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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성 Aug 29. 2021

그곳에 계속 있어주길 바란다면

20년 된 아파트의 상가 3층에 세를 얻어 교습소의 문을 연 지가 6년이 지났다. 이전부터 학원 수업을 했던 상가여서 별다른 인테리어 없이 책상과 칠판을 놓고서 수업을 시작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다. 개업을 할 때 상가에 입점해있는 17개의 상점에 팥시루떡을 돌리며 인사를 나누었는데 지금은 그때 인사를 했던 이웃이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교습소라는 것을 처음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받았던 옆집 원장님도 지금은 안 계신다. 이 초면의 원장님에게서 여러가지 조언들을 많이 들었는데 그중에 1층 문방구와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은밀한 귀띔이 가장 쓸모가 있었다.    

 

초등학생들의 쇼핑 메카인 이곳은 규모는 작지만 웬만한 학용품들은 다 있었다. 스티커나 딱지같이, 문방구가 아니면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싶은, 어른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아이들 눈에는 반짝이는 보물들이 가득한 보통의 문방구였다. 하지만 이 문방구에서 가장 인기 있고 잘 팔리는 품목은 문방구 안이 아니라 바깥, 문방구 입구 옆에 작게 창을 내고 화구와 개수대를 놓아 완성된 테이크 아웃 분식점에 있었다. 컵떡볶이와 치킨볼, 감자튀김에 곁들여 시원한 슬러시 한 잔을 찾는 꼬마 단골들이 많았다. 문방구의 분식 담당 사장님은 꼬마 고객들의 이름을 다 외우셨고 친구와 싸운 이야기, 여자 친구가 생긴 이야기 같은 시시콜콜한 상담도 잘해주셨다. 푸근함이라기보다는 재미있는 입담으로 고객을 대하시는 전략을 가지고 있는 분이었다.    

 

초등학교 정문 앞에 위치한 이 문방구는 상가건물과 동갑내기 상점이다. 30대에 문방구의 문을 연 부부는 초로의 중년이 될 때까지 이 상가건물과 함께 나이 들었다. 말수가 적으시고 매사에 덤덤한 성격의 아저씨와 말이 빠르고 감정 표현에 솔직한 아주머니가 티격태격하시면서 함께 일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나이가 들어서 남편이 생긴다면 함께 문방구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그런데 2020년부터 문방구 아주머니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되면서 학교가 텅 비었고 아주머니의 화구에도 불을 지피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길거리 음식을 대하는 마음도 예전과 달라져서 떡볶이를 가득 만들어 놓아도 손님들 발걸음이 뜸했다.      


오랜만에 공책 한 권 사러 들른 문방구에서 마주친 사장님의 얼굴이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머리숱도 적어지고 살도 조금 빠진 것 같았다. 상가에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도움을 청했던 분이다. 잘 가르쳐주셨고 도와주셔서 고마운 게 많은 분이시다. 마음이 좀 싱숭했다. 그러고 보니 떡볶이 먹으면서 문방구 아주머니와 수다를 떨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상가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싸움에 대한 이야기들이나 우리 교습소에서 공부하는 녀석 중에 분식점 단골이 누구인지 같은 시시콜콜한 한담을 나누었던 때가 언제였더라. 이야기는 고사하고 얼굴 보고 인사를 나누었던 것도 가물가물하다. 그동안 너무 무심했다. 마스크 쓰는 생활이 시작된 이래 전혀 왕래를 하지 않았으니.      


연필 한 자루, 지우개 하나, A4 용지 한 묶음을 사러 문방구로 갔어야 했다. 마음에 드는 노트가 없다고 대형 할인점을 찾아갈 게 아니었다. 그저 ‘요즘 얼마나 힘드실까...‘ 생각으로만 그쳐서는 안되었다.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센스가 이렇게 부족하다. 상대의 어려움과 절박함을 섬세하게 헤아릴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런 아름다운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 배워야 아는 부족한 사람이다. 배우려고 그렇게 책을 읽어도 아직도 이것밖에 안된다. 이제 더위도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공기도 선선해졌다. 떡볶이 먹으면서 오뎅 국물 마시기 좋은 계절이다. “너무 오랜만에 왔죠.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로 시작해야겠다.

    



독서의 궁극적 지향은 실천이다. 책을 읽을 때 느끼는 감화가 내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반영되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책은 왜 읽는 것인가. 책에서 얻은 깨달음이 생활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자각할 때 부끄러워진다. 도대체 책은 읽어 뭐 하겠나라고 책망하게 된다. 책 한 권 읽지 않아도 본보기가 되는 삶을 살아가는 분들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진다. 올해를 시작할 무렵 읽었던 강신주의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을 비로소 ‘읽었다’고 할 수 있게 되려나. 책을 읽으면서 굵게 밑줄 그었던 ‘고통의 감수성’이라는 것이 지금에서야 무엇인지를 어슴프레 알 것 같다. 밑줄 그은 말들을 어떻게 내 삶 속에 풀어내야 하는지를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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