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라는 파장

내 삶은 어디로도 정착하지 못하고 바람에 날리는 얄팍한 나무가지같았다

by 김상혁

26. 2025년 3월 8일

진학 예정인 대학원을 포기했다. 홀로 우뚝 솟아올라 나를 증명하기를 그만 두기로 했다. 그 대신 더 파고든다. 나에게 사랑을 주는 교회 사람들로, 가족에게로. 한 번 그냥 그렇게 둬보도록 하자.




나는 현재 일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광천에서 지낸다. 광천의 교회에서 묵을 방을 얻었고. 작년부터 함께 친해진 이웃집에서 밥도 주신다. 그래서 광천에서는 그냥 몸만 가도 내가 살 수 있다. 그 곳에서 노르웨이어를 신약성경으로 공부한다. 내가 이곳에서 지켜야 하는 것은 새벽에 6시에 일어나 새벽교회에 가는 것. 남들은 어려워서 못한다는 미라클 모닝을 이 곳에서는 그냥 새벽 6시가 되면 찬송소리가 주변에서 나서 깨게 된다. 수요일마다 저녁예배에 가는 것. 생각해보니 마침 수요일 저녁이 광천에서의 마지막 날이구나. 그리고 일요일 날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 사실 이 때 나는 무기명으로 헌금 5만원씩을 낸다. 내가 광천의 월세 30만원 집을 빼면서 다짐한 것이다. 월세를 집주인에게 내느니, 차라리 이 곳에서의 삶을 지탱해준 교회에다 돈을 내야겠다. 목사님이 가끔 내 월세 30만원이 너무 비싸다고, 20만원으로 낮춰달라고 사정해보라고 말했다. 그런 것도 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그렇게 20만원이 책정되었다. 그 20만원을 교회에 내버려야겠다. 어차피 그 돈은 교회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퍼지게 되어있다. 그 여파는 내가 매일 밥을 먹는 이웃집에게도 갈 것이다. 따라서 완전히 삶의 기본적인 것을 이 곳 사람들에 의지하는 내가 20만원을 한 달에 헌금으로 내는게 그리 커다란 것이 아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은, 이 사람들이 헌금에 상관없이 나에게 주고자 하는 사람들임을 알기 때문이다. 정당한 권리로서 주장하는 것보다, 미묘한 긴장감 위에 아슬아슬 줄타듯 서로에게 의지하는 것이 온전한 감사와 자유를 위한 방편이다. 따라서 광천에서는 시작을 교회 예배로, 끝도 교회 예배로 맺어진다.


내가 적어도 올해 여름까지 광천에서의 삶을 유지하는 이유는, 이 곳에서의 파장이 내게 편안하기 때문이다. 가장 언어공부를 하기 마음 편안한 곳이 광천이다. 지금 현재 나를 최소한의 의무만 다하면 있는 그대로 존중해줄 수 있는 곳. 존중을 넘어서 생존할 수 있게 해주는 곳. 그러한 파장 속에서 내 밑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의 사람들의 삶을 보면, 내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속 노력하며 살기만 하면 내 삶에 걱정할 것은 없음을 알게된다. 그리고 이 곳에서 사는 것은 내 주변 가족들에게 미묘한 긴장감을 준다. 지금까지 나는 아빠의 금전적 지원을 받으며, 재혼한 엄마의 집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며 그 눈치와 죄책감으로 고민하는 삶을 살았다. 계속 내가 하고싶은 언어공부를 하고 싶고, 내가 바라는 목표를 지향하며 살고 싶은데, 그것을 지탱해주는 부모님에게 미안한 감정이 컸다. 광천의 사람들이 부모님보다 더 많은 것을 준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광천의 사람들이 내게 현재 주는 것들은 나의 부모님을 자극한다. 왜 이 곳의 사람들은 어떤 눈치도 전혀 주지 않고 나에게 밥을 챙겨주는가. 엄마는 그래서 더 내게 눈치주지 않고 나를 자신의 집에서 밥을 먹게 하려고 노력한다. 왜 이 곳의 사람들은 내가 노력할 수 있는 생존의 발판을 내게 보장해주는가. 아빠는 더 내게 '네 인생이니까 네가 알아서 살아라' 라고 말하며, 내가 세상에 받을 것들은 자신 바깥으로도 열려있음을 깨닫는다. 엄마는 그러면서 이웃집에 김치와 동치미를 좀 갖다 주라고 하고, 아빠는 교회 사람들에게 주라며 광양 기정떡을 보내준다. 나 또한, 교회 예배를 갈 때마다 더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을 다잡으며 엄마와 아빠를 더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엄마와 아빠와 더 함께 할 수 있는 삶을 바라본다. 우리 가족중에는 교회다니는 사람이 없다. 첫번째로 교회에 아주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한 나는, 아주 커다란 자극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광천에서 지내다가 목요일이 되면 전주에 온다. 전주에는 아빠가 계속 월세를 내고 있는 주공아파트가 있다. 그 곳에 내가 혼자 지낼 수 있는데. 나는 광천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며 영상도 만들고, 중고등학교 때 엄마와 싸울 때마다 줄곧 산책하곤 했던 천변을 산책하기도 한다. 어제 막 시작한 이 곳에서의 새로운 일상이다. 이 곳에 오면 엄마는 나를 부른다. 삼겹살 한 근을 5000원에 샀다고. 삼겹살좀 먹으러 오라고. 오늘은 카페에서 일을 하고 가겠다고 했는데. 집에 와이파이가 없기 때문이다. 엄마는 왜 카페에 가냐며, 와이파이가 없어서면 자기 집에 와서 하라고 한다. 나는 알겠다고 했는데. 왜 인지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카페에 가려는 발걸음은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았지만. 엄마 집으로 일을 하러 가는 발걸음은 계속 주저했다. 나는 엄마가 있는 공간에서 일을 할 수 있는가? 아니라고 결론내렸다. 적어도 그것은 편하지가 않다. 엄마 집으로 가는 이유는 밥을 먹으러, 엄마를 보러 가는 것이 더 알맞다. 일을 하는 것은 내가 혼자 있는 공간에서. 아니면 돈으로만 관계맺는 익명의 사장님이 있는 카페에서 하는 것이 훨씬 편안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카페에서 일하고 좀 있다 점심시간에 밥먹으러 가겠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전주에 와서 엄마를 볼 때마다, 광양에 가서 아빠를 볼 때마다. 재작년까지 나는 무기력해진다고 느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느낌. 자꾸 무언가가 나의 발목을 잡아 서울에서는 활기차게 살던 내가 아무것도 하지를 못했다. 나는 그 느낌이 정말 싫었다. 그래서 2일, 3일이 지나면 곧장 서울로 도망치듯 돌아갔다. 서울에 가면 활력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의욕이 생기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도 편했다. 그러나 서울에서의 삶이 너무나도 지쳤다. 그 때 처음으로 나는 아빠 집에서 3주 이상을 그냥 쉬었다. 도서관도 가고. 집에서 누워있기도 하고. 부모와 함께 있을 때 느껴지는 그 무기력은 사실 무기력이 아니었다. 그냥 쉴 수 있다는 안도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무기력이라 느낀 나는 쉴 수 있다는 안도감을 거절하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나는 쉴 수 없었다. 혼자 있을 때도 쉴 수 있고. 친구와 있을 때도 쉴 수 있지만. 사실 내가 태어나서 가장 쉬고싶은 그 관계 안에서 나는 가장 쉴수 있었지만. 그 쉼을 거절하고 자꾸 달아나려 애를 쓴 것이다. 내 삶은 어디로도 정착하지 못하고 바람에 날리는 얄팍한 나무가지같았다. 나는 엄마와 아빠에게 엄청난 고마움을 느낀다. 이 세상의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삶의 규범들을 자식인 내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이라는 그 사이의 사랑이라는 것에서 출발해 나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자 하는 그것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완벽하게 내게 안도감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그 안도감을 찾아 헤매서 광천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나의 엄마와 아빠는 깜깜하고 어둠같이 느끼는 세상 속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빛으로서 내게 역할을 하고 있다. 내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합리성을 강화해 나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세계관의 허무함을 점점 함께 깨달으며, 자식에게 부모란 그 합리성을 뛰어넘는 영원한 존재임을 더 드러내어주고있다.


따라서 부모라는 파장은, 내게 더 큰 안도감을 주는 파장으로 나아갈 것이다. 아빠와 있으면서, 엄마와 있으면서, '내가 이것을 해야하는데' 하는 세상의 합리적인 생각이 파고들 공간은 점점점 사라질 것이다. 그 합리적 생각은 내게 가장 큰 안도감을 주는 존재들에게 다시 사랑을 되갚는 길을 위한 오로지 도구로써 이용될 것이다. 주변의 분위기 좋은 카페를 여행하면서, 내가 꼭 가보고 싶은 공간에서 머물면서. 어찌보면 그렇게 삶이라는 것은 꿈이자 사랑으로. 종국에는 오로지 사랑으로만 돌아가는, 톱니바퀴도, 별자리도 아닌 거대한 나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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