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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삶을 껴안으려는 작가의 의지

서평 <희랍어 시간>, <흰> 한강 (문학동네)

by 엄마오리


“인간의 연한 부분에 대한 신뢰를 확인했다고 할까요. 두 인물이 구원 없는 세상을 살았잖아요. 서로 마주치는 순간, 소통할 때 자신의 가장 연한 부분을 꺼내잖아요. 손바닥에 글씨를 써준다든지, 서로 침묵하는 순간. 그런 것들이 인간 안에 있는 것이었는데, 그 연한 부분에서 삶은 시작되어야 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는 소설가 한강이 2011년 네 번째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문학동네)을 발표한 후 ‘채널 예스’와 가진 인터뷰 중 일부다(2011.12.26). 역시 장편소설인 <바람이 분다, 가라> 집필 후 언어에 대한 고민으로 슬럼프를 겪던 중 그걸 뚫고 나가기 위한 글쓰기를 통해 나온 작품이라고 한다. 작가는 이 작품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본인의 가장 밝은 대답이었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동 인터뷰 수록)


책에는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와 말을 잃은 여자가 등장한다. 십대 때 가족과 함께 독일로 떠났던 남자는 40세 즈음에 실명될 것이라는 진단을 받고 홀로 한국으로 돌아와 희랍어와 철학을 가르치며 살아간다. 열일곱 겨울에 한 번 말을 잃었던 여자는 어머니의 죽음을 겪고 이혼 후 아이의 양육권마저 뺏기며 다시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생경한 불어 단어로 다시 말문을 찾을 수 있었던 여자는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사설 아카데미의 희랍어 강좌를 수강한다. 강사였던 남자는 말을 하지도, 웃지도 않는 여자에게 주의를 기울이게 되지만 생기 없는 그녀의 침묵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다.


두 사람은 각자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산다.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돌아온 남자는 점점 시력을 잃어가며 세상과 멀어지고, 여자는 말을 잃은 채 침잠해간다. 둘을 이어주는 것은 복잡하고 난해한 희랍어다. 소설 속의 희랍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로서의 기능을 넘어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남자는 독일어보다 희랍어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여자에게 희랍어는 언어를 되찾기 위한 기회인 것이다. 가진 것을 잃거나 잃어가고 있던 두 사람에게 희랍어는 고독한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고통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거울과 같다. 작가는 희랍어로 쓰여진 시 같은 문장을 통해 그들의 감정선을 낯설게 드러낸다.


둘은 각자의 연약함을 드러내면서 상처에 대한 치유의 실마리를 얻는다. 남자는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혼잣말처럼 계속하고 여자는 남자의 손에 글을 써 그를 대신해 안경을 사오기를 자처한다. 타인과의 미약한 연결이지만 그로 인해 주어진 삶에 대한 긍정은 가라앉은 그들의 삶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소설 <흰>에서도 잘 드러난다. 자전적인 소설로도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은 자신의 어머니가 스물세 살에 낳았다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었다는 ‘언니’의 사연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세 개의 챕터와 65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이 책은 작가 한강의 근원적 화두들을 모은 소설집이다. <희랍어 시간>에서 여자의 아이가 엄마에게 지어준 인디언식 이름인 ‘펄펄 내리는 눈의 슬픔’은 이 책의 한 구절과도 통한다. “대체 무엇일까, 이 차갑고 적대적인 것은? 동시에 연약한 것, 사라지는 것,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은?”(p.64, 눈보라) 한강 작가 자신으로도 읽히는 <흰>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로 고독한 존재로 출발하지만 태어나지 못한 언니에 대한 애도와 그에 따른 희미한 연결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연민과 삶을 껴안으려는 작가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문체와 시점에 대한 작가의 의도 또한 시선을 끈다. <희랍어 시간>에서는 각 장마다 시점이 바뀌는데, 남자의 이야기는 1인칭으로 서술되어 상처 속에서도 세상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주인공의 내면의 섬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반면 여자의 경우에는 3인칭 시점으로 삭막하고 건조한 그녀의 일상을 표현하는데, 마지막 장에서는 여자의 1인칭으로 서술하며 챕터 또한 ‘0’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시작하는 느낌을 준다. <흰>은 소설이지만 시집으로 불려도 될 만큼 시적이고 절제된 문체로 은유와 상징, 문장간의 여백과 공간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특유의 리듬을 느끼게 한다.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로 평가받는 그의 작품을 <희랍어 시간>과 <흰>으로 시작해 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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