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I라고?' MBTI이가 세상에 유행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였다. 오래 알아 온 사람일수록 더욱이 그랬다. 반면 스스로는 I라는 결과에 한치의 놀라움도 없었지만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수다스럽고 시끄러우며 놀자는 제안에 거절하는 법이 없다. 친구도 좋아하고 흥도 있는 편인 데다 수다 떠는 일에는 지치지 않는 편이다. 몇 시간을 떠들었더라도 늘 수다 떨 에너지가 남은 채로 집으로 돌아가 곤 했다. 심지어 내가 기 빨려하는 완전한 E 성향인 친구 A는 나에게 '너랑 놀면 기 빨린다.'라고 했다. 그리고 내 MBTI 결과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남겼다.
'뭐? 그거 결과 잘 못됐어. 다시 해봐!' - (이 말을 하는 중에도 A의 에너지에 I인 내가 기 빨려하고 있다는 걸 A는 알았을까.)
몇 년째 I라고 매번 설명하고 있는데도 A에게는 도저히 입력이 안 되는 일, 그 또한 기 빨리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어찌 되었든 E성향의 기도 뺐어 버리는 I라는 점에서 E로 오해받는 일은 이해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두 명도 아니고 매번 다수에게 설명하는 게 좀 답답했던 와 중에 다행히도 MBTI에 상당히 몰입되어 있는 사람들은 내 결과에 대해 순응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내향인은 조용하고 외향인은 활달하다는 고정된 이미지와 달리 조용하더라도 외향인일 수 있고 활발하더라도 내향인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나로 예시를 들자면 낯선 사람 혹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말 걸기가 쉽지 않고 조용한 듯 보이나 친해지고 익숙해지고 나면 활발하고 재밌기도 하는 사람이 된다. 활발한 나도 조용한 나도 다 거짓 없는 내 모습이지만 난 99.9% 내향인인 거다.
다른 학과 혹은 학교들은 주로 어떤 과정을 거쳐 학년 과대표를 정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나온 대학에서는 선배들이 후배들 중에 자질이 있어 보이는 사람을 지목해서 뽑았었다. 그런데 과대라는 자리가 참 불행한 건 많은 책임과 부담을 안아야 하는데 스스로 지원하는 제도가 아닌 지목당하는 제도였다는 거였다. 남몰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대외적으로는 좋은 자리가 아니고 누군가 과대가 되었을 땐 불쌍한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는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이니 저학년 땐 그 부담이 더 컸다. 학년도 저학년이었지만 앞으로 운에 힘을 빌려 잘 피해야 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직책이 매년이 아니라 매 학기 변하는 일이니 남은 횟수가 생각보다 많았다. 아, 부과대도 있었으니 꽤 많은 인원이 불행한 자리에 한 학기를 책임져야 하는 셈이다.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친 여름방학, 친한 친구들과 추측을 했다. 과연 누가 앞으로 과대, 부과대로 불행을 책임지게 될까에 대해서. 모두가 입을 모아 특정 인물을 지목하기도 했고, 절대 해서는 안 될 인물을 지목하기도 했으며 의견이 분분한 인물을 내놓기도 하는 와 중에 누군가 내 이름을 언급했다. 나는 절대 그래서도 안되고 그렇지 않을 거라고 단호히 했지만 분위기는 내 의견보다는 내 이름을 언급한 친구에게 수긍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믿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진심으로 과대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졸업하는 그날까지 내가 이렇게 활발하고 웃기며 자기주장이 확실하고 때로는 상황정리를 확 해 낼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너희 혹은 앞으로 나와 친해질 몇 명 이 외에는 알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7-8명씩 되는 친한 친구들로 구성된 무리에서는 존재감이 밀리지 않았을지 모르나 30-40명씩 되는 교실에서 눈에 띄게 존재감을 뿜어내는 아이가 아니었 던 지난 12년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그랬다. 그리곤 실제로 불행을 피해 무사히 졸업했으며 대학을 졸업하고 더 잘 알게 된 선배는 대학 시절 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인사 들으면 목소리 많이 듣는 날이었어'
학부에 이어 대학원까지 다닌 선배는 내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함께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졸업을 하고 나서야 나의 활발함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아는 사람만 아는 대표감이랄까? 이런 정의 또한 참으로 내성적, 내향적인 정의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