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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희 Apr 25. 2023

아름답도록 불행한 청소

청소

   가끔 인간을 이 세상에 살게 지어 놓은 건 인간이 벌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종교적인 이론을 다 배제하고, 한 인간으로서 나 개인에게 주어진 삶을 짊어지고 살아보면서 한 사유이다. 세상은 극도의 아름다움을 곳곳에 심어두었다. 반면 고통 또한 그 누구의 인생에서도 피해 갈 수 없도록 해 두었다. 인간은 그 굴레에서 떠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안 떠나지도 못하는 운명을 안고 죽음까지 간다. 고통에 지칠 때쯤 극도의 아름다움을 쥐어주며 달콤한 사탕 삼아 살도록 만들고 그 아름다움이 완벽해질 때쯤 고통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리곤 또다시 사탕 같은 아름다움… 그러니까, 밀당, 세상은 삶을 두고 고단수 밀당을 부린다. 인간이 세상만큼 밀당을 잘할 수 있다면 이 세상 썸은 다 아름다운 결말을 내릴지도 모르겠다. 도무지 잡으래야 잡히지 않는 세상의 농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아름답도록 불행한 게 바로 인간의 운명이 아닌지….



   불행의 원인은 여러 가지지만 그 발발은 주로 불운을 통해 오는 법이다. 불운하게도 타이밍 신이 나를 배신했다. 귀가와 동시에 예고 없는 폭격을 맞았기 때문이다.


   "뭐든 책상에 올라갔다 하면 내려오질 않아."


   내 방을 청소하고 있던 엄마가 집에 들어온 나를 보자마자 한 소리를 했다. 방 청소를 해 주다 해주다 질려버린 엄마의 격앙된 목소리였다. 하필 정확히 내 방을 청소하고 있던 타이밍에 귀가라니, 꿋꿋이 인내를 가지던 엄마가 하필 그날 청소도중 화가 나 있었다니, 정리에 도통 재능도 관심도 없는 방 주인 필자는 우물쭈물 아무런 방어도 할 수 없었다. 평소 가벼운 잔소리 정도로 무겁지 않게 넘길 수 있었던 정리정돈 문제가 경고도 없이 무게가 실렸을 때, 불운이 불러온 찰나의 불행은 적지 않은 강렬함을 남겼다.



  독립 전 청소에 대해선 주로 손 하나 까딱 하지 않는 정도의 철딱서니를 가졌었다. 가진 책임이라곤 방 정리정돈 정도가 유일했다. 청소 아닌 정리정돈 말이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의 책임이 종종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내 의지의 나약함을 봐야 했고, 책임감에 대한 한심함도 알아야 했고, 발전 가능성이 얼마나 희박한지에 대해서도 느껴야 했다.


   '아, 내일 내가 방 정리 하려고 했는데...'

   '맨날 그 소리!'


  나는 자주 방 청소에 대한 계획을 세웠고, 세운 횟수와 비등하게 실패했으며, 엄마는 늘 내 실천력 보다 몇 발이나 발이 빨랐다. 정리된 방을 볼 때면 조금 억울했고, 어렴풋이 죄책감 같은 감정이 공존했다. 게다가 정리하는 일 보다 깨끗한 방을 단숨에 흩트리는 일이 백배는 더 쉬웠으니... 이상하게 정말 정말 이상하게 깨끗이 정리된 방에 나만 들어갔다 나오면 금세 물건들이 자유롭게 춤을 췄다. 물건들이 방 곳곳을 공간 삼아 무대를 장악하기까지는 넉넉하게 잡아봐도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건 잠시 가방을 내려놓거나 옷만 한 번 갈아입어도 손쉽게 세팅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방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흔적을 꼼꼼히 남기는 편, 쓴 물건을 원상태로 복귀시킬 에너지까지는 없는 편이라 말할 수 있다.



   물건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이 부지런해야 하는 일이고, 부지런함이 청소, 정리 능력과 직결되는 일이라면, 나는 청소, 정리 따위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겠다. 죄책감보다는 게으름이 언제나 앞서니까. 뒹구는 물건들과 함께 뒹구는 일이 너무나도 괜찮으니까. 적어도 정리 정도만을 책임질 때는 말이다. 하지만 내 공간에 대한 책임이 청소까지로 확장되면 게으른 성격은 이 인생에 덤으로 부여받은 벌이 되는 듯했다. 정리를 하지 않고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푸근한 마음을 갖게 해 주었단 이유로 게으름은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에 가까웠지만, 쳇바퀴 돌듯 끝나지 않는 청소 주기를 만난 후, 그만 불행해지고야 말았기 때문이다.



   우선 청소와 게으름이 씨름을 하다가도 결국은 게으름이 항복을 해야 한다. 즉, 정리와 달리 언제까지나 승리를 거둘 수는 없게 되었다. 씨름하는 일도 괴로운 일이지만 씨름을 포기, 항복하는 일도 쉽지는 않은 일이다. 이는 이성적인 판단이 타고남을 이길 수 없는 순간이기도 하다. 어차피 질걸... 고통받지 않기 위해 고통을 움켜잡는 꼴을 했다. 다음으로는 게으름을 이겨내고 방을 쓸고 닦으며 청소했을 때, 꽉 찬 쓰레기통을 비웠을 때, 빨래를 했을 때, 설거지를 했을 때, 나는 커다란 고통과 해방 그리고 약간의 뿌듯함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고통은 확장이 되었으니… 방금 비운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려야 할 때, 청소한 화장실을 당장 다시 써야 할 때, 빨래를 접어 넣자마자 다시 꺼내 입어야 할 때 그리고 막 설거지 한 프라이팬에 다시 기름을 둘러야 할 때, 그 모든 순간마다 그게 참 아깝고 허무했다. 이를 실행하는 순간엔 어쩐지 한쪽 가슴이 아려오는 듯했다. 약간의 뿌듯함이 이렇게 물거품처럼 사라지는구나. 청소란 참으로 맛이 나지 않는 거구나. 아름다움을 완성한 동시에 제 발로 고통을 창조해 내는 순간이다. 과연 살아가는 게 아름다움을 찾는 척 고통 속으로 계속해서 들어가는 과정인 게 아닐까. 아름답기 위해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청결한 옷을 입을 터인데 말이다. 하지만 고통이 이뿐이 아닌 건 또 하나의 믿고 싶지 않은 고통이다. 눈 깜짝할 사이 또 청소할 때가 오는 것 또한 불행 섞인 한 숨을 쉬게 하는 일이다. 게으름과 싸워 드디어 청소를 끝냈다 하고 해방감을 누릴 새도 없이 돌아서면 또 돌아오는 청소 하는 날! 청소할 때! 청소 타임! 이 세상에 한 인간으로 태어나 성인이 되어 어쩌면 아주 당연하고도 작디작은 일에 불과한 청소 따위, 이걸 겨우 해내면서 나름대로는 진지한 인생론이 머리를 지배해 내는 꼴이 우습다. 그럼에도 겨우 몸을 일으켜 고작 부직포 밀대로 바닥을 휘저으면서도 생각한다.


   '세상은 인간이 일을 하도록 만들어 두었어. 일을 해야만 살 수 있게, 잘 살 수 있게 만들어 두었어. 인간은 고통받는 존재야. 이 세상에 태어난 건 벌을 받는 중인 게 분명해.'


   청소라는 쳇바퀴를 만나며 태어남이 벌이라 생각했던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게으른 성향은 분명 가중된 벌일 테다. 청소라는 게 보다 덜 할 수는 있어도 안 할 수는 없는 문제일 테니까.



   인생이 무기력할 때나 번아웃이 왔을 때 혹은 우울할 때는 기필코 일어나 주변 청소와 샤워를 매일 하라고 한다. 그래야 그 시기를 잘 벗어날 수 있다고... 나는 이러한 조언을 '나를 가꾸어라.'는 말로 해석한다. 나를 아끼고 가꾸는 행위에서 자존감이 생기고 나를 더 살게 하며 나를 일어나게 만드는 거라면, 내 공간에 대한 청소는 나를 아끼고 가꾸며 나를 더 잘 살게 하는 행위이겠다. 그렇다면 과잉보호는 하지 않되 적당히 늦지 않게 들여다는 보아야 하겠다. 그게 건강하게 잘 사는 법이겠다.



   사실 어릴 적 방 청소 문제가 경고도 없이 무게가 실려버렸을 때의 불운, 그 찰나의 불행은 육아를 전담한 엄마보다 바깥일에 바빴던 아빠에게서 더 잦았던 것 같다. 방 청소에 대해 엄마처럼 완전히 개입하지는 않았지만 육아에 한 발 빠져있던 아빠도 방에 대해선 가벼운 잔소리와 때때로 보다 무게 실린 목소리로 '정리'에 대해 한 마디씩 던지곤 했다. 어쩌면 부모에게 자식의 방은 자식의 상태와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받는 건 아닐까? 그러므로 아빠는 방을 들여다보는 일로써 딸의 상태를 체크하는 일을 대신했을까? 하, 그럼에도 청소하며 잘 살기, 이 간단한 일이 참 어렵다. 편안함을 찾는 인간의 속성, 게을러지려는 인간의 속성과 인간답게 살기 위해선 일을 할 수밖에 없도록 지어진 이 세상과의 조화란...



   해도 해도 청소의 수식어는 '밀린' 청소다. 매주 매주 매번 매번 밀린 청소를 끝낸다. 속이 후련하니 만큼 정돈된 공간, 휴우, 아름답도록 불행하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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