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해도, 설령 꿈꾸던 일을 하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일에는 꼭 하기 싫은 어느 부분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A는 다른 것은 다 만족스러웠던 지난 직장에서 분기별로 자기 개발을 위한 계획을 발표하는 일이 싫어 직장을 그만두었고 B(TV에 나온 이)는 점심 식사 메뉴를 고르는 스트레스 때문에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이렇게 퇴사까지 불사하게 만드는 직장에서의 문제들은 큰 프로젝트나 중요한 업무와 관련된 것들보다 작은 것, 너무 작아서 말하기도 치사한 것들인 경우가 의외로 많이 있다.
작은 교습소를 운영하고 있는 내게도 이런 일들이 몇 가지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이니 열심히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분기별로 혹은 해마다 갱신해야 하는 행정적 절차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일 년에 한 번 학원 공제보험 갱신을 해야 한다거나 학원(교습자) 연수에 참가해야 한다거나 여러 온라인 교육을 들어야 하는 등의 의무 사항들이 있다. 제날짜에 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거나 불이익을 당하게 되어 신경 써서 잘 챙겨야 하는 업무들이다. 이 일들은 그리 어렵거나 시간이 소요되는 일은 아니지만 좀 성가시다. 나는 이런 일들을 챙기는 것에 좀 게을러서 보통은 마지막 날까지 미루다가 부랴부랴 처리하기 다반사이고 가끔은 마지막 날에 변수가 생겨, 시간 안에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에 차질이 생길 때도 종종 있다. 하루만 일찍 서둘렀어도 쉽게 끝낼 수 있는 일을 끝까지 미루다가 결국 게으름의 대가를 치르고야 마는 식겁의 경험들이 있으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 나쁜 버릇이다.
이번에도 온라인으로 들어야 하는 의무 교육이 있었다. 일주일의 시간이 주어졌고 금요일까지 90분의 강의를 듣고 수강증을 받아야 했다. 교육지원청에서는 매일 알림 메시지가 왔고 나는 내일로 또 내일로 미루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웬일로 수요일에 불현듯 오늘은 기필코 해버리자 하는 마음이 생겨서 조금 일찍 출근해서 강의를 들었다. 그냥 정말 듣기만 하면 되는 것이어서 90분은 금방 지나갔고 연수 확인증도 순조롭게 출력을 했다. 정해진 기간 내에 꼭 끝내야 하는 어떤 일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되었는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미루고 있었던 일을 이렇게 순식간에 끝내버리니 속이 시원하면서도 ’이 간단한 걸 왜 그렇게 미루었을까?‘ 하는 마음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고 정해진 기한을 이틀이나 앞두고 일을 끝냈다는 대견함에 콧노래가 나올 만큼 신이 났다. ‘해야되는데... 해야되는데...’ 생각만 하면서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었던 일을 덜어낸 것도 기쁘고 아슬아슬한 순간까지 미루지 않고 여유 있게 일을 처리한 것도 뿌듯했다.
퇴근을 하고 저녁을 먹는데 다시 한번 이 사실이 떠올랐다. ‘이틀이나 남기고 강의를 들었어‘라는 소리가 마음속에 울려 퍼졌다. 너무나 사소해서 ’성취’라는 말을 갔다 붙이기도 무안한 일이지만 나는 일의 부피와 상관없이 스스로의 대견함에 도취되어 있었다. 아무도 공감할 수 없는 나만의 만족이다. 그게 이 정도로 성취감을 느낄 일인가 의아하겠지만 내가 해낸 일의 난이도라던가 중요도 때문에 느끼는 성취감이 아니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나의 나쁜 습관과 관련 있는 대견함이다. 지금까지 보아 온 나의 모습과 달리 마지막까지 미루지 않고 미리 해둔 나의 모습에 만족스러운 것이다. 맛있는 반찬을 밥 숟가락에 얹으며 ‘오늘은 더 맛있게 먹을 자격이 있어, 오늘 정말 어른스러웠어, 이틀 치의 자유를 벌었으니 더 만끽해도 돼.’라며 스스로를 토닥토닥 해주었다.
어른이 되면 칭찬받을 일이 잘 없다. 잘하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 해낸 것일 뿐이지 그걸 가지고 칭찬을 해주진 않는다. 다만 잘 해내지 못했을 때는 큰 질책과 자책이 따른다. 칭찬은 없는데 질책은 존재하는 어른의 세계에서 나는 스스로 균형을 맞추어 살아가고 있다. 잘못한 일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는 만큼 잘 해낸 일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칭찬도 해주면서.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상관없다. 그럴만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이다. 까다로워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