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함을 추구할수록 내 감정은 선 밖으로 밀려나는 기분이었다.
요즘 그림을 그리면서 자주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사진을 보고 그리는 모작은 굉장히 수학적이라는 것.
모작을 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정확함’을 추구합니다.
눈의 위치가 정확한가?
비율이 맞는가?
형태가 틀어지진 않았는가?
이런 생각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돕니다.
그리고 이런 사고는 결국 ‘측정’과 ‘계산’으로 이어집니다.
이 선은 너무 올라갔나?
여기서 몇 도 정도 기울어졌지?
무의식 중에도 수학 문제를 푸는 듯한 자세로 그림에 임하게 되는 거 같아요.
그러다 보면 그림이 점점 조심스러워집니다.
선 하나 그을 때도 확신이 없고, 뭔가에 얽매여서 멈칫멈칫하게 됩니다.
정확하려는 마음이 선을 점점 굳게 만듭니다.
분명히 기술적으로는 괜찮은데, 왜인지 그림이 재미없고 생기가 없습니다.
무언가 중요한 감정이 빠진 느낌.
그게 뭘까 한참 생각하다가,
‘내 감각이 빠졌구나’ 하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의식적으로 ‘틀릴 자유’를 허락해보려고 합니다.
사진과 똑같이 그리지 않아도 괜찮아요.
조금 어긋나도 좋습니다.
대신 그 선에 내가 느낀 감정과 흐름을 담아보는 거예요.
정확함보다, 자연스러움을.
정답보다, 내답을.
처음부터 비율이나 구조를 맞추려고 애쓰지 않고,
그 장면에서 내가 느낀 분위기나 흐름을 먼저 그리려고 합니다.
선도 더 자유롭게, 리듬감 있게.
손이 가는 대로, 감정이 흐르는 대로.
선을 그으면서 ‘맞았나?’보다 ‘좋았나?’를 기준 삼아 봅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그리면
비록 정확도는 떨어질지 몰라도
그림이 더 생기 있고,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무언가 인간적인 온기가 남습니다.
조금은 엉성하고 거친 선에서 오히려 내 진심이 묻어나는 것 같아요.
그게 요즘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의 상태입니다.
물론, 사실적인 그림의 수학적인 아름다움도 저는 정말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교함과 치밀함, 관찰력에서 오는 미학은 분명히 값지고 감탄할 만한 것입니다.
다만, 나에게 맞는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지금은 ‘정확함’보다는 ‘표현’에 조금 더 마음을 두고 있는 중이에요.
그래서 오늘도 그림을 그리기 전에 조용히 되뇝니다.
“이번엔 잘 그리기보다, 나답게 그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