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의 아이들에 대한 연민

by 김상혁

내가 공익근무하는 아동센터 근처 종로구 창신동 창신초등학교 한 학년의 학급 수는 네 개다. 각 학급은 초등학생 12명~15명의 인원수로 채워져있다.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에게 더 물어본다.

“그럼 나머지 반이었던 공간들은 어떻게 사용해요?”

예절실, 방과후 용도, 도구실 등으로 활용한다고.

“그럼 제가 초등학교 다닐 적 그 선생님들 수가 이제 필요없는 것 아니에요?”

그래서 임용을 본 선생님들도 대기 상태로 기다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물론 이건 아직 일반적인 건 아니라고 한다. 아파트 단지가 많이 몰려있는 동네는 아직 30명학급을 유지하는 곳도 많다고. 사회복지사 선생님 중 한 분이 나한테 묻는다


“초록샘은 근데 왜 갑자기 이게 궁금하셨어요?”


글쎄, 간편한 대답은 요즘 이슈가 되는 교권 문제에 대한 나의 빈 공간을 채우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간편하게 교권과 학생인권을 분리하여 모두가 각각의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벌어지는 일에 대해 이런 저런 말들을 올리지만, 현재 벌어지는 실상은 그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상상하는 교실과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예전엔 12명~15명 학급이 되면 학교 교육이 선진화 될거라고 마냥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우리 아이’를 선생님이 더 각별하게 돌볼 수 있다는 기대가 만들어낼 파장은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것 같다. ‘반 친구들’과 ‘우리아이’와 ‘반 친구중 000’과 ‘우리아이’, 집단이 소규모가 될수록 도드라지는 ‘나’와 ‘너’의 개별성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노르웨이에 가보고 싶다. 그 이유는, 내가 정당하다고 믿는 것들이 실제로 정당하고 당연한 환경, 특히 교육환경을 경험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나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다. 운이 좋게 공부를 잘해 학교에서 인정받은 것을 제외하면, 아니. 사실 그걸 제외할 필요도 없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학교에서 존중받거나, 인정받아본 경험이 없다. 감히 생각컨데, 여기서 ‘나’를 ‘우리’로 바꿔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학교에서 존중받거나, 인정받아본 경험이 없다. 외부에서 인정을 바라면 안된다고 심리학에서도 말하고, 불교에서도 말하지만, 그런 말들은 한 켠의 내가 생각하기에는 나의 인간됨을 몇십년 동안 무시한 내가 살아온 ‘외부’ 이 한국 사회의 교육환경을 합리화하는 말과 다름없다. 나는 한국 교육환경에 완벽히 적응하여 명문고에 가고, 명문대에 가놓고는 ‘저는 다른 사람의 인정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다. 자기를 몰라도 너무 모르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대안학교를 꾸려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더 깊이 가보자면, 이는 ‘아버지가 되고 싶은 마음’이다. 미래의 어느 순간 내게 내가 사랑하는 아이가 함께 한다면, 나는 그 아이가 내가 겪었던, 그리고 내가 현재 보고 있는 교육환경에 적응하도록 내버려두고 싶지가 않다. 아이가 적어도 중학교 2학년 나이 때까지는 매일매일 뛰어놀고 하고싶은 대로 해도 ‘그것이 꿈이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이었음 좋겠다. 어른들은 매일매일을 꿈처럼 잘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자꾸 꿈을 찾으라고 말한다. 30살이 된 나는 아직도 꿈을 찾아 헤매고 있다.


세상이 다 뒤집어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선생님들에게 나는 학교가 그냥 없어지는게 나을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직접 요즘의 학교생활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방과 후에 학원을 다니고, 방학에 내가 이십년 전 풀었던 것과 똑같은 수학 숙제를 푸는 것을 보면. 뉴스에서 선생님들이 집회를 바둑판 처럼 질서정연하게 했다고 경찰도 언론도 칭찬이던데, 그러한 질서정연함을 당연한 덕목으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는게 만약 지금의 교육이라면. 차라리 학교가 없어져야 그러한 환경에 적응시키려고 아이 때부터 학부모 사이에서 유명한 병원에 찾아가 정신과 약물을 먹거나,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불리거나, 소리를 질러서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입혀 격리되는 일들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마음은 내가 근무하는 센터에서 바라보는 아이들에 대한 연민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으로 세상을 겪어볼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어른들이 말하는 정답에 점점 젖어들었던 이들에 대한 연민이다.


이러다 현실을 견뎌내고 목소리를 내고 있는 어른들을 생각해보면, 연민을 와르르 쏟아내야 하는 것 같다. 받아본 적이 없이도 주려고 하는 노력들을 폄하해선 안된다. 너와 나는 분리된 것이 아니어서, 아이를 연민한다면 그 연민이 끝까지 닿아 한 때 아이였던 나를 비롯한 모든 어른들에게로 닿아야 하겠다.


소중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내가 문득 학교에 관한 질문들을 했던 이유말이다. 내가 겪은 어린 시절을 애도하고 화내는 마음도, 내가 늘 마주하는 아이들에게 갖는 관심도, 다른 미래를 꿈꿔보는 희망도, 존재를 존재 그대로 바라보려는 연민의 마음도. 소중한 마음은 때로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 마음이 내어지고 지나가는 나의 모습에 깊이 감사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언제라도 이 마음이 다시 찾아와 나를 짖누르지 않고 다시 가벼이 흘러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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