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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성 Sep 17. 2021

'굿~모닝'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새벽 5시, 알람 소리에 잠을 깬다. 알람이 울리면 단번에 일어나는 스타일은 아니고 정신이 들 때까지 이불속에서 좀 밍기적거리는데 짧으면 10분, 길면 1시간을 멍하게 누워있곤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5시에 알람이 울렸고 비몽사몽 누워있는 시간이 있었다. 누운 채로, 점점 뚜렷해지기 시작하는 나의 공간의 여기저기에 눈길을 보낸다. 어젯밤 말갛게 정돈해둔 책상과 각도가 잘 맞춰져 있는 카페트와 아무것도 어질러져 있지 않은 방바닥을 보면서 만족스런 기분이 된다. 고요하고 단정한 나의 세계에서 또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잔잔한 기쁨에 살짝 미소가 번진다. ‘정말 굿모닝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나의 가지런한 세계 속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오늘은 그 행복감을 배가시킨 무언가가 있었다. 알람을 끄고 정신 차려 들여다본 휴대폰에 메시지 표시가 떠 있었다. 창을 열어 확인해보니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한 잘 자라는 굿나잇 인사였다. 물론 ’잘자요‘라는 세 글자의 다정한 인사에 기분이 좋았던 것도 맞지만 오늘의 기쁨은 이 세 글자보다는 11시 40분이라는 메시지 도착 시간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어젯밤 가장 마지막으로 한 일은 책상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존 일이다. 12시까지 책을 읽다가 잘 계획으로 책상 앞에 앉았는데 어느새 이마가 책상에 방아를 찧고 있는 걸 알아차렸다. 미련 없이 책을 덮고 졸음이 달아나기 전에 잠이 들고 싶어 곧장 이불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 시간이 11시 30분이었고 불과 10분 후에 울렸을 메시지 알림음을 듣지 못했다. 바로 이것. 순식간에 깊은 잠에 빠져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는 포인트에서 배시시 웃음이 비져나왔다. 대견스러웠다.     


특별한 불면이 있는 건 아니다. 잠도 금방 들고 중간에 깨거나 하지 않고 잘 자는 좋은 수면 습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축복받은 수면 습관이 내일도 모레도 계속될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40대 중반부터 지독한 불면으로 약을 처방받아 드시는 엄마를 너무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약을 먹어도 하루 수면시간이 4시간이 채 되지 못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건지를 잘 알고 있다. 엄마로서의 삶이 걱정으로부터, 불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엄마는 남들보다 일찍 사별을 경험한 충격도 있어서 불면의 시작이 좀 빨랐고 그 정도도 깊었다. 불면이 시작되면 삶의 질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잠이 들지 않아 밤을 뜬 눈으로 지새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들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 생각들의 방향이 대체로는 건강하지 않아서 지친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왜 이렇게 잠이 안 오지, 몸은 이렇게 피곤한데 좀 자고 싶은데, 오늘도 잠을 못 자면 또 하루 종일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까.‘ 같은 생각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이 잠을 더 방해하고 마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불면증으로 시들어가는 엄마를 오래 지켜본 까닭에 잘 자고 일어나는 아침이 참 귀하고 감사하다. 이 은혜로운 축복이 언제 마지막이 될지 모르지만 살아가는 동안은 늘 함께 하고 싶다. 하지만 그게 뭐 내 마음대로 되나. 불면증은 아무 예고 없이 찾아와서 결코 쉽게 떠나가지 않는 불청객이다. 이 달갑지 않은 손님 눈에 띄고 싶지 않다. 혼자서 조용히 너무 행복하지도 않고 너무 요란하지도 않게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고요하게 살아갈 테니 시시한 나는 무시하고 지나쳐줬으면 좋겠다. 잘 자고 일어난 새벽, 어둠 속에 눈을 뜨고 나의 잔잔한 행복이 스며있는 세계를 눈으로 더듬으며 미소를 짓는 이 소박한 행복을 내일도 모레도 누리고 싶다. 조용히 은밀하게 아무도 모르게 즐기겠으니 나는 좀 모른 척하고 그냥 지나가 주면 참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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