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 : 겉으로 드러내지 아니하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는 것.
내향적: 안쪽으로 향하는 것.
내성, 내향인들은 감정이나 표현이 안으로 맺히는 유형이라고 한다. 본인 내면으로 감수성을 담아내는 사람들. 이건 단순히 리액션의 크기나 감탐사 따위의 감정 표현이 풍부한 정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어떠한 면모도 밖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유형이지 않나 생각한다. 내 존자와 색을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음, 뭐 그런 느낌이랄까?
어릴 때는 얌전해서 칭찬을 받았고 동시에 얌전해서 걱정도 샀다. 한 번은 입 안이 심하게 헐어서 병원에 갔었다. 헌 부위 부위마다 약을 발라줘야 했는데 그게 너무 아프고 따가운 거라 성인도 힘들어한다고 했다. 그때 나이가 유치원 생 정도였으니 병원이 떠나가라 자지러지게 울어 마땅한 나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울지 않았다. 꾹 참아냈고 그런 나를 의사 선생님은 칭찬 및 감탄을 하셨다. 그 기억이 여전히 선명한 건 그때의 감정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난 울지 않은 게 아니라 울 수 없었다. 주목받는 게 싫었고 또 낯선 다수 앞에서 마음 혹은 감정을 표출하는 일에 대해 과도하게 마음이 닫혀 있었던 건 아닐까 추측한다. 그걸 참아낼 만큼 주목받는 일이 부담이었던 거다. 그때의 나는, 울어버렸을 때 나를 달래느라 병원에 있는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이 한 번씩 다 관심을 가져주는 일도 불편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약을 집에서 가족이 발라줬더라면 나는 어느 유치원 생들과 같이 자지러 지게 울어버렸을 거다. 밖에서는 얌전함에 칭찬받는 내가 집에서는 수다력에 조용하기를 주의받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낯선 것에 대해 (낯설지 않은 것도 사실 그랬다. 집 밖에 있는 모든 인물과 공간이라 말할 수 있다.) 과도하게 닫혀 있는 나를 걱정해 많은 사람들이 세상밖으로 끄집어내려고 여러 시도를 했었다. 괜히 장난을 건다거나 괜히 더 질문을 해 본다거나 심지어는 유치원 친구들까지 나에게 그런 노력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 시도들이 번번이 실패한 건 웃겨보려고 장난을 칠수록 나는 더더욱 웃지 않았고 매번 웃참 챌린지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단답형 질문을 하는 사람만이 나와 소통할 수 있었다. '네, 아니요'만 고개를 흔들어 의사를 전달하곤 했다.
주변의 우려와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무사히 사회에 잘 적응해 나갔다. 친구와 떠드며 놀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신나게 웃기도 때로는 분노하기도 하며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었다랄까? 무려 풍부하기까지 한 소통을 남들만큼이나 하게 된 거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게다가 비로소 난 병원에서 울었다. 고작 열 감기였지만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문제는 신분이 대학생이었다는 게 좀... 머쓱했지만 말이다. 또 하필 어린이들이 줄지어 앉아 있는 소아과였다는 점 역시 그랬다. 그 병원에서 제일 큰 환자, 다 큰 어른이 열나고 힘들다고 운 거다.
*태어나서부터 다니던 소아과가 있는데 늘 잘 해결해 주셔서 심하게 아플 때에는 꼭 찾게 되는 병원이었다. 집에서 좀 거리가 있더라도 아플 때는 꼭 찾아가게 된다.*
상황인 즉 슨, 대학생이 던 어느 날 인생에서 손꼽힐 정도로 아팠던 날이다. 친구들과 놀다가 너무 아파서 엄마와 병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해 엄마 얼굴을 마주했는데 마주 하는 순간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는 거다. 유치원생 때도 울지 않았던 내가 말이다. 상황이 좀 뒤바뀐 거 같지 않나. 두 상황을 비교하면 어쩐지 웃기기도 하다. 하지만 감기에 걸린 어린이들이 보호자와 함께 병원 소파에 한가득 메워 앉아서 대기를 하고 있던 병원 풍경 속에 어른인 주제에 상관 않고 울 수 있었다는 건 엄청난 발전이지 않나. 무려 나만 유일하게 울고 있었다. 어린애들이 나를 구경했다. 그럼에도 나는 눈물을 멈출 수 없어서 대기 끝에 뵌 원장님 앞에서도 울고 있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는 동안 사람이 된 거다. 정상 범주의 사람.
내향인도 걱정과 달리 무럭무럭 잘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