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안에 그 카페를 여러 번 갔다고 했다. 매번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고 했다. 어느 날은 주인이 메뉴를 먼저 선수 쳐 물었다고 했다. '이거 드릴까요?' 그래서 당분간 그 가게에 가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여기서 가게를 가지 않기로 한 이유는? 1. 메뉴가 물려서 2. 주인이 주문을 선수 쳐서 3. 불편해져서
정답을 맞힌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명백한 I, 내향인입니다.
친구가 SNS에 스스로 결정한 태도에 대해 올렸다. 주인이 '이거 드릴까요?'라고 주문도 전에 물어서 당분간 그 가게에 가지 않기로 했다는 황당하고 웃긴 썰에 대해서 말이다. 그 글을 보는 순간 그 감정선이 하나의 의심도 없이 선명히 이해가 되었다. 음, 나도 안 갈 거 같아 당분간.이라고 생각했다. 정답은 3번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면 주로 몇 년이고 꾸준히 다니는 편이다. 병원, 미용실, 카페 및 각종 가게들 역시 대체로 그런 편. 그러니 대체적으로 다 단골인 셈이다. 하지만 단골을 자처해 놓고도 나만 아는 눈치게임을 시작한다. 너무 자주 가는 듯싶으면 방문 횟수를 줄이고, 줄이지 못하고 결국 방문했을 땐 왠지 부끄러운 느낌이 든다. 사장님이 내 존재를 인식하게 될 거 같았기 때문이다. 이미 알고 있으실 테지만 그래도 혼자 마음 졸이며 ‘내 존재를 숨겨라.’ 같은 게임을 하고 있는 거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다. 그냥 민망한 느낌이 든다. 그 이유가 자주 가서는 아니고 그냥 '주인의 내 존재 인식' 그 언저리에 있는 듯하다. 명확한 누군가가 되고 싶지 않다. 그냥 역할: 손님 1이었으면 좋겠다.
새 학기가 되면 담임 선생님이 당분간 나를 모르시길 바랐다. 이 교실에서 내 이름을 가장 늦게 외워 주시 길… 바람과 달리 학기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이름이 불리면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나를 인지해 버리셨구나. 학창 시절 그렇게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기도 했지만 혼나는 일이 거의 없는 학생이었다. 학생의 위치에서 학교생활은 꽤나 평화롭고 순조로웠는데 그럼에도 선생님이 나를 인지하는 순간부터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나를 들킬 것만 같은 느낌이 있었다.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고 태도로 인해 문제를 지적받은 경험도 크게 없었는데 왜 그런 스트레스가 있었는지는 알 수없지만 말이다. 그냥 선생님은 수업을 하고 나는 그 수업을 듣는다 정도의 관계에 그치고 싶었던 거 같다. 그 이상의 내 바운더리에 들어오지 말기를 바랐던 거 같다. 아마 손님 1이고 싶은 마음이 이때의 심리와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당신은 주문한 메뉴를 주세요 저는 돈을 지불하고 메뉴와 공간을 대여하여 잠시 누리다 가겠습니다. 뭐 그런?
한 번은 취향이 한 지점도 벗어나지 않는 완전하다 느껴졌던 단골 카페 사장님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셨다. 한주에도 몇 번씩 여러 번 가는 동안 알바생들에게 주문하는 일이 더 많기도 했던 탓이었는지 뒤늦게 사장님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신 거다. 사장님의 깜빡이 없이 훅 들어온 대화 시도에 내성적임을 숨기지 못한 채 개미 같은 목소리로 대답해 드렸던 거 같다. 그리곤 생각했다. '너무 자주 왔나?' 완전한 내 카페가 사라질 것만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내 마음이 이 카페를 멀리하게 될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 이후 텀을 두고 카페에 재 방문 했을 때 다행(?) 이도 사장님은 다시 나를 손님 1처럼 대하셨다. 다른 손님들보다 더 반가운 태도를 취하지도 않으셨고 더 이상 친해지기 위한 질문도 하지 않으셨다. 카페에서 오랫동안 일한 경력직 친구가 말했다. 손님을 대하다 보면 느낌이 있다고. 이 사람은 말 걸어주고 알아주면 좋아할 사람, 이 사람은 말 걸면 안 되는 사람. 그 사람의 태도나 대답에서 그런 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니까 카페 운행능력까지 수준급이었던 사장님은 대답을 듣고 나를 대하는 법을 파악하신 거였다. 그 카페는 정말 사장님까지 완벽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같은 유형이 유형으로 집단화될 만큼 다수라는 점이 위로를 받는다. 단골이면 알아봐 주면 그래서 반가워하고 더 잘해주면 서로 좋은 건데 왜 도망치는지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외로운 게임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