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시 Sep 14. 2022

글을 쓰면 좋겠다

우연히 만난 인연이었다. 사춘기 아들을 둔 엄마였는데, 사춘기 아들이 방황하는지 대화도 피하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물을 보였다. 아들도 성장의 변곡점을 찍고 있었지만 엄마도 역시 아들을 통해 성장의 변곡점을 찍겠구나, 생각했다. 그녀가 눈물을 보이자, 나는 침묵을 택했다. 차오르는 말이 너무 많았지만 멈췄다. 그 강을 건너보았다고 주절대다가는 꼰대가 되기 십상이었다. 그 강을 스스로 건너보라고 응원해주고 격려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조차 하지 못했다. 잠시 만난 인연이기에 그 말이 어떤 효용이 있을까 의심되었다. 


그녀는 이혼한 싱글맘이기에 사춘기 아들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고 푸념하고 싶어 했다. 푸념을 늘어놓으면 누군가는 공감하고 위로해줄 것이다. ‘어렵고 힘들겠다.’ 이 말이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푸념을 내려놓은 채, 나처럼 글을 쓰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가라는 명함을 가지고 인터뷰를 하고 있었기에 뭔가 그럴듯해 보였던 것 같다. 글쓰기란 구차한 사회의 현실망을 벗어난 초연한 일처럼 보여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랬다. 마냥 작가라는 직업을 부러워했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하지만 그녀에게 그럴듯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어려움을 푸념이 아닌 글로 풀어냈으면 했다.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언어로 명명해보고, 왜 어려운 지 질문해보고, 스스로 대답해가는 그 과정을 해낸다면 지금의 막연한 어려움이 조금은 선명한 색채를 띠어 한결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오래 전 만난 인연이었다. 남편 친구의 아내였다. 시골에서 맑고 투명한 삶의 철학을 실천하며 3형제를 키우는 전업 맘이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한창 아이를 돌보는 데 힘을 쏟는 그녀의 새하얀 얼굴에는 여전히 젊은 찬란함을 간직한 채였다. 몇 년이 지났을까. 최근에 글쓰기에 관심이 많이 생겼다며 남편은 친구 아내의 이야기를 나에게 전했다. 


육아 때문에 좀 힘들어 하는 것 같아 그리고는 어떻게 하면 꾸준하게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한다는 것이다. 이 한 문장이 어떤 이야기를 내포하는지 그녀의 이야기를 찬찬히 듣지 않는 이상 헤아릴 길이 없다. 여기서 ‘꾸준하게’가 핵심이라면 나는 딱히 해줄 말이 없을 것 같다고, 남편에게 잘라 말했다. 


나 또한 꾸준히 글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분명 글쓰기가 주는 이로움을 알고는 있지만, 글쓰기가 업이 아닌 이상 이로움 만으로 지속할 수 있을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글을 써보세요, 라고 독려하고 싶다. 글쓰기의 맛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맛보면 그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몸의 세포에 각인 되어 어떻게든 쓰게 만들테니까.


글을 쓰면 뭐가 달라지는 것인지, 글을 쓰는 삶이 엄마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 그럼에도 엄마로서 글쓰기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많고 다양한 장애물들을 거쳐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다. 겁부터 주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글을 쓰라고, 쓸 수 있다고. 얼마나 외치고 싶었는지 모른다. 워~ 워 흥분은 가라앉히자. 글쓰기만 나오면 내 입은 봇물 터지듯 말이 많아진다. 그렇게 한꺼번에 쏟아 부으면 안 된다. 엄마로서 자신의 언어를 구축한다는 일이 만만치 않지만 그 만만치 않은 일을 해낼 때의 통쾌함이란. 글을 써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다. 백 마디의 잔소리보다 한 번 쓰게 만들 수만 있다면 하고 바랬다. 여전히 꾸준함이 어려운 글쟁이의 소회를 꺼낼 때가 된 것 같다. 글쓰기에서 도망가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다가도 결국에는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고군분투의 여정들을 풀어 놓는다면 '나도 쓸 수 있겠는데'라며 용기를 얻을 지도 모르겠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