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제는 복종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내가 어떻게 하루 종일 쉬는 시간에도 쉬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느냐를 생각해보면. 가장 큰 공로는 학교라는 공간에 있다. 남자들이 천명 넘게 우글우글대는 우리 학교 건물. 특히 우리 학교는 시골짜기에 있는 천주교 학교라 주변에 깡 논밭 말고는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밖에 나가 뭘 하고 싶을 유혹도 적었을 뿐더러. 물론 쉬는 시간마다 잠깐 운동장이나 학교의 정원을 좀 산책하며 공기라도 쐬었으면 좋았으려만 그러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매일 점심, 저녁을 먹을 때마다 긴 언덕을 올라 급식실에 갔어야 했기 때문에 두 번의 왔다갔다 하는 산책은 보장이 되어있었으며. 7시가 되면 야자를 하러 자습실에 가는 길에 돌 계단을 걷는 그 공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 학교는 배우는 공간이라는 점. 수많은 남학생들이 그 배운다 라는 것에 순종하지 못해 이리로 튀고 저리로 튀면서 그들의 마음은 이지러졌을지 몰라도. 나는 배우기로 작정하고 공부했기 때문에 학교라는 공간은 나를 계속해서 파고들게 도와주었다. 어쩌면 나는 그 당시 학교라는 공간에 복종한 것이었다.
최근 나의 유투브 알고리즘에 불안과 우울을 극복하기 위해 집을 포기하고 여행을 다녔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집에서 있을 때마다 이렇게 가라앉고 불안하다면, '집이 없으면 되는거 아냐?'. 그 생각은 정확히 내가 2017년에 혼자서 하고 실행에 옮겼던 생각이다. 물론 나는 조금 더 절박했다. 25만원짜리 고시원 침대에 혼자 누워있다 문득, 이렇게 좁은 공간에 쳐박혀 있느니 차라리 매일매일 찜질방을 옮겨다니며 사는게 더 가성비가 좋겠다. 그러고 나는 3개월 정도 카페, 학교, 찜질방, 친구 집(그리고 내가 사가는 치킨)을 전전하며 지낸 적이 있다. 꼭 거북이 등껍질 혹은 달팽이 집 처럼 65리터 도이터 배낭을 메고 다녔다. 물론 마냥 물질적으로 실용적인 결정만은 아니었다. 나름의 철학적 깊이가 있는 결정이었다. '인간은 원래 동굴과 동굴을 매일매일 오가는 동물이었어. 인간에게 불안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그 불안에 걸맞는 이동성이 삶에 갖춰져야만 이러한 불안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 8년 전 나는 불안을 잠재우거나, 불안을 지나가게 냅두기보단, 그 불안에 이끌려다니는 편이 더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더 열심히 살 수 있다고 믿었기에. 나는 그 불안으로 여러 장소를 전전하며 계속해서 노트북안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 때 내가 관심을 가진 것들. 코딩. 인테리어. 편집디자인. 이런 것들.
나의 문제는 복종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집에 있을 때 불안하다면, 그 불안이 끝내 가라앉아 내 엉덩이 밑으로 가라앉을 때 까지 가만히 누워있으면 된다. 차라리 가만히 있기가 힘들다면 유투브 영상이나 넷플릭스를 보면서라도 시간을 축내면 된다. 집은 원래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바깥의 불안과 고됨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휴식을 취하는 곳. 그게 집이다. 그러나 나는 집을 집이라 여기는 평범한 다른 사람들이 집에서 어떻게 지내고 어떻게 느끼는 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으므로. 열심히 살려고해도 열심히 살 수가 없고. 쉬고 싶음과 열심히 일하고 싶음이 매번 충돌하다 끝내 그게 내 마음 속의 충돌로 끝나게 되는 집은 지옥과도 같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러 라이프스타일을 충돌시켰다. 미니멀리즘, 디지털 노마드, 집에서 일하는 가정주부.. 결국은 다 집에서 쉬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는 달리 집에서 풀타임으로 일할 수 있다는 상상력이 내게 가능했으므로 나왔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상상들이었다. 차라리 그 때 밖에 나가 무슨 알바라도 했으면, 최소한 우리 엄마나 아빠가 속을 덜 썩었을텐데. 근데 그럴 용기조차 그 때의 나에겐 없었고. 내 모든 승부처를 집으로 끌고와 집 안을 소용돌이 치는 고뇌, 그 자체가 내 삶이 되도록 내버려 두었다.
최근 내 집의 보일러 값이 엄청 많이 나온다는 걸 알았다. 심지어 내가 서울에서 일하면서 한 달간 집을 비웠을 때 그냥 외출로 조금 켜졌을 뿐인데 4만원이 나왔다. 심지어 집은 따뜻하지도 않았었다. 외풍이 너무 심했고. 내가 이곳 저곳에 확인한 결과 보일러가 애초에 효율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죄 없는 가스공사 상담직원과 티격태격하다가, 보일러 회사에도 전화하다가, 도대체 이렇게 가스비가 나오면 보일러 겨울에 제대로 틀면 얼마나 나온다는 거야 하는 부당한 감정을 다 내려놓았다. 그냥 보일러를 안틀고 지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다행히도 마침 교회 집사님이 안쓰는 모피이불 두 개를 줘서. 잠을 잘 때는 이불을 5겹 껴서 덮으면 춥지 않게 잘 수 있었다. 문제는 생활이었다. 잠을 자고나서 일어난 뒤, 그 추운 집에서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 난로를 살 돈이 아깝기도 했고, 이번 겨울은 난로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추위였다. 처음에 나는 도서관으로 피신했다. 히터 빵빵한 도서관에서 책 읽고 공부하다가 중간에 나와서 산책하다가. 꽤 괜찮은 라이프스타일이었지만. 묘하게 불편했던 건 그 따뜻함과 추움의 대비였다. 따뜻한 도서관에서 잠시 산책하러 밖으로 나갈 때 맞이하는 추움이 불쾌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가끔 깜빡하고 견과류나 과일 등을 챙겨가지 않았을 때는 먹을 것이 정수기 물 말고는 없는 것도 단점이었다.
내 수중에 만원이 있고 배가 고프다면 정신 없이 만원 안쪽으로 사먹을 수 있는 순대국밥 집을 찾듯이. 내 삶의 문제가 조금이라도 따뜻한 곳을 찾아나서는 게 되었을 때는 정신 없이 온기가 있는 쓸만한 자리를 찾는다. 너무 지나치게 따뜻한 도서관은 안락한 공간이었지만 추운 나의 삶에 박탈감을 안겨주었다. 그러다 발견한 한 공간. 그 공간은 교회였다. 원래도 교회 예배당 입구 쪽에 있는 소파가 있는 목양실이나, 그 바깥 건물에 위치한 세미나 실은 내가 커피를 먹기 위해, 춥지 않은 여름에 공부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미나 실은 너무 대놓고 따뜻한 공간이기에 대놓고 사용하기가 좀 그랬고. 목양실은 예배당 입구에 있는 공간이라 추웠다. 나의 시야는 형형색색을 보고 있었지만 실은 추운 온 세상 속에서의 온기라는 형상을 찾아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예배당 맨 뒤에 긴 일자형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 책상에 목양실에 있는 초록색 의자를 놔보았더니. 추운 겨울에 작업하기에 너무나도 딱 좋은 자리였다. 매일 새벽예배를 하기위해 보일러를 틀었을 것이기 때문에 적당한 온기가 교회 예배당 안에는 남아 있었고. 나는 그 온기마저 감지할 수 있을만큼 온기에 예민한 상태였다. 가끔 입이 심심하면 바로 나가면 옆에 있는 세미나 실에서 율무차, 커피믹스를 타마시러 아주 잠깐 밖을 나갈 수가 있는데. 그 나갈 때마다 보이는 교회의 마당 풍경은 오서산 산 풍경이다. 그 때 마주하는 추위는 불쾌하지 않았다. 첫째, 1층에서 나갔다가 1층으로 다시 들어오는 외출은 고층에서 나가 고층으로 다시 들어와야 하는 외출보다 한 4배는 편안하다. 둘째, 예배당의 적당한 온기는 바깥을 나갔을 때 마주할 추위가 불쾌해지지 않을 정도의 온기였다. 발과 허벅지를 담요와 방석으로 감싸면 한 시간 정도는 또렷하게 집중할 수 있는 정도의 온기. 그러나 그러다가 추운 바깥을 편안하게 산책하고 돌아오면 따스하다고 느껴질만한 온기.
거의 10년 동안 고민한 문제가 있다.어떻게 하면 산책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는지 라던가. 어떻게 하면 카페에 가지 않고도 집중해서 일을 할 수 있을까의 문제. 혹은 오래동안 앉아있어도 허리 디스크가 나지 않게 편안하게 앉을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 등등에 대해 어떻게 해결할 지를 고민하는 편이었는데. 그 예배당의 맨 뒤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면 이 모든 고민이 말끔하게 해결되었다. 40분에서 1시간 정도 앉아있으면 조금은 춥기 때문에 몸에 열을 내고 싶어진다. 그럼 자연스럽게 패딩을 입고 산책을 나가거나 커피를 타러 갈 수밖에 없다. 예배당 공간은 넓고 천장은 높기 때문에 좀 일이 지루해진다 싶으면 그 예배당을 걸어다녀도 되고, 그냥 한 바닥에 누워도 된다. 온기만 있는게 아니라 적당한 한기가 있는 예배당. 그러나 딱 내가 작업할 곳만 불을 킬 수 있고 나머지 공간은 어두컴컴한 예배당. 그러나 스테인드글라스로 비추는 빛이 꽤 이쁜 예배당은, 아마 추운 겨울에도 굳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켜 내 뇌를 식히고자 하는 그 정신적 필요에 딱 적합한 환경이었다. 나는 그 후로 그 곳을 떠나지 않고 작업을 하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정말 자기 직전까지도 계속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예배당은 나를 꽤 경건하게 한다. 욕을 구수하게 같이 할 삼촌이나 친구가 전화하면 굳이 예배당에서 전화하지 않고 밖에 산책하러 나가 전화를 한다. 심지어 그 일자형 책상 바로 앞에 있는 유리막에는 예수와 십이제자의 최후의 만찬 그림이 그려져있는데. 가끔 작업을 하고 공부를 하다가 앞을 보면 예수님이 밥을 먹고 있다. 그 좋은 공간에서 집중할 수 있는 행운을 경험하고 나서, 잠시 광양에 아빠를 보러 갔더니. 그 작은 자리가 너무나도 그리워졌다. 공부하다 산책하기 가장 쉬운 자리. 밤 늦게까지 집중하기 가장 좋은 자리. 허리 디스크 걱정할 일 없는 자리. 그 그리움 탓일까. 언어학 논문을 전전하며 공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었던 나는 목표를 다시 세운다. 신약성경을 읽어봐야 겠다. 노르웨이어 신약성경 오디오북을 동시에 들으면서. 그래서 노르웨이어를 제대로 한 번 작정하고 배워봐야겠다. 공간은 나를 점점 더 그에 알맞는 목적에 대해 복종하게 만든다. 그리고 천천히, 그 복종함으로 하루를 완전히 채운 나는, 집에 갔을 때 더 이상 쌓을만한 어떤 미련과 걱정도 없이 편히 쉬고 잘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에서야, 나는 편히 쉬는 것이 목적인 집이라는 공간에 더 복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