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30살에도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들 수 없다니... 부끄러워 고개가 절로 내려갔을 때 깨달았다.
'아, 이건 평생 극복 할 수 없는 거야.'
별 일이 일어난 건 아니었다. 영어학원에서 붉어진 얼굴로 고개가 떨구어진 건 그럴 수 있는 일이긴 했다. 부끄러울 일이 얼마나 많냐고, 영어 그놈! 그러나 마음이 더 좌절스러웠던 건 원인이 영어의 장벽이 너무 높아서가 아니었다는 게 문제였다. 영어로 무언 가를 묘사해 보는 시간, 내 차례가 왔다. 그래서 목소리를 덜덜 떨면서 혼자 영어로 발표를 하기 시작했냐고? 아니었다. 사람들이 모두 나를 관찰하며 '그들이' 나를 묘사하기 시작했다. 차례가 나 인 걸 알고 있었는데도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렸을 때 발가벗은 것처럼 부끄러워지니, 부끄러워하고 있는 내가 또 부끄러워지니, 이번 생에 희망은 없다 생각했다. 평생 이렇게 살겠구나 했다. 10살도 아니고 20살도 아니고 30살 아닌가. 명백한 어른, 명백한 사회인 30살.
상대가 나에게 온전히 몰입하고 있으면 나는 이상하리 만큼 부담스러움을 느낀다. 그게 친구여도 마찬가지 인 게 고작 4명이서 수다를 떨고 있어도 말하는 나를 제외한 3명이 리액션도 없이 내 말에 몰입해서 듣고 있으면 그때부터 말을 더듬기 시작한다.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 거다. 웃고 있거나 슬퍼하거나 적당히 딴짓을 하거나 뭔가 적당히 부산스러웠으면 좋겠는데 선생님 말씀에 몰입하는 모범생들처럼 몰입하고 있으면 그 순간 내 토크는 망하는 거다. 그러니 나는 수다에 강세를 보이면서도 긴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데는 약하다. 중간중간 리액션이나 짧은 애드리브로 분위기를 살리거나 혹은 짧은 에피소드를 빠르게 치고 나오는 쪽으로 수다력을 발휘하는 편인 거 같다.
한 번은 일본인한테 우리의 공통 외국어로 말을 걸 일이 있었다. 그런데 외국어를 배우기를 '질문 있어요.'라고 운을 띄워 본 질문을 하는 다이엘로그 밖에 익히지 못해 '질문 있어요.'라고 말을 걸었는데 그 순간 그 일본인이 모든 하던 일을 멈추고 '말해!'라며 나에게 집중해 주었을 때 할 줄 알던 말이 어버버 나오지 않으면서 머릿속이 꼬이고 꼬여 고장이 나버렸다. 그리고 그 간지러움에 견딜 수 없어 혼자 '푸하하' 웃어 간지러움을 조금 해소하고 나서야 본래 하고 싶었던 질문을 할 수가 있었다. 막상 그리 중대한 내용도 아니었고 그렇게도 그렇게 웃기는 내용도 아니었던 게 또 한 번 민망했다. 얼마나 바보 같아 보였을 까 혹은 내가 왜 웃었는지 얼마나 의문스럽게 생각할까 싶었다. 대화를 끝내고 돌아서 나오면서는 여러 낯간지러운 감정이 혼합된 그 상황과 감정을 재미있게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집으로 돌아와서 끝끝내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나 자신!!'
으로 마무리되었다. 결국 이렇게 마무리하는 거 까지가 내성인의 하루다. 그런 내가 내심 웃기기도 하는데 부끄럽기도 하고 그 복잡 미묘한 감정을 남몰래 혼자서 감당하는 거 까지가 내성인의 삶이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