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마냥 무기력한 하루를 거의 없다시피 만드는 것이다
새벽교회에 가면 나는 기도시간에 일찍 자리를 나오는 편이다. 처음에는 끝까지 하면 사모님, 목사님에게 이쁨이라도 받을거라는 인정욕구. 그것 때문에 끝까지 붙잡고 기도하기도 했다. 아니면 그 때는 내가 생각의 고리에서 행동으로 옮기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는지도. 그런데 점점 아 지금 뛰러 나가야겠다. 아 지금 그 때 옮기기로 한 짐 옮겨야겠다. 아 사모님이 돌려달라 한 죽 포장용기 돌려줘야겠다. 나를 위하거나. 혹은 염려하는 나를 위하는 생각이 떠오르면 곧장 교회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이웃집에서 밥을 먹고 생활 할 때도. 처음에는 내가 밥을 얻어먹으니 시키는 건 왠만큼 해야한다는 생각에. 이거 가지고오라 하면 가져오고. 저거 하라고 하면 저거 하고. 밥값은 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 꼭 있지 않아도 밥은 먹을 거란 생각이 마음 속에 정착하면서. 그 어떤 관계든 서로 평등하고 존중해야지. 사실 주는 것이 오히려 더 받는 것일지도 몰라. 나는 점점 본인이 할 수 있는 건 본인이 좀 하셔야 한다고. 그래야 좀 움직여서 밖에도 나가시죠 하면서. 너무 막 보이는대로 시키지 말라고. 제가 봤으면 언젠가 하겠죠! 하면서. 당연히 그걸 받아주리라는 앎이 있는 상태에서.
오늘 교회에서 드디어 나간다. 사실 갈 다른 교회는 없으니까 일요일에는 교회를 가기 위해 광천을 갈 것 같다. 그러면서 여행해도 되고. 그러면서 친구보러 서울가도 되고. 아직 그 기차값 만 육천원보다 내가 이 교회 사람들을 보며 느낀 삶에 대한 평온함이 더 가치가 크다. 교회에서 나가게 된 발단은 이웃집 아저씨가 이제 상혁이가 이렇게 계속 밥먹으러 오는게 불편하다고 할머니한테 말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나에게 그 사실을 전화로 전달했다. 이제 너도 독립해야하지 않겠냐며. 나는 그 전달받은 내용이 어떤 의도일지를 고민했지만. 그 큰 취지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고. 이웃집 할머니는 교회에서 먹고 자고 하라고 했지만. 내가 애초에 광천에 산 것은 돈을 교환하지 않고도 먹고자는 감각을 좀 경험하고 싶었던 것이기에. (또 할머니가 밖에도 안나가니 심심할까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다. 그래서 난 전주로 오기로 결심했다.
일요일 예배를 다녀오고 나서 이웃집 아저씨에게 전주에 갈거라고 이야기했다. 아저씨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아저씨는 오래동안 참은 이야기를 하듯. 뭐하러 고대까지 나온 애가 이런 시골에 와서 목사 말만 듣고. 부모님들은 돈 많은 자식을 좋아한다며. 아니 그 목사나 사모는 니가 전주에서 다시 왔다갔다 차비 이만원 삼만원 들어갈텐데 원래는 그 차비라도 주면서 수고했다 라고 말해야하는거야. 이새끼 보면 정성도 대단해. 네 나이 때 내가 애가 둘이었어. 네 나이면 이제 공무원 시험 보기도 딱 좋아. 하는. 나는 아저씨가 밥을 챙겨주기 불편해서, 그냥 하기 싫어서 나더러 그만오라고 한게 아님을 믿는 편이었다. 그보다는 내가 지금 교회에서 자고 이웃집에서 밥을 얻어먹는 ‘꼴’에 대해서 공감할 수 없었을 뿐. 아줌마할머니가 나를 맨날 불러서 이것저것 시킬 때마다 얘도 남의 집 귀한 자식이야 뭘 자꾸 시키고 그래. 미안해서 계란이나 우유를 사올 때도. 상혁이 너는 뭘 자꾸 사오냐. 혹은 내가 와도 되냐고 물어보면. 너는 무슨 죄지었냐. 그냥 오면 되지 뭘 그런걸 묻고그래. 그게 니 문제야. 라고 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저씨는 맛있는 반찬과 맛있는 음식을 내게 내어주는 수고를 했고. 나 또한 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수고를 했다.
그냥 일요일날 목사님께 말씀 드리고 전주로 곧장 돌아가려 했지만. 아저씨의 조언을 듣고 저녁 교회도 가고 그 다음 날 새벽예배도 가고 이웃집에서 아침을 먹고 전주로 가기로 했다. 짐 같은거 들고가지 말고 택배로 부치라는 말에 짐도 택배를 붙이고 자전거를 기차에 실고 가기로. 어제 저녁 예배를 갔을 때 내가 아직 나갈 줄 모르던 사모님은 내 방 청결 상태에 대해 혼을 내는 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이불도 햇빛에 종종 말리고 그래야지."했던 말이 생각이 나 월요일 새벽예배 기도 시간 시작되자 마자 이불을 들고 코인워시방에 와있다. 나는 보여주면, 혼내면, 알려주면 잘하는 사람인데. 뭘 몰라도 너무 모르고 살았고. 낯설지만 사랑을 베푸는 이들과 함께 하며 조용히 많은 것을 배웠다.
전주에 가기로 한 건 실은 독립을 위한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밥 줄 사람을 찾는다. 그래서 전주에서 휴대폰 가게를 하시는 삼촌이 떠올랐다. 이웃집 할머니가 내게 이제 그만 오는게 좋겠다고 말하고 나서. 삼촌이 저번에 내게 "교회에 줄 돈 있으면 나한테 돈 줘." 라고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 교회에 헌금하던 주 5만원을 삼촌에게 주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밥을 삼촌이랑 먹자. 그리고 계속 내가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꾸준히 하자. 또 며칠 전 엄마와 마지막 인사를 하며 보였던 엄마의 주름도 생각났다. 아. 엄마와 조금 더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다. 엄마가 먹으러 오라고 하면 바로 가고싶다. 엄마는 한옥마을 근처 기자촌 마을 옆 아파트에 산다. 나는 이미 전주에도 나만의 교회를 만들었다. 집에서 생활하다가도 삼촌과 밥을 먹고. 삼촌 잔소리를 듣고. 삼촌은 알려주지 않아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미리 잘해야한다고 내게 말을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널 우습게 안본다면서. 엄마가 부르면 곧장 가서 또 꽃 한 두 송이를 엄마 집에 꽂아다 놔야겠다. 그렇게 하루에 마냥 무기력한 하루를 거의 없다시피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해야만 한다고 느끼는 일을 계속 한다.
언젠가 이불을 또 빨래할 일이 생기면. 그 때는 햇빛이 스며드는 날에 대야에 물을 넣고 발로 이불을 밟으며 콧노래를 부르며 이불을 빨고 싶다. 하루하루 새롭게 피어나는 자유를 온전하게 감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