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눈에 나를 맞추지 말고, 남을 너무 많이 의식하지 말라.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 미움받을 용기. 뭐 이런 말들에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이미 좋은 감정을 나눴고, 여전히 좋아하고, 잘 지내고 싶고, 관계를 계속 잘 유지시키고 싶은 사람, 우리의 추억을 죽는 날까지 아름답게 가지고 가고 싶은, 잃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 관해서는 말이 달라진다. 불편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고, 미워지고 싶지 않다. 그래서 좋다가도 한 순간 (혹은 누군가에겐 서서히) 남이 될 수 있는, 관계, 사람에 대한 사색은 늘 애정 쏟는 주변 인물에게서 시작된다.
<잘 맞는 사람, 잘 안 맞는 사람>
‘잘 맞는 사람과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화두를 고민해 보게 된 건 20대가 돼서였다. 매년 쉬지 않고 친구를 사귀어왔지만 그 누구와도 잘 맞는지 안 맞는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관계를 맺어 본 적이 없었다. 친해지면 친한 거고 안 친해지면 안 친한 거지 이 사람과는 왜 친한지 이 사람과는 왜 친하지 않은지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20여 년을 살아 올 동안 나만 유독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온 건지 아님, 그 타이밍에 유행을 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20대가 되고 새로운 사회에 들어서면서 또래들과 자주 나누게 된 대화 주제는 잘 맞는 사람, 잘 안 맞는 사람에 대한 거였다.
그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들이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그 부분에 대해 그제야 생각해 보기 바빴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생각을 거듭했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동안 사귀어온 사람들을 떠올려보니 각자 성격들이 어찌 그리 다 제 각각인 건지. 그들과 친해진 이유에 대해서도 그들과 관계를 지속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떠올릴 수 없었다. 굳이 이유가 있다면 친구이니까 혹은 그들과의 만남이 즐거워서 정도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걸 따지기 시작하다 보니 당장 새롭게 사귄 사람과의 호흡을 분석하며 어떠한 틀에 갇히는 거 같았다. 우리 사이에 발현되는 다름에 대해 맞혀보려 하기보다 괜스레 안 맞네 하는 생각과 함께 불편함만 증폭되는 거 같았다. 또 나 역시 누군가에게 맞지 않는 틈이라도 보이면 상대의 거부로 인해 그와는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을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그냥 모든 관계의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는 듯했다. 성향에 대한 민감한 계산과 혼란 속 가시밭길을 걷다 어느 날 화딱지가 났다. 아니, 맞고 안 맞고가 어딨냐? 친해지면 친해지는 거지.
<좋은 사람>
한 때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마음을 다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고, 쿨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 적도, 유머러스하고 밝은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속임수를 쓰지 않고 정의롭거나 포용력이 넓은 사람 또한 그 대열에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언저리에 있는 사람이 되어보려고 무던히 사색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는데 애쓰면서 살았다. 좋은 사람이라면 이 세상을 잘 살아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시각을 뛰어넘는 한 문장을 읽고 혼란에 빠졌다.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데?'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인 건데 그 자체에 의문을 가진다고? 이십 대 후반이 된 지금이야 '멋진 사람, 좋은 사람'과 같이 정의 내릴 수 없는 용어를 쫓는 사람에게 쉽게 던져 볼 수 있는 질문이지만, 21살의 언젠가 저 문장은 차원을 깨는 심히 당황스러운 문장이었다. 이 본질 자체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구나 하고 말이다. 좋은 사람 이 네 발음의 조합만으로 당연히 누구에게나 설명돼야 하는데 그것 자체에 의문을 가진다니, 그땐 질문의 근원 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좋은 마음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이나 불편함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됨과 함께 저 질문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니,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도대체 그게 뭔가?
가수 이효리는 예능 라디오스타에 나와서 남편 이상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진짜 진짜 좋은 사람... 아니, 좋은 사람은 아니고, 나와 맞는 사람, 좋은 사람이 어디 있어 세상에.'
그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맞다. 좋은 사람이 어딨나 세상에. 그런데 좋은 사람... 아니, 잘 맞는 사람이라고?, 잘 맞는 사람?, 잘 맞는 사람이 좋은 사람 그쯤과 비슷한 걸까?
<나는 어떤 사람인가>
몇 년째 세상은 자존감 타령이지만 자존감은 늘 오르락내리락하는 주식 같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어떤 부분에서 자존감이 높을 수도 낮을 수도 있고 어떤 시기마다 자존감이 높을 수도 낮을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닌가. 대체로 씩씩하고 당차거나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나를 보고 누군가는 자존감이 높다고 말하지만 가끔은 그 순간에도 작아져 있는 어느 한 부분이 아려오는 걸 느끼니까 말이다. 그렇듯 상황과 시기 혹은 부분마다 '나'라는 상태는 오르락내리락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때마다 그 어둠이 막막하고 갑갑하게 느껴진다.
반가운 카톡이 온 그때도 몇 날 며칠을 이 자연스러운 변동에 휩쓸리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 만 해도 나 자신에 대해 명쾌해 자신 있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안개가 자욱하게 껴 버린 거다. 나는 어떤 인간이었던가. 얼마나 어리석고 나쁜 인간이었던가. 얼마나 밉게 살아왔던가. 이런 자존감 낮은 생각은 어딘가 명확하게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명확하게 잡히는 게 없고 도무지 해석이 되질 않아 아무것도 긍정적으로 회복시킬 수 없었기에 속을 휘저었다. 알 수 없지만 긍정적인 느낌이 아니었던 어떠한 순간들, A의 해석되지 않는 눈빛과 B의 액션, C의 표정, D의 반응 등등. 스스로 파악되지 않는, 내가 주변에 끼친 과거의 부정적인 영향, 알 수 없어 해결할 수 없는 영향 따위가 갑갑하게 만들었다. 불현듯 떠오른 작은 생각이 불씨가 되어 온갖 순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줄줄이 튀어나왔다. 생각의 장난질에 갇힌 거다. 그 장난질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갉아먹도록 시킨다. 아니, 어쩌면 정의 내릴 수 없는 그놈의 '좋은 사람'이라는 단어에 스스로가 여전히 붙들려 있는 걸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 장난질에 쉽게 걸려든 걸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컴컴한 밤길 안개까지 자욱하게 낀 길 위에 몇 날 며칠을 헤매고 있던 찰나 오랜만에 온 가벼운 안부 인사가 나를 구출했다. 잘 지내냐는 질문에 굳이 나의 상태를 말하지 않았고, 이야기는 대체로 그의 상황에 집중되었지만, 카톡의 결론에 그는 이런 카톡을 날렸기 때문이다.
'넌 날마다 좋은 사람이라니까.'
그의 현재에 오지랖 부려 들어주고 답해 준거 밖에 없는데 저런 한 마디를 받았을 땐 민망해서 뭐라는 거냐 했지만, 내심 좋았고 다행이었고 그래서 안도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런 게 바로 잘 맞는 거 아닐까. 의도하거나 애쓰지 않아도 좋은 타이밍에 우연히 서로와 닿아 서로에게 필요한 말을 전할 수 있는 관계. 서로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관계. 그런 우연의 타이밍이 맞는 관계가 잘 맞는 사람이자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세상은 인연, 인연, 인연 타령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