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울음

by 김상혁

엉엉엉엉엉엉 울었던 순간을 한 번 떠올려보자.


2003년,

2009년,

2017년,

2020년,

2021년,

2023년,



난 별로 울지 않는다. 슬픈영화를 봐도 눈물이 잘 나지 않고 머리만 팽팽팽 돌아가는 편이다. 엉엉엉 운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보고 눈물이 흘렀던 적은 전주에서 서울까지 엄마랑 누나를 데리고 가서 그 당시 가장 컸던 왕십리 아이맥스에서 인셉션 영화를 봤을 때.


울지 않는 나는 삶이 무한하다고 생각하는 나이다. 삶의 유한성을 깨닫지 못하는 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지금 생각해보면 외할머니에 대한 나의 감정이 무뎌졌을 수많은 주변 사정들이 있었지만, 나는 엉엉 울지 않았다. 그러니까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다. 무한 했고, 무한 하던 것이, 잠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혹은 계속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곤 한다.


어쩔 수 없이 끝이 남을 인정하는 순간에, 나는 울 수밖에 없다. 울지 않았다는 것은 따지고 보면 나는 끝이 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모두 다 끝이 나는 순간들이었다. 평범한 가족이라는 환상이 끝이 나버릴 때, 꿈에 대한 의지가 끝이 나버릴 때, 자기 비난과 타인 의존의 순환이 끝이 나버릴 때, 아직도 난 잘살고 있다는 집념이 끝이 나버릴 때, 사랑인 줄 알았던 것이 끝이 나버릴 때, 내 것이 아니었어야 할 미움의 마음이 끝이 나버릴 때, 내 마음을 설명하기가 끝이 나버릴 때.


할 수 있는게 우는 것뿐이다. 엉엉엉.


그렇게 삶은 한 번 더 순환한다.



2003년,

10살 개구장이 어린이가

조용한 어른 아이로


2009년,

가수를 꿈꾸던 고등학생이

전교1등 모범생으로


2017년,

아버지가 되려는 책임감이

남자도 가정주부가 될 수도 있다는 참신함으로.


2020년,

맹목적인 사랑에서

자기존중의 치유로


2021년,

화들짝 놀라는 혐오에서

헤아릴 줄 아는 연민으로


2023년,

강박적인 노력에서

평온한 존재로.



어린이. 내가 센터생활을 하며 되찾고 있구나.

꿈. 더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 치유하고 있다.

멋진 아버지. 앞으로 내 삶이라도 제대로 책임질 수 있도록.

사랑. 자기사랑과 존중이 사랑의 시작이다.

혐오. 미워해도 괜찮아. 미움 받아도 괜찮아.

노력. 지금까지 살아온 네가 충분히 소중한 이유.



삶이 무한하다고. 삶은 늘 변하는 것이라고 바라본 나는 어쩌면 HP 게이지가 반쯤 달아서 게이지 반쯤이 흐릿한 빨간색으로 ‘더 채워야해’ 표시가 되어있는 삶을 살았던 것이려나. 내가 선택이라고 생각한 것들은 선택이라기 보단 정해진 것을 채우는 것에 불과했다. 정해진 것들은 나의 부족함이었다. 나를 울게만든 것들. 나를 울게만든 창피하고 부끄러운 나의 과거. 더 울지 않기 위해. 이 나약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끝이 나버렸지만, 끝이 나버리지 않았다고 그 사람들에게 더 소리쳐보기 위해 살아왔지 않았으려나.


이렇게 살다보니 나는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어. 나는 누구라도 위로할 수 있어. 나는 누구라도 함께할 수 있어. 이런 나를 이해해줘. 이런 나를 존중해줘. 이런 나를 대단하다고 생각해줘. 그렇게 생각하며 뻥 터지게 냅두지 않았으려나.


빙~ 돌아 왔다. 내가 늘 여기 서있었다. 많은 것들을 느꼈지만 난 정말 그걸 느꼈던걸까. 내 울음들을 치켜세워줘야 하려나. 그래야 멋져 보이는, 울음들이 만들어낸 요란한 보호마술경계가 팡 하고 터져 공기중에 사아악 흩어진 다음 그게 한 순간에 이 가운데 내 마음자리로 슈슈슈슈슉하고 모일 것 같다. 울음은 그렇게 결국 화려한 나의 마법이 되지 않을까? 한 순간 순간들이 앞으로 내가 맞이할 순간 순간들에 공명해 내 안에서 뿜어져 바깥으로 찬란하게 흩어져버리는 그런 마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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