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by 수연길모

언니들과 통화하면서 엄마가 제주도와 금강산을 다녀왔다는 얘길 들었다. 분명 나도 예전엔 엄마가 여행을 갔다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겠지만, 내 기억에서 엄마의 여행 부분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래서 엄마의 여행 얘길 들었을 때는 놀라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감사했다. 여행을 못 가게 하려는 아버지의 박해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예쁜 옷을 입고 회사 아줌마들과 제주도도 가고, 오산에 와서는 아파트 산악회에서 가는 금강산 여행을 다녀왔다는 그 사실만으로 내 불효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식을 위해 평생 고생만 한 엄마가 아니라 짧은 기간이었지만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졌던 엄마였다는 사실이 나를 그렇게 기쁘게 할 줄은 몰랐다. 나는 애초에 희생적인 엄마는 아니다. 딸아이도 우리 부부도 각자의 독립된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다. 엄마의 여행 이야기로 또 한 번 부모가 자신의 삶에 열중하는 모습이 자식에게 홀가분한 행복이 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용감하게 여행 다녀온 엄마가 고맙다.


우리 언니 오빠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막내인 나만 대학을 나왔다. 막내라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큰오빠의 의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으리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내 등록금 내야 하는 때만 되면 오빠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을 것이다. 한 번도 오빠에게 말하지 못한 이 말을 하고 싶다. “오빠! 나 공부시켜줘서 고마워!”

내가 엄마에게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 그날부터 매일같이 내 글을 읽어주며 나의 팬과 비평가를 동시에 맡아준 사랑하는 박동희 남편 고마워! 그리고 내 딸 수연이가 없었다면 엄마가 될 수 없었고 내 어머니를 이해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수연아, 태어나줘서 고마워.

평생 미워했던 불쌍한 김행식 아버지. 아버지, 고마워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재주로 잘 살고 있어요. 부디 그곳에선 엄마에게 용서를 빌고 화해하며 지내시길 바라요.


마지막으로 딱 하루만 엄마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신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아침은 엄마가 좋아하셨던 부산어묵 팍팍 넣은 라면으로 가볍게 시작하고, 점심엔 뜨듯한 온천에서 피로를 푼 다음 시원하게 때 밀어 드리고, 엄마가 좋아하신 해물 칼국수를 먹고 후식으론 커피믹스를 두 개 넣어 따뜻하게 타드리고, 저녁엔 또 엄마가 좋아하신 매콤한 아귀찜으로 마무리하고 살갑게 손톱 발톱을 깎아드리고 싶다. 그리고 그 폭신하고 보드라운 엄마 팔에 머리를 대고 출렁이는 엄마 뱃살을 만지며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싶다.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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