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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Oct 07. 2022

글을 쓰니 말이 잔잔해졌다

그그그러니까, 말더듬던 아이는 어디갔을까

초등학교 때인가. 선생님이 내 번호를 호명한다. 21번! 앞에 나와서 발표를 시킨 것 같다. 쭈뼛쭈뼛 걸어서 교단까지 갔다. 등지고 말을 할 수 없으니, 뒤 돌아야 했다. 짧은 찰나에도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듯 요동쳤다. 반 아이들의 눈은 마치 카메라 셔터에서 내뿜는 불빛 같았다. 눈이 부셔서 차마 바로 볼 수가 없다. 이윽고 볼은 발갛게 상기되어 버렸다. 그때, 재빠르게 한 아이가 “홍당무 됐다”라고 놀렸다. 반에는 꼭 그런 아이가 한 명씩 있었다. 깐죽거리면서 별거 아니라는 듯 마구잡이로 상처 되는 말을 주저 없이 뱉어내는, 상대방의 감정 따위는 1도 배려하지 않는 그런 녀석.


그 녀석의 입에서는 기다림도 없이 툭 뱉어져 나왔다. ‘홍당무’ 학창시절의 별명은 홍당무가 되었다. 사람들 앞에만 서면 얼굴부터 빨개졌다. 멋들어지게 발표할 리 없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발표를 시작하면, 아이들의 쿡쿡거리는 작은 웃음소리가 과장되어 내 귀에 들렸다. 신경이 거슬리니 어떤 말을 하는지 나 조차도 헤아릴 수 없었다. 거기다가 '그그그그러니까' 말을 더듬대기 일쑤였다. 


어릴 때의 놀림 때문에, 남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로 낙인찍혔다. 중학교에 입학하면 다를까. 사람이 한순간에 이유 없이 변할 리 없다. 스스로 앞에 나서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단정했다. '나는 내성적이라 앞에 나서는 것 못해요.' 주변에서의 낙인이 무서운 건, 주변인이 사라져도 그 낙인이 계속 내 안에서 맴돈다는 것이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아지기는커녕, 더 어려워졌다. 발표가 성적으로 연결되기에 더욱 긴장이 되었다. 팀별 발표라면 아무도 나를 발표자로 내세우지 않았다. 자연스레 발표할 기회도 적어지고, 발표를 해도 ‘난 사람들 앞에서 얘기 잘 못해’ 지레 뒷걸음질을 쳤다. 


괜찮다. 사람들 앞에 나설 일을 만들지 않으면 되니까. 인생의 행로는 내 생각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 배의 항로를 쥐고 있는 것은 바로 나여도, 거센 바람은 어쩌지 못하고 항로를 틀게 만든다. 어찌어찌 떠밀려서 동호회 대표를 맡게 되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술이 문제다. 술을 먹으면 이성이 잠시 헬렐레 자리를 비우고, 사람들은 그 틈을 타서 교묘하게 ‘대표 할게요’라는 말을 받아낸다. 술이 깨고 이성이 살아나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술을 마셨으니 이건 무효에요. 따지지 않았다. 나도 인식하지 못한 마음 깊은 곳에는, 대표가 되고 싶은 욕망도 있었던 것이다. 


대표의 자리는 무겁기도 했지만, 의외로 재미있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일을 기획하는 것도, 운영진과 협의하는 것까지 나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것 같아 신바람이 났다.  


가끔은 사람들 앞에서 얘기를 해야 할 때가 온다. 대표라면 응당 그런 자리가 많기도 하다. 오래된 습관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앞에만 나가면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댔다. 다행인 것은, 다들 그러려니 하는 눈치였다. 말 잘하는 리더를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일 잘하는 사람, 동호회를 잘 꾸려나갈 사람을 원한 것이니 만족하는 듯 했다. 


이제는 동호회 대표도 아니고, 사람들 앞에서 말할 기회는 더더욱 적어진다. 엄마가 되어 보니 인간 관계망이 대폭 축소된다.  직장 생활에서도 딱히 말할 기회가 적다. 내 일만 잘하면 그냥저냥 인정해주는 분위기이다. 그럼에도 불현듯 뜻하지 않게 사람들 앞에서 말할 기회가 생겨났다. 글을 쓰다보니, 작가라고 불리워지고, 자잘한 일들이 곧잘 생겨났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나를 소개해야 했고,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어도 나의 의견을 피력할 때는 찾아온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조금씩 편해지고 있다. 칡덩굴처럼 질기고 질긴 오랜 습관이 미세하게 균열이 나기 시작하면서 깨지게 되었다. 글을 쓰게 되면서 조각난 생각들을 다듬는 훈련이 되었다. 생각들이 튀어나올 때, 대부분은 중구난방이다. 확실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알맹이 같은 생각도 들춰보면 부실하기 짝이 없다. 다듬고, 다듬어도 또 다듬을 곳이 보인다.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오늘은 지쳤다. 내일로 미루면 된다. 내일이 되면 들춰보고 싶지 않다. 지긋지긋하다. 그래도 못내 들춰본다. 그리 형편없지는 않다. 약간의 자신감에 힘을 내어 또 다듬는다. 그러다 보면 구체적인 형태가 드러난다. 비로소 나의 언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는 어쩔 수 없더라도, 평소에 꾸준히 해나갔던 생각들은 글로 꾸준히 정리되어 간다. 나만의 언어가 무의식에 자리하며 툭툭 튀어나올 채비를 한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말들은, 신체적으로 완전히 소화된 말들이다. 나의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예전만큼 긴장이 되지 않는다. 어느 자리에서건 내가 소화한 만큼만 말한다. 쓸데없는 글만 쌓이고 있다고 푸념했건만, 뱉어지는 나의 말들이 잔잔해진다. 더 이상 볼이 발개지지도 않고, 그그그러니까 말더듬도 한결 줄었다. 


각종 회의에 참석해서도, 각종 모임에 참여해서도, 가까운 친인척 사이에서도 나의 말을 부드럽게 쏟아냈다. 술술술 이야기가 이어져 나올 때마다, '내가 이렇게 말 잘하는 사람이었나' 놀라기도 한다.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낙인에 휘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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