움직일 때마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지만, 좁고 낡은 메트로 안에 국적 모를 사람들과 섞여 서있자 하니, 순간 영화의 한 장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 있는 기분이다.
뮤지엄 패스를 미리 구입해두었기에 바로 입장.
겨울에 유럽을 여행할 때 좋은 점 한 가지는 줄을 설 필요가 없다는 거다.
상대적으로 관광객은 적어서 한산하고 대기시간이 짧지만, 겨울이라고 우리의 겨울처럼 죽도록 추운 겨울은 아니니 여름보다 더 나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재정이 흔들릴 정도의 돈을 쏟아부어 태양왕 루이 14세가 만들었다던 베르사유 궁전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오면 경복궁을 보고 감탄하는 격이겠지만, 그 옛날 특별한 장비도 없이 어떻게 그런 견고한 건물을 짓고, 곳곳에 예술적인 장식을 하였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당시에는 재정을 바닥내는
일이었을지 몰라도 후대에는 이런 것들이 관광자원이 되고 있으니 훌륭한 일을 했다고 해야 하나?
궁전을 둘러보고, 정원으로 나가기 전에 우리는 꼭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형 양께서 오래전부터 파리에 가면, 몽블랑과 쇼콜라쇼를 먹어보겠다고 벼르던 참이었으므로 ,
베르사유궁 안에 있는 『 Angelina 』에 들러 소원성취를 하기로 한 것이다.
혹자는, 몽블랑과 쇼콜라쇼를 동시에 주문하는 건 미친 짓이라고 했었는데, 미친 짓이 맞는 것 같다.
단것을 잘 먹지 못한다면, 이것들은 각각 따로 시켜서 소량씩 먹어줘야 제 맛을 음미할 수 있음을..
뭐.. 소원 성취하는데 미친 짓 한 번쯤 해줘도 괜찮을 듯도 싶고..
엄청나게 큰 스케일을 자랑하는 정원과 대운하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걸어서도 가능하지만, 쁘띠 트레인을
타고 이동하기로 한다. 승차감은 소달구지에 비할만한 쁘띠 트레인을 타고 모든 정원을 둘러보는데 한 시간
가량이 소요될 정도의 넓이니까..
쁘띠 트레인에서 운행 중 틀어주는 음악은 마치 중세시대에 와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런데.. 좀.. 춥다.. 쁘띠 트레인..
뻥뻥 뚫린 트레인에 바람을 맞고 앉아 있느니, 걷는 편이 좀 덜 춥겠어..
속이 시원해지는 대운하를 가운데에 두고, 양쪽으로 깍두기 같다고 해야 할지 식빵 같다 해야 할지..
암튼 각을 두고 다듬어져 줄지어선 나무들이, 잎사귀도 없이 앙상하게 나뭇가지로만 마치 Frame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멋지다.. 초록색으로 무성한 잎이 있을 때도 장관일 듯싶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우리들만의 미션으로 특별한 장소마다 Jump 사진을 찍어보기로 했다.
몸이 무거워 바닥에서 30cm 이상 오르기 힘들지만, 최선을 다해 본다. 얍!
개인적으로 궁전도 멋있었지만, 정원을 걸어보고 산책하는 것이 더 만족스러웠다.
나무에 잎이 무성할 때쯤 이곳에 다시 올 수 있다면, 새똥이 뒹구는 잔디밭에라도 한번 누워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