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세 활용법
십 대의 끝 무렵이었던가? 이십 대 시작 무렵이었던가? 아무튼 그쯤 언젠가 엄마에게 이런 소리를 했다.
"엄마는 좋겠다. 벌써 자식들이 이만큼 커서. 자식으로부터 자유로워졌잖아. 또 잘난 자식은 없지만 사고 치는 못난 자식도 없잖아. 난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그때 엄마는 이런 대답을 했다.
"몸은 자유로워졌지만, 자식이 커 갈수록 걱정의 무게는 더 무거워진다."
엄마는 자식이 클수록 자식 키우는 게 더 힘들어진다고, 걱정을 해야 하는 종류의 무게가 더 무거워진다고 했다. 자식 걱정은 평생이다 라는 말이 있듯 걱정거리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무게에 대한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땐 걱정의 무게 따위는 잘 모르겠고, 단지 잘난 자식도 그렇다고 못난 자식도 없이 무사히 주행 중인 엄마의 인생이 부러웠다.
이쯤에서 혹여나 글쓴이는 자식 계획을 마음속에 품고 있구나 하고 추측했다면, 그 추측은 틀렸다. (결혼과 출산이 필수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독신도 딩크족도 나의 미래가 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편) 다만, 결혼과 출산을 택한 여성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자식 문제일 테니까. 엄마 인생의 중요한 한 요소가 성인이 될 때까지 심한 경로 이탈을 하지 않고 잘 주행되었음이 곧 엄마 인생의 모습 같아서 그 사실이 부러웠다.
자식이 커가면서 그에 대한 마음의 무게가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처럼 어릴 땐 그저 천진하게 매일을 살다가 나이가 한 살 한 살 많아질수록 인생이 얼마만큼 불안한 것인지 또 얼마만큼 어렵고 무거운 것인지 점점 더 불투명해지는 인생을 아니, 인생이 얼마나 불투명한 것인지 그 실체에 대해 더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는 듯하다. 아마 엄마가 부럽다고 말했던 저 시기에 덜컥 그 사실이 크게 다가왔었던 거 같다.
사주, 점, 타로 등등 미래를 점쳐주는 곳은 대게 불투명한 앞날의 투명색을 알아내기 위해 찾아간다. 즉, 삶이 불투명할수록 찾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어린아이들보다 어른들이 유독 더 그곳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삶이 얼마나 불투명한 건지 그게 얼마나 불안하고 갑갑한 일인지 보다 더 많이 체감해서이지 않을까? 불안하고 갑갑하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처럼 의지해 보는 거다.
나 또한 어릴 때는 점 같은 것에 관심이 없다. 보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믿지 않지만 재미로라도 듣고 나면 괜히 신경만 쓰일 것 같았다. 이런 걸 찾아다니는 사람을 배척할 마음은 없었지만, 나는 절대 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인터넷에서 재미로 보는 사주, 운세 같은 걸 슬며시 보는 내가 있다. 원하는 말이 나올 때까지 이쪽저쪽을 돌아다니면서 말이다. 원하는 말을 찾았을 때 그제야 핸드폰을 끄고 잠에 들었다. 한동안 그런 패턴에 중독처럼 빠져있었다. 그런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면서도 헤어 나오지 못하는 스스로를 또 한심하게 여겼다. 이런 걸로 시간을 쓸 시간에 현재를 잘 살아내는 게 더 마땅할 텐데 하고서 말이다.
중독은 마음이 편안해 지자 자연스럽게 끊겼다. 하지만 잊고 살다 또다시 중독에 빠졌다. 그렇게 빠졌다 나오기를 몇 번 반복하고 나서 또다시 중독에 빠져있었을 땐 이런 생각을 했다.
'나 지금 불안하구나.'
중독인 줄 알았는데 마음이 편해지면 끊으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찾지 않게 되는 패턴을 이해하고서는 이 행위를 하는 나를 인정해 주게 되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면 그만두겠지, 잠시 한동안인데 어때 하고서 말이다.
요즘도 모 포털사이트에 나오는 오늘의 운세를 자주 검색한다. 오늘의 운세, 내일의 운세, 이번 주 운세, 이번 달 운세 등등 생일만 입력하면 다양하게 알 수 있다. 이걸 즐기는 나에게 누군가 이제 이런 것들을 믿게 되었냐고 묻는 다면, 유명하다고 찾아가서 돈 주고 보는 것도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마음에 안 드는 건 무시할 마음인데 무료로 숫자 몇 가지만 딸깍 입력하면 다 내려다보는 척 조언 해 대는 이것을 어떻게 믿겠냐고 답할 것 같다. 하지만 정말 즐기면서 운세를 보기 시작한 이후로 오늘의 운세를 삶에 접목시키는 방식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원하는 말이 나올 때까지 찾아다니는 답정너(답이 정해져 있는 너) 였다면, 요즘은 오늘 하루는 공부가 잘 되는 날 이랬어하고 조금 더 공부해 보고, 오늘 하루는 행운이 따른다고 했어하고 지금 벌어진 이 일이 오늘의 행운일까? 하고 하루에 집중한다. 혹시나 오늘 하루는 좋지 않다는 결과가 나오면 생활하면서 작은 불행에 덥석 이게 오늘의 불행인가 하고 가볍게 해치웠다 생각해 버린다. 그렇게 하면 어차피 올 불행이었으니 그 불행을 아프지 않게 잘 받아들이게 된다. 또 공부가 안 되는 날이라고 했는데 정말 안되었다면 그 또한 위로가 된다. 내가 못난 게 아니라 오늘은 그런 날일 뿐이야 하고서 말이다.
어차피 믿거나 말거나인데 이왕이면, 보지 않을게 아니라면 이왕이면, 불투명한 매일에 오늘의 운세를 붙잡고, 행운이 있다는 말을 믿고 더 앞으로, 불행이 따르는 날이지만 인생을 뒤 흔들 불행이 오지 않았음에 또 앞으로! 이렇게 매일을 불투명 속으로 가다 보면 모르는 사이 투명색을 지나치고 있지 않을까? 잘난것도 그렇다고 못난 것도 없는 그쯤에서 헤매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