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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희 Feb 13. 2023

영원할 수 없는 절친.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그때 그 시절 우리의 절친들은 다들 안녕한가? 내게도 초등학생 때 동네에서 알아주는 절친이 있었다. 우리가 절친인 건 동네아주머니들도 학교선생님들도 다 아는 사실이었는데, 선생님이 둘 중 한 명에게 심부름을 시키면서도 1+1처럼 둘이 같이해 오라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우리는 같은 반이었든 아니었든 하교를 같이했고, 학원도 같이 다니고, 떡볶이도 같이 사 먹고, 숙제도 공부도 집에 가다 말고 딴 길로 새는 것도 같이, 즉, 사소한 것부터 인상에 남는 것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순간들을 같이 했다. 평소에 A의 이름을 너무 많이 부르며 지낸 탓에 꽤 자주 왕래하던 사촌(태어났을 때쯤부터 평생을 알아온)에게까지 A의 이름을 부르는 실수를 범하곤 했다. 고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우리는 한 번쯤 외치지 않았을까?    우zl 우정 뽀oㅔㅂ┫

  


   이토록 인간관계가 단순하고 순탄했던 시절,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한 언니는 내게 어른인 마냥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의 너는 A랑 앞으로도 계속 친구일 거 같겠지만 중학교가 달라지고 그렇게 되다 보면 계속 친구일 확률보다 아닐 확률이 훨씬 높아."


   그 당시 난 이 말이 이해가 되지도 않았을뿐더러 A와 나는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중학교가 달라지더라도 그게 중요한 일인가. 학교에서 만큼이나 학교 밖에서도 많은 것을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땐 이미 초,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생이 된 나보다 몇 년이나 더 산 언니가 확신을 가지고 한 말에 아무런 논리도 들이댈 수 없었기에 제대로 된 반박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이 순간을 꼭 기억했다가 반박해 내리라 다짐했다. 그 다짐에는 우리 우정에 대한 확신과 언니가 틀렸다는 걸 증명해 내기 위해서라도 꼭 지켜내겠다는 의지 그리고 우리의 관계는 언니가 점쳐낸 확률 또는 보편성을 넘어선 특별함을 가졌을 거라는 환상이 들어있었던 것 같다.



   희도: 나 왜 이 순간이 영원할 것 같지?

   이진: 영원할 건가 보다.

   희도:... 영원하자.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중.



   하지만 인간의 삶이 대부분 그렇듯, 제 각각 특별한 반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보편 그 언저리를 영위하며 비슷비슷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므로 보편 그 언저리에 있던 나와 A도 그리 특별한 확률 속에 속하는 관계는 아니었던지 운명처럼 중학교가 달라졌고 가까이 살면서도 이상하게 잘 마주치지 않았으며 우연히 마주칠 때면 어색한 인사를 나누는 사이로 변질되었다. 그 사이 우리의 사상은 각자의 세계에서 새로이 자리 잡혀 이제는 서로 다른 결을 갖게 되었음을 그저 저 멀리 서있는 A를 바라보기만 하더라도 알 수 있었다.



   초, 중, 고를 거치면서 학교가 달라지고 반이 달라지면 싸우지 않고도 자연스레 멀어지는 관계가 있음을 여럿 경험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20대가 되도록 어떠한 너무 좋은 관계를 만날 때면 영원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곤 했다. 우리가 함께할 미래를 상상하고 계획을 세우는 일을 쉽고 당연하게 했다. 그리고 그 전제에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과 관계가 이 농도 그대로 일 거란 사실이 깔려있었다. 그렇지만 어쩌면 당연하게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때와 같은 농도의 마음과 관계는 없다. 깊어졌든 옅어졌든 모양은 변했고, 뜨거웠던 대개는 익숙해진 만큼, 보다 심심해지고 시들해졌다.

 


   영원을 말하던 순수함을 잃지 않았던 때에는 예전 같지 않은 관계가 섭섭하기도 했다. 그게 인간관계의 순환인지 모르고, 서로 적이 되어 헐뜯지 않고 자연스럽게 각자의 순환 속에 흘러간 것만으로 얼마나 좋은 관계인 건지 모르고 말이다.  



   시절인연, 영원할 것 같던 관계가 떠나가면 인간관계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 평생 그 자리가 공허해질 거 같지만 우습게도 떠난 사람의 자리는 또 다른 새로운 사람이 와서 그 자리를 메꿔낸다. 그렇게 또 순환계를 돌다 보면 시들해졌거나 뜨거운 적이 없었던 과거의 인연이 다시 곁에 와 뜨겁게 구는 신기하고 재밌는 시기도 있기 마련. 그러니 흘러가는, 흘러가버릴 인연에 대해 너무 섭섭해하지 않기로 마음을 다 잡는다. 돌고 돌아 어떠한 주기가 철커덕 맞아졌기에 지금 우리의 온도가 이 정도일 거라는 사실. 그 전제를 바탕으로 상대를 바라보게 된 조금 씁쓸하고 어쩌면 단단해진 나는, 언제 끝날 지 모를 나의 시절인연과 얼굴을 맞대고 왁자지껄 웃으며 지금을 겸허히 지나 보낸다.



   엄마가 된 희도가 딸에게 : 영원한 게 어딨냐? 모든 건 잠시 뿐이고 전부 흘러가는 거야.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니란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중.



   어떤 배우의 다큐멘터리 중 그 배우의 50년 우정을 다룬 장면이 떠오른다. 그 관계가 위대하다. 어떤 노력과 어떤 포용과 어떤 그리움 그리고 애정이 그들의 50년을 완성했을까? 사람과는커녕 한 인간으로서도 아직 다 살아내 보지 못한 횟수 50년. 이 길지 않은 인생동안 스스로와도 가까웠다 멀어졌다 때로는 용서가 안 되는 어떤 것이 있고, 아무리 좋았던 관계도 5년 10년이 어려울 때도, 고작 10년 15년이 큰 의미로 다가올 때도 있는데, 가족도 아닌 누군가를 마음에 50년을... 그것도 함께 지켜내는 건 말할 수 없이 고귀하다. 영원을 당연시하던 순수함이 사라지고 흘러가는 인연임을 이해하며 인연을 마주하는 지금, 이젠 예전만큼 우리 관계의 앞날을 설레어 할 수 없음이 늙어버린 마음인지 성숙해진 마음인지 알 수없지만, 단 하나, 영원한 건 없어서 너무 좋은 순간을 만났을 때, 그 순간이 더 소중해지는 또 다른 산뜻한 마음을 얻었다.



   그러니, 영원한 건 없어 영원할 수 없는 당신, 우리 영원 말고 한 50년만 함께해 볼까요? 흘러갔다 흘러왔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섭섭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다시 만나 이벤트처럼 반가울 정도의 온도를 유지하며, 높였다 낮췄다 온도 조절에 집중력을 잃지 않으면서 그렇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나쁜 것만은 아니겠지만, 팔십하나 팔십다섯 그때도 우리의 주기가 맞는다면, 다시 만나 애틋하고 반가울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사진 출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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