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크 아웃

존중은 사랑을 더욱 깊게 한다

by 김상혁

27. 2025년 4월 26일

매일 밥을 챙겨주는 이웃할머니 할아버지는 언제까지 나에게 밥을 줄까? 엄마는 나를 구출이라도 하려는 듯 계속 전주로 밥먹으러 오라고 부른다. 이제 받는게 당연하게 느껴졌다면, 떠날 때가 되었다는 신호인걸까.







할 것이 너무 많아. 어제 하루 일을 하면서 흙에서 돌을 줍느라 옷도 더러워서 빨래를 하고 말려야 했고. 이제 두 달 뒤면 노르웨이를 갈 예정이기 때문에 노르웨이 공부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매일 아침이면 나를 불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광천에서 지내면서 매일 나와 같이 밥을 먹으시는 이웃 할머니. 처음에는 거기서 아침, 저녁 밥만 먹었다. 오후 쯤에 컵라면 하나 먹고 가라고 연락이 오면 컵라면 먹고 다시 나오고. 그런데 내가 광천의 월세 집을 빼게 되면서. 여기 이웃 집은 내가 다시 돌아올거란 기대를 버렸다. 광천에 할 일도 없는데 뭐하러 오겠냐며. 교회는 꼭 와야한다는 목사님과는 다르게 이 이웃집 분들은 신세를 진 나를 마음 속에서 깔끔하게 떼어내주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대학원에 가기까지는 광천에서 지낼 생각이었고. 매번 신세를 지면서 이 인연을 그냥 놓아버리진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돌아왔고. 지금은 부르지 않아도 아침이면 가서 밥을 먹고. 아무도 안쓰는 안방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피곤하면 낮잠을 자는가 하면. 이웃집 할머니의 "아니 왜 자꾸 초인종을 눌러? 열어주러 가야하는고만. 비밀 번호 알잖여~" 하는 말을 한 3번 이상 듣고 나서는 이젠 내 집 들락날락 하듯이 비밀번호를 입력해서 들어간다. 여기 강아지 초롱이도 이제 내가 오면 반갑다는 듯 내 앉은 자리 위로 달려든다. 존중은 사랑을 더욱 깊게 한다.


나라고 아무것도 안하고 신세를 지는 것만은 아니다. 할머니가 종종 소주나 맥주를 혼자 드시곤 했는데. "야야 저기 다복슈퍼 가서 소주맥주 하나씩 사와라" 하면 나는 두말하지 않고 소주맥주를 사갔다. 가끔은 소주 말고 맥주만 드시라며 맥주만 사가는 딜을 하기도 한다. 아저씨가 일을 나가시면 할머니는 혼자 집에서 계속 누워있으면서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 먹는 거라곤 그냥 컵라면 몇 개 조금 먹고 마는데. 내가 집에 오면 밥도 앉혀놓고 아저씨가 해놓은 반찬이나 찌개 끓여서 식탁에 올려놓고 하니까 자기가 잘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늘상 말한다. 밖에좀 나가시라. 사람좀 만나시라 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이 할머니는 밥 먹다가도 자기가 아는 시나 고전 시를 읊는가 하면. 40년대 50년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마을 회관에 잠깐 다녔으나. 거기서는 더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들의 재롱꾼이 되어버려 맨날 노래만 불러주고 왔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안방에서 공부하다가 종종 뭘 먹을겸 괜히 거실로 나가서 티비를 보는 할머니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좀 밖에좀 나가라고, 초롱이 산책이라도 시켜야지 하면서 잔소리를 하기 시작하는가 하면. 아예 옥상에 한 번 나갔다 오자고 해서 옥상에 같이 나가봤다. 그랬더니 4월의 날씨에 옥상의 바람과 풍경이 너무 제격이였고. 할머니는 내게 "여기서 공부혀~" 라고 말해서 조만간 텐트를 가져가기로 했다.


그래서 이제 할 것 중에 가장 많고 중요한 것이 아침마다 나를 불러주는 이 할머니의 말동무가 잠시나마 되어주는 것. 밥을 같이 먹는 것. 초롱이 밥 주는 것. 그리고 그러면서 공부하는 것이 되었다. 오늘은 전주에 갈까 싶다가도 아침 일찍 오라고 연락이 오면 그래 오늘은 공부나 해야지 하고 이웃 집에 간다. 그렇게 한 10일 넘게 광천에서 지냈다. 엄마는 내게 왜 거기에만 있냐며 전주에도 좀 와야지~ 하고는 오늘 전주에 오라고 했다. 나는 어제 흙으로 더럽혀진 빨래를 이미 세탁기에 빨고 있었고. 전주에 가려면 그 빨래를 말릴 시간이 부족한 게 문제였다. 또 신발도 빨아서 바깥 볕에 늘여놓아 말리고 있었는데.. 다 젖은 신발을 신고 전주에 가야하나. 어쨌든 다른 잔소리 없이 나 보고싶어 하는 엄마 말은 좀 듣는 게 맞으니까. 사실 처음에는 그냥 다음 주에 간다고 말했다. 그런데 엄마의 대답이 이제 좀 진화했다. 첫 째로 나를 저번에 사놓은 삼겹살로 유혹하면서 이거 냉동실에 이제 놔야한다고 빨리 먹어야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다음 주에 올거 대신 이번에 오라고 말하면서 나의 시간을 존중해주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는 수법을 쓰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엄마가 더 지혜로워졌다고 생각했다. 그럼 어떻게해서라도 갈 수밖에.


전주로 가는 기차 시간은 8시 46분이었다. 세탁이 거의 다 끝난 빨래를 말리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곧장 세탁이 다 된 젖은 옷을 가지고 이웃집으로 향했다. 아침 8시 20분. 그 때는 보통 아직 할머니가 깨기 전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쨌든 이 빨래를 말려놓을 곳이 나는 필요했고. 또 그 전날 내게 밥 먹으러 아침에 또 오라고 하셨는데 그냥 아무 말 없이 전주에 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비밀번호를 입력해 집에 들어가 "저 전주 가야해요. 빨래좀 말려놓고 갈게요" 하고는 바로 빨래 너는 방으로 들어가 빨래를 널고. 할머니 먹으라고 우유에다가 꿀과 얼음을 타고. 식빵에 잼을 발라 놓았다. 기차를 이미 예매해놓았고 핸드폰은 교회에 놓고와서. 후다닥 빨리 다시 나가야 했다. 할머니는 나더러 "뭘 그리 급혀~? 그냥 좀 있다 밥도 먹고 가~" 하는데 나는 가야한다며 비몽사몽 어리둥절한 할머니의 표정을 놔두고 밖으로 나갔다. 집을 나오자 마자 나는 생각했다. 그러네. 뭘 그렇게 급해? 젖은 신발도 아직 마르려면 한참이고. 엄마가 뭐 내가 한 두시간 늦게 간다고 뭐라 할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자기집을 내집 드나들듯이 하게 해준 사람을 뭔가 빨래 널기 위해 이용해먹은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핸드폰을 찾자 마자 아침 일찍 예매해놓은 기차 표를 취소하고. 가방을 모두 챙겨 이웃 집에 다시 갔다. 할머니는 좀 정신을 차린 듯이 "기차 놓쳤어?" 라고 말하며 내가 전주에 가는 것을 이미 존중하고 있었다.


나는 곧장 밥을 앉혔고. 저기 도가니 탕이나 끓여먹자. 라고 말씀하셔서 도가니 탕을 끓이면서. 저는 좀 있다 전주에서 또 먹을 거여서 별로 안먹을건데 드실 수 있으세요? 라고 물었고. 그려 그거나 먹어야지 밥은 조금만 먹을거여~ 해서 도가니를 많이 넣은 국 그릇과 밥을 한 숫가락 쯤 크게 얹은 밥그릇을 할머니 앞에 놓았다. 나는 밥그릇에 국물만 조금, 그리고 밥도 조금 넣고 먹으니. 왜 그것밖에 안먹어? 하고 한 번 더 내가 더 먹기를 권한다. 밥을 다 먹고나서 어제 아저씨가 사놓은 카누 마일드 아메리카노를 얼음에 타다 먹고. 이웃집에 있는 바디프랜드 안마의자 좀 쓰겠다고 하고 한 30분 정도를 거기에 누워있었다. 요 근래 너무 잠을 못자서 피곤했다. 30분이 다 지나 약간의 선잠에서 깨자. 할머니의 말. 빨리 일어나서 가야지~ 치울거 치우고. 그러고보니 설거지를 아직 안했었다. 기차 출발 시간까지는 한 25분쯤 남은 상황. 십분이면 역까지 갈 수 있어 급하진 않았다. 아유 별로 안급해요~ 하고 설거지를 하니. 이내 여기 꿀 좀 더 타달라며 아까 타드린 우유가 담긴 컵을 숫가락으로 두드린다. 나는 다른 컵에 뜨거운 물을 조금 넣고 꿀을 얹혀 섞고는 그걸 그 우유에 붓고. 얼음 한 두개를 냉동실에서 꺼내 집어넣었다. 그러고보니 내가 탈 기차는 서해금빛열차였다. 기차 내부가 카페처럼 되어있는 칸이 있는 기차다. 매번 그 기차를 타기 전에 편의점 커피를 하나 사서 들고갔다. 나는 싱크대 위에 서랍장을 열어서 음료를 넣을만한 물통을 찾고는 이 것좀 가져가도 되냐고 할머니에게 물었다. 가져가도 되지~. 인스턴트 프림커피 하나. 그리고 카누 마일드 아메리카노 하나를 넣고 뜨거운 물 조금 붓고 나서 얼음을 왕창. 그리고 뚜껑을 닫고 흔들어 섞는다. 꽉 찬 물통을 흐뭇해 하며 가방에 넣자 할머니는 또 저기 쓰레기 통 주변에 쓰레기좀 넣어줘라. 라고 시킨다. 이제 남은 시간은 15분. 아니 뭐 빨리 가야한다면서 계속 시켜요? 웃으면서 화를 내니 할머니는 또 다른 작은 일을 하나 더 시켰다.


집을 나서 화창한 4월의 날씨 속을 걸었다. 기차에서 마실 수 있는 커피 한 통을 테이크아웃 한 것이 괜시리 흐뭇했다. 신발은 이제 거의 다 말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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