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해도 뒤야!!! 미우면 그냥 미워해!!"
9월 25일. 음력으로 할머니가 돌아가신 기일이다.
할머니, 정말 거기 있으신가요?
4달 전에 나는 엉엉 울었다. 혼자 풀을 누워서 매다가. 땅에 밀착해 그 누구보다 편한 자세로 풀을 매는 방법을 터득하고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8살때 돌아가신 친할머니. 당시 나는 아주 잠깐의 풀을 매는 시간이라도 나 자신의 몸을 아껴줄만큼 모든 사랑을 내게로 흡수하고 있었고, 내 마음의 자리를 비워두고 있었다. 그 빈자리에 친할머니가 들어갔다 나온 것 같았다.
정말 신기했다. 2013년부터 2023년까지, 내가 의식할만한 시간대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기일을 중심으로 내게 일어났던 일들을 쭉 돌아봤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냥 짜집기 한 것 같긴 한데. 한 해도 빠짐없이 나는 10월 말에서 11월 사이에 누군가의 미움을 깊이 생각하고, 그걸 내 삶의 태도로 적용할 수 있는 가치관과 철학으로 정리하고. 꼭 마지막에는 아빠를 향했다. 아빠에 대한 편지를 쓰고, 아빠를 보러 가고, 누군가가 나를 아무리 미워한다 한들 나는 그 미움을 내 생각과 마음 안에 모두 담을 수 있는 힘을 쌓고 있었다. 꼭 그 마지막에는 어떤 특이한 내적 평온함으로 11월의 찬 공기를 흠껏 들이마셨다. 그렇게 10년이 지나 나는 처음으로 내 마음 속에 있는 미움을 긍정하며,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표현을 글로 퍼부었다.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를 만났다고 생각했던 그 때. 내 머리 속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울렸기 때문이다.
"미워해도 뒤야!!! 미우면 그냥 미워해!!"
무슨 방식으로건 그건 할머니의 나를 향한 사랑이었다. 내가 다른 누군가가 나를 미워할 때 어떻게 해서든 그 누군가가 나를 미워해도 될만한 이유를 파헤치고 사고로 뒷받침하고 그래서 미움받을 수 있는 맺집을 쌓고만 있을 때. 할머니는 늘 그러지 말고 나한테 그냥 그런 사람은 너도 미워해도 되는거라고 말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래. 내가 완벽하지 않아도, 내가 조금 실수를 했어도,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아도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는 사람이 할머니였지. 할머니는 늘 밥상에서 밥을 먹을 때 내 흰 밥에 조기를 올려주곤 했다. 내 기억 속 할머니의 모습은 그게 거의 전부다. 가장 귀한 것을 늘 주셨던 할머니. 조건없는 사랑이었다. 내가 우리 아빠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내가 자신의 아들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내가 어떤 존재건 사랑했던 우리 할머니.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그런 사랑을 끔뻑 잊고 살았던 것이다. 할머니가 살아서 지켜봤더라면 속이 백번은 상했을만큼 나는 다른 사람에게 머리끄덩이를 쥐고 흔들 수 있도록 머리를 내주었으며. 흰 밥에 조기를 얹어주던 그런 사랑을 나는 전혀 받을 자격이 없다고 혼자만의 생각 속에서 나 자신을 파묻고 있었다. 어쩌면 할머니는 그런 나를 곁에서 지켜보며 늘 사랑을 주려고 했던 걸지도. 그래서 나는 늘 할머니의 기일쯤이 다가오면 누군가의 미움에 맞설 용기를 갖고 결국 늘 찬 공기 속의 평온함에 이를 수 있었는지도.
그 당시 나의 울음은 내 삶에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 어떤 큰 사랑의 존재가, 사실은 늘상 내 곁에 있으면서 나를 지켜주고 있었음을 처음으로 깨달은 참회의 울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날은 할머니를 아직까지도 매일매일 잊지 못하는 삼촌의 음력 생일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할머니의 자취에 삼촌이 떠올라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카로서 함께 했던 삼촌은 거절하기도 힘들고 늘 부담이 되는 말과 요구를 당당하게 하는 사람이었지만. 할머니가 곁에 있었음을 감지한 나로서 함께 한 삼촌은 내가 우리 가족들에게는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마음 껏 욕할 수 있는 든든한 삼촌이었다. 그렇게 나는 어떤 큰 존재의 사랑이 보이지 않게 내 옆에 있다는 걸 자각했을 때의 내 삶의 변화를 생생하게 체험했다. 그 때부터 아빠의 형제들을 만나는 것은 전혀 내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그 사람들이 내게 밥을 사줄 때 나는 그 어떤 부담도 느끼지 않고 모두 감사히 받기 시작했다. 할머니도 그러길 원할테니까. 당신들은 똑같은 마음으로 할머니를 기억할테니까.
그 뒤에 삼촌과 대화하면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부모로서의 태도가 평범하다기 보단 훨씬 훌륭했었다는 것. 아빠가 늘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며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여기던 것들이, 아빠가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아빠의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삼촌은 아빠가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삶에 대해서 아빠에게 나를 대신해 대변해주기 시작했으며. 그 이후로 아빠는 나의 삶을 더 걱정없이 지지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빠가 주는 마음들에 대해 '아빠는 왜 맨날 저러는거야' 답답해하지 않기 시작했고, 오히려 아빠의 깊은 마음에 감사해하기 시작했다. 단 한 순간의 울음이 단 몇 달만에 나와 아빠의 10년도 넘게 있었던 캐캐묵은 부정적 감정과 갈등을 눈 녹이듯 녹이고 있었다.
할머니, 정말 거기 있으신가요?
저는 어쨌건 할머니를 기억할겁니다. 할머니는 돌아가셔서 이제 저희들의 곁에 없지만. 제가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할머니는 언제나 함께할 거에요. 누군가 나를 함부로 대할 때마다. 나에게 주려고 하는 사랑을 내가 스스로 거부하려 할 때마다 할머니가 제 숫가락에 얹어주신 조기를 생각하면서 더 당당해지겠습니다.
죽은 사람을 잊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세상을 떠나버린 사람은 그 사람이 나를 향해 가졌던 가장 숭고한 마음으로 내 안에 남는다. 그 사람을 마음 속에 간직하는 한, 나의 행복을 내가 쉽게 저버릴 수 없다는 다짐 또한 함께 간직하게 된다.
24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