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
춥기만 했을 리 없는 내 삶에도 인간에 지쳐 친구고 가족이고 다 신물이 나 지워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내 삶에 개입되었던 그 누구도 다 미련 없이 필요 없을 때, 죽음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거라면 지금까지의 삶이 없었던 것처럼 새로운 세상에서 새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삶에 한 톨도 미련이 없다는 것 그리고 죽음도 내 몫이 아니라는 것, 이 사실은 인간이 가진 얼마나 절망적인 현실인지... 이에 절망하고 또 절망한다. 게다가 이는 나만이 느낀 특별한 감정이 아니라는 것, 인간이라면 한 번쯤 아니 몇 번쯤 그럴 수 있다는 보편이 정말이지 헤어 나올 수 없는 슬픔으로 몰아넣는다. '인간' 인간이 싫어서 살아있는 인간들이 안타깝고 살아가는 인간들이 경탄스럽다. 이게 무슨 일인지 정말 혼란하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은 신물감을 느낄 때 어떻게 대처했던가. A는 인간이 싫을 때마다 그 문제의 인간을 싹둑 끊어냈다. 그게 오래된 친구든 좋은 감정을 가진 이성친구든 구분이 없었다. 누군가 보기에는 사람을 너무 쉽게 끊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지만 그게 A의 방식이었다. 겨우 100일 만난 그를 여전히 좋아한다면서 왜 차버렸냐 했더니 너무 자주 싸우기에 어차피 끝까지 못 갈 것이니 빨리 끝내버렸다고 했다. 잘 지내는 거 같았던 오랜 친구와도 어느 날 끊어버렸다기에 왜 그랬냐 물었더니 자세히 말해주진 않으면서도 원래부터 불편했다는 식이었다. 그렇게 그는 친구가 떠나든 본인이 떠나든 인간관계가 끊기고 끊기는 걸 반복하며 좁은 인간관계에 자주 외로움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미니멀을 꾸준히 해 나갔다. 한편, A와 비슷한 결로 미니멀을 하는 듯 보였던 B는 A보다도 더 가볍게 친구를 사소한 이유로 뚝뚝 끊어버렸다. 하지만 그에 비해 이성친구는 이상한 문제에도 놓지 못한 채 고통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B는 친구가 많지 않았지만 오래 만난 이성친구는 늘 있었다. 반면 그들과는 달리 C는 끊어야 할 것 같은 친구도, 이성친구도 끊어내지 못했다. 상대의 문제와 그로 인해 오는 불편함과 심적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막상 끊지는 못했다. 아니, 않았다. 왜 그러냐 그랬더니 일말의 그 좋은 면을 놓지 못한다고 그랬다. 그 부분이 없어진 삶을 두려워하는 거 같았다. 그러므로 C는 관계의 바닥과 끝을 본 후 너덜 해질 대로 너덜해 져야만 겨우 끝을 냈다. 미련 없음. 그게 C의 방식인 거다. 인간관계, 삶의 방식, 과연 정답이 어디 있을까. 그렇다면 잘 대처하는 일, 잘 사는 일, 그건 어떤 일일까.
자잘한 신경을 많이 쓰고, 꼼꼼히 계획을 세워서 사는 사람이라도 모두 잘 살고, 모든 일이 잘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그 반대, 조금 심드렁하게, 또는 대충대충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잘 살지 못하리란 법도 없는 듯.
멋있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멋있다. 안 씻는 사람 안 씻어도 멋있다. 일생 정리정돈 못하는 사람은 그게 멋이다. 아등바등 살아가는 너 같은 사람은 그것도 그대로 멋이다.
-책, 끌림(이병률) 중-
미니멀 라이프라는 라이프스타일이 유행을 이끈다. 온갖 매체에서는 미니멀을 하고 나면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식의 홍보?를 덧붙인다. 그리고 그에 대한 조언은 이러하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1년 동안 쓰지 않은 물건은 버려라.' 하지만 이 얼마나 가혹하고도 냉정한 소리인가. 신중을 기하여 소비한 물건을 어찌 그렇게나 쉽게 버릴 수 있겠는가. 유행과 남의 시선에 민감한 한국인 특성 때문인지 그에 반한 의견을 가진 일부는 기를 크게 못 편 채 소심한 반기를 든다. 맥시멈 라이프를 고수하겠노라고. 그러므로 나 역시 소심하게 고백하건대 '저는 미니멀라이프를 할 마음이 없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맥시멈 라이프라고 할 수 있죠. 잡다한 물건을 사다 모으는 편은 아니나 가진 물건을 쉽게 버리지는 못하는 편이니까요.' 게다가 특히 절실히 외치건대 '옷장만은 절대 지켜.' (일 년에 계절은 4계절이고 온도도 천차만별이거니와 옷을 매칭하는 일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인 데다 매년 사게 되는 게 또 옷이다. 그렇게 변화들을 맞추다 보면 그 해 그 계절마다 자주 손이 가는 옷이 따로 있고 또 그렇다 보면 1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고 지나치는 옷들이 있음을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애정이 없어서는 아님을 그러므로 버릴 수 없음 역시 선언하는 바이다.)
어떤 찰나에 유독 손이 가는 옷들이 있다. 그 순간 그들을 정말로 뜨겁게 애정한다. 그러다 더 이상 입을 수 없는 온도를 체감할 때, 즉, 계절이 넘어가는 순간 그 사실을 아쉬워하며 다시 입을 날을 기다리고 기대한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또다시 계절이 돌아왔을 때 설레하며 다시 꺼내 입기도 하지만 막상 다시 입지 못할 때도 있다. 그 이유에는 조금씩 새로 들여온 아이템들과 매치하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몇 년 동안 기쁘게 입었던 옷이 이젠 유행이 지나 갑자기 너무 촌스러워 보일 때가 있기 때문인데, 그런 시기에도 느끼는 건 작년 혹은 몇 년 전 여러 이유에 의해 입지 못했던 옷이 그 해 너무 잘 활용되고 있을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일 년이고 몇 년이고 간택되지 못한 그들의 가치가 계속되고 있었다는 점, 그게 내가 생각하는 맥시멈라이프의 가치이다. 1년을 쓰지 않더라도 버릴 수 없음. 이는 분명 따뜻하고 정 많은 맥시멈라이프의 사소한 집착에 불과하지 않다.
라이프스타일이 인간관계 스타일과 비슷한 것인지 내 인간관계는 굳이 따지자면 맥시멈 라이프라 말할 수 있다. 친구이자 인연이라는 이유로 몇 년이 닿지 않더라도 마음속에는 여전히 '나의 인연'이고 그렇다고 그들에게 집착적이지는 않다. 돌고 돌아 우리의 계절과 우리의 온도와 삶의 매칭이 맞아지길 자연스럽게 내버려 둔다. 그러므로 라이프스타일이 인간관계 스타일과 비슷한 거라면 삶이 다 싫고 인간관계에 신물이 나 다 버려버리고 싶을 땐 옷장을 떠올리며 그 시기를 붙잡는다. 지금 이 시기 이 계절의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면 잠시 내버려 두는 걸로. 애써 아끼지도 말고 그렇다고 손절, 완전히 버려버리지도 말고 또 시달리지도 말며 옷장 한 구석에 그 모습 그대로. 그러다 돌고 돌아 어느 계절 어떤 시기에 우리의 스타일이 맞다면 다시 좋았던 것처럼 좋아질 수도 있는 문제이니 말이다. 혹 그렇게 그 시기가 돌아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 그대로 괜찮을 일일 거다. 없으면 안 될 것 같던 옷이 옷장에서 떠나가더라도 막상 잘 지낼 수 있는 것처럼.
물건을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는 내 시선에는 애정을 쏟았던 물건을 과감하게 버리는 인간은 경탄스럽다. 새 물건에 시선이 빼앗기는 나는 물건을 결코 내버려 두지 않고 징그럽도록 오랫동안 애정을 쏟는 인간도 경탄스럽다. 또 밍밍하나 끝까지 내 공간에 짊어지며 정리와 청소와 관리를 아쉽지 않게 하는 인간 역시 경탄스러우며 한편 어느 유형의 인간들도 다 안타깝다. 모든 경탄에서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그 이면엔 안타까움이 있다. 그게 나 이든 남이든 어떤 걸 얻거나 지키기 위해선 그에 따른 힘듦과 고통 그리고 어느 정도의 손해가 따른다는 진리가 여지없이 흐르기 때문일 테다. 그렇다면 정말이지 어떤 방식도 정답 혹은 더 나은 방식이란 건 없는 게 아닐까. 어찌 되었든 스스로의 정확한 취향과 가치관과 삶의 밸런스가 어떤 것인지 명확히 아는 게, 그 길이 우리 각자 개인에게 주어진 정답일 뿐. 그러니 A도 B도 C도 그리고 나도 이 신물 나는 삶을 신물이 나도록 제대로 잘 살고 있다. 그렇게 믿어야 한다.
나는 맥시멈 라이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