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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사장의 서고 Mar 31. 2019

쉽게 읽는 <어스> 해석

상징은 좋지만 영화는 최악

영화 <어스>를 보고 많은 분들이 당혹스러워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무언가 내가 모르는 심오한 의미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인지 감이 잘 오지 않습니다. 가위는 뭐고, 토끼는 뭐며, 대체 이게 무슨 의미인 걸까요?


그런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아주 쉽게 읽는 <어스> 해석. 당연히 아주 아주 많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보신 분만 읽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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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에 앞서 밝히자면, 저는 <어스>가 참 별로였습니다. 감독이 의도한 비유와는 별개로 영화의 기본적인 스토리가 그 비유와 따로 놀아서 직관적으로 와 닿지 않는 불친절한 영화거든요. 조던 필 감독의 전작인 <겟 아웃>은 그 두 가지가 비교적 잘 합치되어서 재밌게 봤었는데, 이번 영화는 본인이 의도하는 비유를 너무 앞세워서 영화 스토리가 망가진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재밌는 해석이 가능한 영화이니 영화를 좀 뜯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스>는 정말 공포영화인가?



평범한 흑인 가족의 여름휴가가 악몽으로 바뀌는 것은 갑자기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나타나기로, 그들은 정부가 만들어낸 복제인간들이죠. 원래는 그 복제인간들을 조종해서 원본인 국민들을 마음대로 다루려던 것인데, 실험이 실패한 것인지 복제인간들은 원본의 움직임에 따라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괴물이 되어버렸습니다. 



왜 그런 괴물들이 생긴 것인지, 어떻게 원본 인간의 움직임이 복제인간에게 똑같이 적용되는지를 보여주진 않습니다만 애초에 그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이들은 ‘이민자’를 상징하기 위해 감독이 만들어낸 상징적 존재들이거든요. 그래서 엄밀히 뜯어보면, <어스>는 공포영화적인 소재를 차용했을 뿐이지 공포영화는 아닙니다. 좀 더 쉽게 이해하실 수 있도록 영화에 나온 소재들을 이용해 조금씩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도플갱어에 대한 공포



제대로 표현되진 않았지만 영화에서 추구하는 ‘공포’의 핵심은 도플갱어에 대한 공포입니다. 도플갱어란 쌍둥이도 아닌데 본인과 똑 닮은 존재로, 도플갱어와 마주치면 둘 중 하나는 죽게 된다는 것이 독일에서 내려오는 전설이죠. 그런데 조금만 더 나아가 봅시다. 도플갱어를 만나면 대체 왜 둘 중 하나는 죽는다는 것일까요? 



나와 모든 점에서 똑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가 나를 대체하고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앗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둘 중 하나는 사라져야만 합니다. 내 가족, 내 재산, 내 친구, 내 연인 등 내 모든 것들을 내가 아닌 사람이 그대로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공포잖습니까. 이러면 무슨 엄청나게 철학적인 얘기 같겠지만, 쥐가 손톱을 먹고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신해 가족을 빼앗아갔다던 ‘옹고집전’의 스토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얘깁니다. 단순히 독일에만 있는 특수한 공포가 아니라는 얘기죠.



조던 필 감독은 이 소재를 재치 있게 이용합니다. ‘이민자’에 의해서 미국인의 일자리가, 집이, 삶이, 땅이 빼앗길 수 있다는 공포를 이 ‘도플갱어’란 소재를 이용해서 풀어나갈 생각을 한 것입니다. 얼굴모를 ‘외국인’이 아니라, 나와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가 집을 빼앗고 옷을 빼앗는 모습은 훨씬 더 공포스러울 테니까요. 근데 이 사람들 대체 정체가 뭘까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의 정체



이들은 첫 등장부터 임팩트가 엄청납니다. 주인공 가족의 별장 마당에 네 가족이 덩그러니 서서 무섭게 주인공을 응시하죠. 남편이 위협을 해도 꼼짝을 않지만, 경찰을 불렀다는 소리를 듣자 순식간에 행동을 개시해 가족들을 제압해버립니다. 그런데 이때, 남편이 했던 말 기억하시나요? 지나가듯 던지는 단순한 대사지만, 그는 “내 사유 토지에서 나가”라는 말을 내뱉습니다. 이걸 조금 확대하면 “우리나라에서 나가”라는 말이 되겠죠? 글의 서두에서 말했던 ‘이민자’들에게 일부 미국인들이 내뱉는 것과 동일한 말입니다.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그 공포에 부합하는 행동들을 합니다. 그들과 똑같이 생긴 사람들을 살해하고, 그 가족의 옷과 차, 집을 빼앗죠. 심지어 주인공 가족의 친구네 집을 차지한 도플갱어 중 하나는 아예 화장품에까지 손을 댑니다. 이민자들이 우리나라에 밀려와서 우리 땅을 뺏고, 우리 일자리를 차지하고, 우리 동네를 차지할 것이라는 공포를 극단적으로 과장한 것입니다. 거기다 조던 필 감독은 한 가지 더 짓궂은 장치를 넣습니다. 바로 이들의 ‘언어’입니다.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말’을 하지 못합니다. 거의 동물과 같은 괴성을 내지르며 자기들끼리 소통을 하는데, 이 역시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비영어권 국가 이민자들이 자기들 나라의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을 과장되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인공과 그 가족들은 붉은 옷을 입은 ‘이민자’들을 거의 괴물과 비슷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죠. 감독은 여기까지는 철저하게 일부 미국인들이 느끼는 공포를 과장해서 공감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반전이 나오죠.



그들은 모두 미국인



영화의 최종 반전은, 주인공 가족의 엄마인 ‘애들레이드’가 사실은 어릴 때 바꿔치기를 당한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다른 복제인간들과 동일하게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던 그녀를 두고, 부모님은 아이가 충격적인 경험을 해서 실어증에 걸린 것이라 짐작합니다. 그리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주인공 애들레이드는 ‘평범한 인간’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잘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 사실 자체가 조던 필 감독이 ‘이민자’를 두려워하는 미국인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그들은 괴물이 아니며, 시간 지나면 멀쩡하게 다른 미국인과 구분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미국은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니까요.



주인공 가족이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제압당해 거실에 모였을 때, 주인공 가족은 붉은 옷을 입은 이들에게 묻습니다. 당신들 대체 정체가 뭐냐 구요. 그러자 복제인간, 아니 실은 원래 미국인이었지만 바꿔치기를 당해 지하의 시설에서 자란 그녀가 답을 합니다. “We are Americans” 우리는 미국인이라 구요. 이것이 영화의 제목인 US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주인공 가족의 막내가 얘기했던 “They are US”라는 것도, 중의적으로 ‘우리의 도플갱어’라는 것과 ‘(우리와 같은) 미국인들’이라는 것을 동시에 의미하는 대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갇혀 지내던 지하의 시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 부분은 저도 명확히 결론 내긴 힘들지만 저는 그곳이 미국으로의 이주를 희망하는 이들이 미국의 대중문화를 학습하는 공간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미국만의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 동떨어진 공간에서 미국의 문화를 ‘학습’하는 모습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죠. 단순히 복제인간들을 수용하기 위한 시설이라면 그게 굳이 ‘교실’의 형태를 갖고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미국의 문화를 학습한 이들이, 미국으로 나와 외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인이다”구요. 어쩌면 이민선이라던가, 외국인 거주지역 등의 다층적인 공간일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미국인의 눈에 띄지 않는 외진 공간에 거주하는 ‘미국인’ 말입니다.

 


상징은 좋지만 영화는 최악



<어스>의 문제는 영화의 스토리가 이런 상징-비유 체계와 완전히 따로 논다는 점입니다. 감독이 의도한 상징을 떼놓고, 스토리만 보면 영화는 최악입니다. 어느 가족이 여름 별장에 놀러 갔다가, 어떤 이유로,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인지도 모르는 복제인간들의 반란에 의해 죽을 위기를 겪는다는 황당한 이야기죠. 그마저도 내부적 개연성이 너무 떨어지는 장면이 너무 많습니다. 복제인간이라고 굳이 토끼를 생으로 뜯어먹을 필요는 없고, 아이가 그리 쉽게 바꿔치기가 가능했다면 가족 구성원들을 한 명씩 몰래몰래 바꾸는 방식이 더 확실하지 않냐는 것입니다. 상징과 비유는 기발하지만, 영화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너무 많은 작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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