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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글 쓰는 엄마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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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Oct 12. 2022

글쓰기에 힘이 빠지고, 리듬이 생겼다

어느 시간만 되면 내 몸은 카페로 향한다

하루 중 어느 시간만 되면 글을 쓰러 카페로 가게 되었다. 3년이 걸렸다. 이제야 글 쓰는 리듬을 찾아 그 시간만 되면 몸이 글을 쓴다. 내가 글 쓰는 사람이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아무도 몰랐다. 나도, 남편도, 가까이에 있는 지인들도, 과거의 직장 동료들도. 사람들은 가끔 나를 만나면 묻곤 한다. “아직도 글 쓰세요?” 아직도…라, 어설프고 힘들다며 당장이라도 때려칠 것처럼 그들에게 한탄하곤 했다. 시간이 지나 그 질문을 떠올려보니, 그들도 내가 이렇게 글을 쓸 줄은 기대하지도 믿지도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막연히 ‘글 쓰는 사람’이고 싶어 한다. 작가이냐, 아니냐는 중요치 않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글을 쓴다는 것이다. 그 순수한 글쓰기 행위 속에 담긴 자기만의 의미는 제각각 다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행동에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요즘은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이고, 글을 올릴 수 있는 플랫폼도 많지만 도시와는 조금 떨어진 지역의 정서는 아직도 글을 쓰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로 치부한다.

글을 쓰기 위해 시동을 거는 것이 어려웠다. 절실함도 적고, 언제든 다른 일을 찾겠노라고 외부로 시선을 돌렸다. 생산적인 일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조바심이 쓸데없이 비생산적인 일처럼 보이는 글쓰기를 외면하게 만들었다.

기회가 찾아와서 다양한 글을 돈을 받고 썼다. 정확히는 쓰고 돈을 받았다. 원고도 쓰기 전에 선 지급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고통스러워도 내뺄 수 없었던 것은, 돈 때문이었다. 인간에 대한 의리보다, 돈과의 신용이 더 앞섰다. 기한 일에 맞춘 마감에 맞추어 들쑥날쑥 글을 썼다. 어느 날은 아침부터 하루 종일, 어느 날은 밤에 잠깐. 일의 양에 따라 들이는 시간도 달랐다. 하루 종일 글을 쓴 날은 다음 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글을 쓰기 위해 온몸의 진을 모두 뽑아내야만 했다. 짧은 시간동안 쓴 날은 그나마 좀 나았나,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한 시간을 써도 진이 빠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사실 한 시간을 집중해서 쓰기 위해서 수많은 시간을 자료 조사하고, 이해하고, 내내 그 생각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내용을 소화할 수 있고, 소화해야만 겨우 글을 쓸 수 있었다.

때로는 나의 글 쓰는 노동을 시간으로 계산 해본다. 시급제의 알바보다 더 못한 것 같아, 속이 쓰리다. 그럴 바엔 시간 계산을 안 하는 것이 속 편하다. 글을 쓰지 않아도 될 때도 많았다. 돈을 받고 쓰는 글은 악착같이도 쓰면서도, 그 외의 글은 설렁설렁 미루게 되었다. 쓰면 좋고, 안 써도 좋고. 뇌는 언제나 게으름을 택했다. ‘뭐 하러 고통을 자처하려 해.’ 악마의 속삭임에 현혹 당했다. 게을러진 몸은 점점 글과 멀어지게 했다. 고통이 조금 익숙해지려 하면, 또 원상태로 돌아가고. 고통을 두려워했다. 고통이 아니면 뭐든 좋았다. 그렇게 피하면 피할수록 맘은 편한데, 이상하게 무료했다. 고통만 아니면 괜찮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그럭저럭 살아가는 인생이 시들시들한 꽃처럼 축 늘어졌다.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또 다시 글을 썼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 자신과의 약속보다는 외부와의 약속에 더 투철하다는 것을 알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을 모아 매일의 인증을 했다. 구체적인 여러 사람과의 약속이었다. 매일 글을 써서 올리면 사람들은 빠르게 반응했다. 댓글이 달리고, 내 글이 실시간으로 읽힌다는 느낌에 긴장도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신이 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빠르게 달리던 댓글도 주춤해졌지만, 타인과의 약속은 나에게 마감기한과 같은 강도로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적당한 긴장으로 매일의 글을 썼다. 고통의 강도는 점차 줄어들었다. 비로소 글쓰기에 힘이 빠진다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글쓰기에 힘을 주었는지, 그제야 실감되었다. 이전처럼 온몸의 진이 빠지도록 쓰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글이 더 담백해진다. 글을 쓰는 것 일이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글쓰기 근육이 만들어지고 있구나. 소재를 찾지 못해서, 한 글자도 시작하지 못해서,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한 첫 순간에도 예전처럼 두렵지만은 않다. 타인과의 약속이 사라진 이후에도 나는 매일 글을 쓰게 되었다. 리듬이 생긴 것이다. 하루의 어느 시간만 되면 몸이 카페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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