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도 보장되는 것

따스함은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과 관련한 것이다

by 김상혁

24. 2025년 1월 13일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까? 돈을 안벌고 사니까 꼭 죄인이 된 것 같다. 죄인이어서 누릴 수 있는 것도 굳이 피한다. 어차피 저런 것 없어도 행복하니까.




추위는 피하는 것. 시원한 건 찾는 것. 온기는 건지는 것. 글을 써놓고 온기는 건지는 것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온기는 찾는게 아니다. 온기는 피하는 것도 아니다. 온기는 건지는 것이다. 구석구석. 밑바닥까지 끝까지 다. 건져내야 언제나 온기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온기를 찾느라 내 인생을 허비하지도 않고. 온기를 피하느라 나에게 가혹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보일러를 틀지 않은 집에서도 온기를 건질 수 있다. 이불 6겹을 덮어서 그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나의 따뜻한 체온이 금새 내 몸이 들어가 있는 작은 이불 속 공간을 따뜻하게 데핀다. 지나가다 발견한 베트남쌀국수 집에서도 온기를 건진다. 직원과 사장님의 공손한 태도. 고수를 신경쓰라는 배려. 맛있는 소고기 쌀국수. 내가 왜 추운 지방에 자꾸 가고싶었는지 알 것 같다. 추운 곳에 가면 따뜻한 온기 하나하나가 소중해진다. 그리고 그 온기가 마치 깜깜한 어둠 속에 작은 새틀 오렌지 빛처럼 눈에 훤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온기를 찾을 수 있고. 온기를 건질 수 있다.


이상하게 오늘은 감옥에 사는 사람들에 꽂혔다. 시골의 추위 속에서 온기를 건져내다가 오랜만에 찜질방을 가기 위해 홍성 시내에 와서부터다. 관대함에 대해 자꾸 생각하는 걸 보니 내가 쉬는게 필요하구나. 토요일에도 친구 결혼식에 다녀오느라 제대로 쉬질 못했다. 마음은 계속 가동한다. 내가 해내야 하는 일들.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들에 대해서. 그걸 내가 억지로 멈출 순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마음보다 더 빠르게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나와 함께 발맞춰 걷기 위해선 잠시 멈춰서야만 했다. 그래서 마음이 모두 다다르기를 기다린 후. 다시 달릴 필요가 있었다. 찜질방에 갔다. 내가 사는 곳과는 달리 모든 곳이 따뜻한 곳. 그 곳에선 따뜻함을 건져낼 필요도 없다. 찾을 필요도 없다. 아니. 따뜻함을 찾으러 온 사람들 온통이라 봐야하나. 오늘 하루는 이 곳에서 아무 생각 없이 누워있으며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아케인을 보자. 이것보다 더 좋은 행복이 있느니. 꼭 이렇게 찜질방에 안와도 따뜻할 수 있느니 하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자. 그냥 지금 내 주변에 펼쳐진 따뜻함. 크기도 하지만, 실은 똑같이 작은 따뜻함을 늘 그렇듯이 열심히 건져내자. 오히려 따뜻한 게 온통일수록 따뜻함을 건져내기가 어려운 것 같으니까.


‘감옥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따스함은 마땅한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 생각을 하지 못해 따뜻함을 계속 피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쩌면 ‘그 사람들과 나는 다른 인간이야’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 사람들은 죽어도 싸.’라고 생각했는지도. 신기하게도, 그 사람들은 죽어야 한다. 그 사람들은 다른 인간이다. 그 사람들을 피해야해. 라고 끝까지 생각했더니 어느새 다시 그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다. 달렸는데 끝이 없으면 더 선명하게 시작점으로 돌아갈 수 있지. 달렸는데 중간에 포기하면 애매하게 끝이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 달리기 쉽지. ‘그래. 그 사람들은 죽어도 싸. 그 사람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이야.’이렇게 생각했고, 생각하고, 생각할 나 또한 감싸줄 때. ‘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인간이야. 그 사람들도 살 이유가 있을거야.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죽어도 싸. 나는 다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이야.’ 이 생각을 물리치기 위해선 적에게라도 악수를 건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국의 감옥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국의 감옥도 여튼 내가 지금 추운 겨울에 보일러를 틀지 않고도 조금의 따스함이라도 건지고 있는 집보다는 따뜻할거다. 세끼 식사도 꽤 신심있는 조리사와 영양사들의 음식으로 잘 먹겠지.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그들은 앞으로 새롭게 살 이유. 자기가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아주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할거다. 그들이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깨닫는다면. 그 깨달음이 결국 나에게까지 닿을테니까. 사랑받을 수 없다고. 따뜻함을 피하는 내가 그들을 점점 더 싫어할 때. 그들은 나의 혐오를 뚫고 사랑을 발견하고 따뜻함을 건져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발견해야한다. 그래야 그들에게 주어진 당연한 것들이 내게도 당연한 것이 될테니. 나의 의심을 그들이 대신 뚫어줄테다. 그런 거대한 일이 벌어져야 하는 곳에 작은 힘을 보태어, 불가능해보이는 따스함을 생각으로라도 건낼 때. 그 따스함은 결국 내 가슴에 와닿게 된다.


노르웨이에서 감옥은 취지가 원래 그렇단다. 감옥이란 곳은 벌을 주는 곳이 아니라.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따스함의 경험을 일정기간동안 체험시켜주는 곳이라고. 이해하기 어렵다. 이 세상은 이렇게 각박한데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그런 따스함을 경험한다는게 말이 되나. 이렇게 또 나는 내가 받을 수 있는 따스함과 멀어진다. 그들의 따스함을 내가 뺏앗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따스함은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과 관련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따스함을 박탈할 때, 나는 결국 내 주변의 따스함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그 범죄자들도 깨닫게 되는 것 아닐까? 따스함은 사실 아주 주변에 있던 것이라고. 심지어 내 몸으로부터도 따스함은 나오고 있다고. 따스함을 박탈당했다고 느낄 이유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따스함을 찾아 헤매다 잘못된 행동을 해야 할 이유도 없다고. 아마 그 사실을 일깨우는 것이 그 노르웨이 감옥의 목적일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욕하는 것은. 남겨진 피해자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그런데 그래서 더더욱 따스함을 잃지말아야겠다고. 범죄자에게 까지 닿을 따뜻함이 어디에든 못 닿을 이유가 없으니까.


어쨌건. 내가 감옥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건 사실 아주 이기적인 이유다. 그들도 따스한 곳에서 잘 자격이 있다면. 그들도 맛있는 밥을 매일 먹을 자격이 있다면. 그들도 가끔 밖에서 들어온 좋은 것들을 경험할 자격과 가능성이 있다면. 그 자격이 나에게 없을리가 없으니까. 단단히 물리치고 싶은 것이다. 내 의식에 뿌리깊게 박힌 자격없음의 생각들에 대해서. 비난과 혐오에 대해서. 왜냐하면 관대함이 더 이상 나를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이다. 관대함 속에서 더 성숙할 수 있음을 믿는다. 관대함 속에서 더 열심을 추구할 수 있음을 믿는다. 사실 이런 이기적인 이유로 한 생각인 탓에, 무슨 개 소리를 저렇게 길게 지껄이나 생각해도 할 말이 별로 없다. 보통 저런 개소리가 더 날카롭게 따뜻함을 간직하려는 사람을 찌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움이 된다. 감옥에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 조금 더 머물자 이 따스함에. 이 따스함을 끝까지 건져내자. 그래야 따스함을 잃어버리고 따스함을 찾아다니며 생기는 비극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이 섬뜩하다고 느낄 수록. 생각을 더 내 마음으로 돌려. 섬뜩함 마저 따뜻하게 감싸는거다. 그럴 때마다 상상 속의 나는 점점 자랄 수 있는 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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