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도와주면 안되겠니

by 김상혁

22. 2024년 12월 17일

결국 레스토랑 일을 때려치고 광천에 돌아왔다. 광천에서의 집 월세는 그대로 나가고 있었다. 지원했던 대학원도 합격해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 순 없었다.




카페 알바를 구하겠다고 예산예당호휴게소에 왔다. 새벽 5시 50분에 일어나, 한 20분 느적느적대다가, 6시 40분 기차를 타고 예산역에 도착했다. 아마 휴게소에 막 새로 열기 시작한 카페인 것 같다. 어제 서울에 친구 결혼식 청첩장모임에 가기 전에 카페에서 계획을 세우다 즉흥적으로 당근을 깔고 알바에 뜬 카페 알바에 지원한 참이었다. 일은 주말 일이다. 토요일, 일요일. 다 하면 한 달에 한 6 0만원 쯤 벌 수 있다. 60만원이면 내게 그야말로 생명수다 생명수. 그냥 알바다운 알바를 하고 싶었다. 일만 열심히하면 되고. 열심히 하다보면 배우게 되서 잘하게 되는 일. 사실 사람의 말에 더 이상 스트레스 받기는 싫었다. 그리고 딱 휴게소에서 커피 사는 정도. 내가 너무 그 사람들에게 좋은 걸 줘야만 하는 일은 하기가 싫었다. 돈도 없다. 진짜 돈이 없다. 지금 사실 살고 있는 집의 월세도 거의 3달가까이 밀려서 보증금에서 까이고 있다. 벌써 보증금 절반이 까였다.


실은 보증금 모두 까이게 냅두고 싶었다. 왜냐하면 열심히 하고 있는 작업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 작업은 그 대상도 꽤 블루오션이다. 그래서 한 한 달, 두 달 그래. 두 달 정도만 내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고 꾸준히만 해나간다면 수익을 낼 승산이 있어보였다. 그래서 그 때까지만 좀 버티면 안될까. 난 지금 너무 행복한데. 아침에 일어나면 일어나고 싶을 때까지 버티다가. 아침 밥을 해먹고 영상을 계획 하고 촬영하고. 관련된 공부를 도서관에 가서 하고. 다시 돌아와서 목사님과 성경도 읽고. 달리고. 영상을 편집하는 이 삶이. 무척이나 행복하다. 원만하게 올라가는 등산을 하는 기분이다. 산뜻하면서. 약간은 긴장되어있지만. 뚜렷하게 정상을 쳐다보고 있다. 두리번 두리번 여러 산을 훑지 않는다. 그래서 행복하다. 어디에서 길을 잃든 정상을 쳐다보면 되니까.


또 달라진 것은. 그 정상에 계속 머물러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정상에 올라가면. 싸놓은 김밥과 생강차를 꺼내 먹고.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정상 경치를 구경하고. 사진도 좀 찍다가. 다시 내려오면. 그것도 행복이지. 그리고 내려 올 때는 어떤 정상을 올라가볼지 여기저기 휘둘러 보는 것도 꽤 괜찮을 것 같다. 사실 정상에 좀 더디게 올라가도 괜찮다. 그 올라가는 과정 자체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내가 그 등반을 계속할 수 있게 나를 지원하느냐. 가끔 물이 필요하면 약간 우회해서 주변의 절로 향하는 길로 걸어가도 괜찮다. 그 절에서 약수도 얻어마시고. 운이 좋으면 사찰 밥도 먹으면 아주 좋지. 조금 신비적으로 가자면, 등산을 하다가 왠 마을을 만나. 그 마을에서 일주일 정도 푹 쉬고. 아침에 일어나 생강차를 마시며 풍경을 구경하고. 거기 사는 사람들이 모는 염소를 같이 몰고. 장작을 같이 떼러 가는 삶도 좋겠다. 이건 네팔 히말라야에서나 가능하겠다.


그래. 내가 오늘 예산까지 와서 카페 알바를 구하러 가는 것은 사찰에 물을 구하러 가는 일, 혹은 마을을 만나 거기서 잠시 머무는 일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꼭 내 삶의 초점이 반드시 정상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물이 없다면 물을 구해야 하니까. 사람과의 시간이 필요하면 사람을 찾아야 하니까. 나는 보통 일단 일을 구했으면 어떻게든 그 곳에서 일할 방법을 찾는 편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전화를 해놓고 보니 휴게소라는 장소가 걸렸다. 예산역에서도 , 그 전 역인 삽교역에서도 자전거로 가면 30분에서 40분 은 걸릴 것 같았다. 토요일엔 아침 8시까지 출근을 해야하고, 일요일에 마감을 하면 8시에 퇴근이다. 2월달까지 일을 하겠다고 말을 했으니. 어떻게 2월달 그 추운 겨울까지의 시간을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밤에 깜깜한데 자전거를 탈까. 기차에서, 그리고 휴게소로 가는 시내버스에서 계속 자전거 루트를 로드뷰로 확인하며 가능성을 밝히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땐 ‘그냥 너무 무리하지 말까’하고 깜깜했는데. 아침이 밝아 환해진 예산군처럼, '이 카페에서 일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겠다!' 생각하던 차에 나는 버스에서 내렸다. 평촌리.


뭔가 이상하다. 분명 지도를 따라 찾아가고 있는데. 길이 막혀있고. 저~위에 휴게소 간판이 보인다. 정말 저~위다. 어느 여행지로 비교하면 아침에 일출을, 저녁에 석양을 구경하러 가는 언덕정도의 높이에 휴게소가 있었다. 그 언덕을 가는 길은 길이라곤 하나도 없이, 그냥 고속도로를 만들기 위해 켜켜이 쌓은 가파른 흙벽(?)이었다. 어쩔수가 있나. 그냥 걸어서 올라가야지. 아뿔싸. 다 올라갔더니 나는 휴게소를 지도에 찍지 않고 고속도로 하이패스 IC구간을 지도에 찍었었다. 그래서 약간 고속도로를 걸음으로 걸어, 드디어 예당호휴게소에 도착했다. 휴게소가 막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래서 카페도 지도에 나오지 않았었다. 내가 원래는 오지 않았을 길로 왔으니. 원래 와야 할 길은 괜찮을까? 걱정이 생겼다. 밝아지던 것이 다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시간은 8시 15분, 면접하기로 약속한 시간은 8시 30분이다. 주위를 둘러봤다. 없었다. 자전거로 이 곳에 올라올만한 길이. 없었다. 혹은 금방 내가 했던 것처럼. 가파른 흙벽(?)을 저 아래에 자전거를 놓고 매일 올라와야 할 판이었다. 아무리 하느님을 믿기 시작했다 해도(꽤 당연하게 일요일은 교회에 가야해서 오후가 가능하다고 카페 사장님께 말했다) 그런 위험을 아주 평범한 일상에 둘 필요는 없었다.


아쉬워요 아쉬워. 사장님. 제가 자전거로 출퇴근하려고 했는데. 마땅하지가 않네요.


아 그래요. 그래도 얼굴이라도 보니까 좋네요.


아. 실은 그 흙벽을 올라오면서. 고속도로를 도보로 걸으면서. 본능적인 쎄함을 감지하긴 했다. 아니. 이 정도면. 당근에 자차가 필수라고 이야기를 했어야 할 거아냐. 지도에 카페가 안나오면. 여기로 오시면 되신다고 문자라도 보냈어야 할 거아냐. 만약이라는 세상 속에서 내가 카페 사장이라면 알바지원자가 몇 명이든 반드시 했을 조처였다. 깜깜한 길을 뚫고오면서. 나는 시도도 해보지 않는 게으른 나를 탓하는걸 피할 수 있었지만. 어쩌면 이미 확인할 수 있었던 여러 신호를 나는 몸으로 몸소 체감했어야 했다. 나는 늘 그랬지. 삼촌이 "편한게 좋은거야. 너는 꼭 편한 길을 돌아가려고 하냐." 라고 했을 때 그게 아니라고 했던 내가 생각났다. 나는 편한 길을 멀리 돌아가고. 사람을 일단 좋게 보고나서 꼭 마지막엔 그 사람에게 실망해서 욕을 했지. 나는 꽤 즐겼는지도 모른다. 두더지마냥. 꼭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깜깜한 진흙 구덩이를 꼭 파서 직접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그래서 그게 인생이다 하하하 하고 또 다시 진흙만 냅다 파고 있는 두더지.


근데 그걸 난 알아. 진흙 구덩이를 파고 딱 나왔을 땐 항상 환히 밝아진다는 것을. 환히 밝아진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그 이후를 생각하면 길이 보이는데. 내가 지나온 진흙 구덩이를 한탄만 하고 있으면 다시 파묻혀버린다는 것을.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카페 엔젤리너스. 예산 예당호 휴게소에 새로 생긴. ‘그래. 휴게소에서 좀 여유를 부리다 가자’라고 생각했다. 잠깐 쉰다고 생각하자. 인생의 큰 파도가 지나가고 있는 마당에 물길을 새로 내려고 막 애를 쓸 필요가 없는걸. 편하게 파도를 타고 가면 될 것을 왜 그렇게 헤엄을 치려고 그러니? 너도 다 알잖아. 지나간 파도 속에서 내가 했던 걱정과 불안들이 모두 기억도 안나는 쓸 데없었던 것들이었음을. 파도가 다 지나가고 나면 있는건 평평한 물결 뿐이다. 그렇다고 니가 억지로 애를 써서 파도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 그래 만들 수 있어. 너가 어떤 파도를 탈지 결정할 수 있지. 하지만 일단 그 파도를 맞이하기로 결정한 이상. 너가 할 수 있는건 그 파도를 가장 잘타는 일 뿐이야. 그 외로 더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힘만 빠진다는걸. 정말 넌 여태 아직까지도 잘 알지 못하는거니?


누가 나 좀 도와주면 안되겠니. 난 앞에 다가올 파도를 기다리고 있다. 저 파도를 넘기 위해서는 힘을 최대한 비축해야한다. 지금의 햇빛의 따사로움을 최대한 누려야한다. 실은 이미 파도를 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난 그것도 알지 못하고.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 나에게 계속 힘을 주라고 하는 것 아니냐고. 그럼 몸에 힘이 들어가, 팔은 경직되고 다리는 굳어. 물에 가라앉을 수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로. 그러나 가라앉고 있을수록 외쳐야한다. 나 좀 도와달라고. 그리고 다시 따스한 햇빛을 감싸안으며. 눈 앞에 있는 파도를, 넘실거리는 그것을 바라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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