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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희 Mar 31. 2023

이 놈의 먹는 문제

   오랫동안 지켜 온 삶의 터전에서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이  밟는 수순은 그동안 삶을 채워 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일이다. 그 인사 속에는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빠지지 않고 담긴다. 떠나는 이에게도 머무는 이에게도 모두 다 결코 챙겨야 하는 일,  잘 지내는 일. 잘 지내는 것. 그건 어떤 일일까.



   타지로 혼자 떠날 때, 걱정과 애틋함과 응원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받는 일은 현재 내 인생이 얼마나 따뜻한가를 눈앞에서 바라보는 일이다. 하지만 그 따뜻하고 감사한 순간에 딱 하나 귀찮? 은 말이 있었다면, '밥 잘 챙겨 먹어.', '밥 거르지 말고.'와 같이 밥! 밥! 밥! 에 관한 말들이었다. 입이 전혀 짧지가 않아 안 먹는 걱정을 한 번도 하지 않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인사의 말미에는 꼭 밥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아니, 1년 365일 입맛 없는 날이 없고, 밥 먹는 게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고, 배가 고프면 먹게 되는 게 자연스럽고, 배는 때가 되면 잊지 않고 고파오는데... 이 당연한 일을 왜! 무엇이! 많은 이에게 밥 잘 챙겨 먹으란 말을 하도록 만드는가!



   난 보통체중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신생아를 벗어난 이래로 체구가 커 본 적이 없다. 평균에 닿아 본 적도 없다. 늘 작고 왜소했지만 평균을 넘어서는 대식가였다. 이 사실이 비밀은 아니었다. 그런데 양껏 먹은 그 음식물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도무지 겉으로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는 탓에 의도치 않게 그 사실이 마치 우리 가족만 아는 비밀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활동적으로 활발히 에너지를 뿜어내는 스타일도 아니라서 늘 또래들 사이에 조그맣게 조용히 묻혀있었다. 도대체 먹은 건 다 어디로 소모된 걸까. 이건 아직도 참 미스터리한 일이다.



   워낙 작다 보니 초등학생 땐 책가방을 사람이 멘 게 아니라 사람이 가방에 매달려 걸어가는 꼴을 했다. 그러니까 몸집보다 큰 가방을 메고 다니 던 그 시절 동네의 한 아주머니는 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물으셨다. '오늘 급식은 다 먹었니?' 미식가이면 입맛이 민감해 까다로울 테지만 난 맛에 둔하고 단지 대식가일 뿐인 데다 가리는 음식도 없어서 급식도 맛있게 싹싹 긁어먹었다. 골고루 먹기라는 교육을 목적으로 잔반 없는 식판을 담임선생님께 검사 맡아야만 점심시간의 자유가 찾아왔던 규칙에도 아무런 스트레스가 없었다. 애석하게도 학교에서 0.1% 안에 들었던 몇 안 되는 분야이기도 했거니와 학교생활에서 가장 쉬운 일 중 하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마주칠 때마다 급식을 다 먹었는지 확인하는 아주머니의 질문이 꽤 귀찮았다. 분명히 매번 다 먹었다고 대답했는데도 그럴 때마다 칭찬을 받았다. '아이고 잘했네. 밥 좀 많이 먹어.' 아마도 책가방에 끌려 다니는 내가 애가 쓰이셔서였을 테지만, 또 바깥 사정이 그런지도 모르고 집에서는 과식하는 나를 말리려 들었다. 엄마는 자주 '그만 먹어.'를 말하곤 했다.      

  


   이 처럼 밥! 밥! 밥! 밥 타령은 나에게 억울하고도 귀찮은 일이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매번 많이 먹는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많이 먹는다고 알려준 들 사람들은 기억하지 않았다. (억울하게) 안 먹게 생겨서 같이 밥 먹어 본 적도 없으면서 안 먹는 애로 이미지가 박혀 있는 일도 다반사였다. 아니, 그나저나 먹는 일이 그렇게나 중요한가? 본능에 의해 먹어왔지만 중요도에 대해 고민해 본 적 없는 나는, 떠나는 나에게 대다수가 빠짐없이 말한 밥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먹으라는 인사가 신기하고도 의문스러웠다. 그 걱정을 왜 할까. 그 당연한 일을.



   자신했던 만큼 끼니를 거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 마음에 맞춰 평생을 일해 온 배꼽시계는 역시나 쉬지 않고 일을 했고 시간마다 먹는 일을 마음먹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미식가 아닌 대식가에게 예상치 못한 난관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선택의 문제였다. '뭐 먹지?', '난 지금 뭐가 먹고 싶지?', '아무거나 뭐 먹지?', '아무거나 그 아무거나 가 뭐냐고 대체!' 나를 먹이는 일이 이렇게나 어려울 줄이야.. 아니, 그 보다 더 어려운 일이 나를 굶게 하는 일일 줄이야.... 선택을 못해서 먹지는 못하고 있지만, 귀찮아서 끼니를 넘기는 일 또한 선택하지 않아서 끝없는 고민으로 시간을 속절없이 흘려보내고, 그 늪에 거의 매 끼니마다 빠져야 했다. '이 놈의 먹는 문제.' 이게 첫 독립의 첫 번째 위기였다. 밥! 밥! 밥! 그게 뭐냐고? 그게 참 어렵고 티 안 나게 중요한 일이더라!



   독립 전, 고플 배와 배고픈 고통이 걱정이라 먹을 걱정을 했던 시절엔 몰랐던 사실,  두 끼 먹은 날과 어쩌다 한 끼만 먹은 날의 힘이 다르고, 대부분 두 끼를 먹다가 간단하게라도 한 끼를 더 추가해 세 끼를 먹은 날이 또 달랐다. 먹는 일이 키 크는 일 혹은 식욕 충족 혹은 누군가의 먹는 기쁨, 단지 그런 일만 하는 게 아니었구나. 배가 늘 채워져 있어 체감하지 못했던 일 (20대가 되기 전까지 하루 세 끼 꼬박꼬박 아침, 점심, 저녁과 간식까지 가득가득가득 성실히 먹었다.), 먹는 일은 하루의 동력을 만드는데 생각보다 큰 역할을 했다. 잘 먹어야 공부도 잘하고 키도 쑥 크고 건강해진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다 먹이기 위해서 시킨 과장인 줄 알았는데, 비록 나는 그 이론에서 살짝 빗겨나가긴 했지만 어른들 말이 다 맞다. 먹는 게 나를 더 잘 살게 하는구나. 하지만 독립 신생아이자 미식가 아닌 대식가의 또 다른 위기, 세 끼를 먹자니 먹을 고민과 먹는 행위로 끝나는 하루, '먹는'으로 꽉 차버린 하루가 또 의문이었다. 마치 먹는 일이 오로지 다음 끼니를 먹어낼 때 사용할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하는 일 같기도 했다. 이게 맞나? 이게 잘 지내는 게 정말 맞냐고! 먹기만 하지 말고 굶기도 하지 말며 잘 사는 일, 이게 알고 보니 균형 잡기가 참 어려운 일이자 놓칠 수도 없는 일인 게 아닌가. 힘찬 나로 키우기가 이렇게나 힘들다니!



   아무쪼록 난 요즘 자취러들에게 타령을 한다. 밥 타령. 밥 잘 챙겨 먹어 밥! 밥!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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