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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성 Aug 06. 2021

무심히 씹을 수 있다는 것도

어릴 적에 때웠던 오른쪽 아래 어금니에 통증이 느껴져서 치과를 찾았더니 썩은 이를 때웠던 아말감이 다 벗겨져서 긁어내고 다시 때워야 한단다. 그리고 신경이 너무 올라와 있어서 아말감을 제거했을 때 신경 치료를 함께 해야 할 것 같다는 소견이 덧붙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두려움에 몸이 쪼그라들었다. 치료를 위해 여러 번 치과를 방문해야 한다는 번거로움도 기꺼이 감수하겠고 예상치 못했던 치료비용도 오케이 감당하겠다. 그런데 30-40분을 입을 벌린 채 치료받아야 한다는 상상을 하니 벌써 턱이 빠질 것 같은 얼얼함이 느껴졌다. 게다가 치료가 다 끝나더라도 신경 치료의 후유증으로 몇 달간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치료와 동시에 치아와 관련되는 문제들이 말끔히 사라지기 바라는 마음에 불안의 불씨가 피어올랐다. 불안에는 후유증에 대한 두려움과 내가 그 운 나쁜 케이스는 되기 싫다는 마음이 뒤섞여 있었다.     


치료는 시작되었고 벌써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계속 진행 중에 있다. 마취도 아프고 입 벌리고 있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건 치료 중에만 잘 참으면 된다. 그런데 치료가 완전히 마무리될 때까지는 식사를 할 때 왼쪽으로만 씹어야 한다는 예상치 못한 제약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하고 있다. 한쪽으로만 씹어 본 사람은 알 거다. 신기하게도 음식이 반만큼만 맛있다는 것을. 늘 먹던 음식이라 잘 알고 있는 맛보다 절반만큼 덜 맛있다. 당혹스럽게도. 그리고 밥을 먹는 시간이 두 배로 많이 든다. 한쪽 어금니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하루 세 끼를 먹을 때마다 너무나 불편해서 먹는 것에 대한 흥미를 잃을 정도로 식사 시간이 노동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자유롭게 요리조리 옮겨 씹으면서 음식의 맛을 온전히 향유하고 싶었고 행여나 나도 모르게 오른쪽으로 씹어버릴까 온 신경을 치아에 집중하는 식사 말고 그냥 아무 조심 없이 밥을 먹고 싶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더 작은 행복에 집중하게 된다. 행복이라는 건 결코 거창한 데에 있지 않구나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구나 싶다. 내 손으로 밥을 야무지게 떠서 섬세한 젓가락질로 떼어낸 깻잎 한 장 올리고 ’아-‘하고 벌린 입속에 쏙 밀어 넣는 것. 그리고 그 어떤 신경도 쓸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이쪽저쪽으로 꼭꼭 씹어 삼켰던 그 무심했던 순간 속에 행복이 있었다. 아무런 의식 없이 너무나 당연하게 해왔던 아니, 할 수 있었던 작은 동작 하나에 나의 자유와 행복이 깃들어 있었다. 결국은 나의 들숨과 날숨까지도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는 치과 방문도 이제 곧 끝이 나고 밥 먹는 것에 그리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마도 당분간은 밥을 먹을 때마다 그 자유로움에 신이 날 것이고 감사하겠지. 그러다 어느새 다시 밥을 자연스럽게 먹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의 몸은 지금 이 순간도 마모되어 가고 있으므로 시간이 지나면 분명 또 다른 불편이 나를 찾아올 텐데 그때까지는 자유로움을 실컷 들이마셔야겠다. 좀 더 큰 통증들이 찾아왔을 때 내가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미래에 맡겨두되 내가 가진 모든 것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다는 사실만큼은 잊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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