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일
아침에 일어나 떡만둣국을 끓여 아이들을 먹이고, 시댁과 친정에 새해 인사를 전했다. 간단한 용건 후에 전화를 뚝 끊곤 하시던 세상 쿨한 김여사님과 (시어머님) 30분 넘게 통화를 했다. 어머님도 나도 외로운가 보다.
그러고 나니, 그다음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연말 휴가 첫날이었던 12월 20일에도 비슷했다. 마지막 이메일을 보내고 나니 이후 뭘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휴가 잘 보내냐"는 친구의 문자에 "지금 아무 생각도 안 나"라고 답했더니, 친구가 바로 전화로 행동 지침을 내렸다. 머리를 앞으로 툭 떨어뜨리고 양팔을 내밀어서, 입을 반쯤 벌린 채 머리와 손을 좌우로 세차게 흔들라는 거다. 그러면 집 안에 자연스럽게 "우러러러럴럴" 하는 소리가 울릴 거라면서. 일 독(work toxic)에서 나를 끊어내는 의식이라나. (따라 하긴 했다.)
따져 보면 할 일은 많다.
연말 내내 옷장과 책장, 서랍들을 뒤져 재정리를 끝냈더니 헌 옷과 종이가 잔뜩 나왔다. 그런데 아직도 방 한가운데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내 방은 3층 (네덜란드 기준으로 2층). 쓰레기통은 1층의 앞마당에. 이걸 밖으로 내놓는 게 왜 이렇게 귀찮은지.
연말엔 이메일함을 정리하고 밀린 보고서들을 읽겠다고 마음먹었다. 주제별로 딱 다섯 개 폴더에 분류도 해놨다. 그런데 매일 새로 쌓이는 이메일 때문에 도무지 동기부여가 안 된다. 나는 여전히 인터넷과 이메일을 만든 사람들을 원망한다.
지인들과 단톡방에서 날아온 새해 인사들에 나름 성의껏 답하고, 뭘 할지 궁리하는 척하며 유튜브를 넘기다 보니 오후 3시가 됐다. 오우 sh**.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는데. 그래서 브런치에 글을 쓴다. 그래도 신년 첫날이 아닌가.
올해처럼 집에서 조용히 연말을 보낸 건 정말 오랜만이다. 작년엔 친정엄마와 아부다비와 두바이에 있었고, 그전엔 몇 년간 크리스마스를 런던에서 보냈다. 늘 피곤하다 투덜대면서도 뽈뽈 잘도 다녔다. 그 돈은 다 어디서 났나 생각하다가, 아, 그래서 내가 부자가 못 됐구나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번엔 막내가 한국으로 치면 고3 수험생이라는 이유로 아무 여행도, 이벤트도 계획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내는 하루 건너 하루 파티와 이벤트로 바쁘고, 집에 주로 있는 건 나다.
조용한 집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한국에서 주문한 책들은 거의 다 읽었다. 여전히 책을 사는 속도가 읽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지만, 그래도 1년에 서른 권 정도는 읽는 것 같다. 업무로 강제로 읽어야 하는 보고서나 뉴스레터를 합치면 양은 충분하다. 읽은 것들이 머리에 남아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은 그냥 읽어냈다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책장을 정리하다 피터 드러커의 The Effective Executive를 다시 꺼냈다. 번역서 제목은 '자기 경영 노트'. 원서를 시도해 봤지만 영어 실력이 얄팍해서 번역서를 다운받아 읽었다. 시작했으니 끝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다 읽어냈지만, 고된 여정이었다. 각 챕터마다 먹다 체한 것처럼 답답했다. 나는 어찌저찌하여 Executive는 되었지만 Effective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는 반성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결국 업무 노트를 꺼내 복귀하면 해야 할 일들을 잔뜩 적어놓고 말았다. 숙제를 늘린 기분이다.
요즘 막내딸은 계속 베이비 복스 노래를 흥얼거린다. 나도 KBS 연말 음악 프로그램에 베복이 나온 유튜브 영상을 봤다. 놀랍도록 잘 관리된 다섯 멤버들의 나이가 마흔 중반이라고 자막으로 큼지막하게 뜨는데, 그녀들이 나보다 서너 살 어리다는 사실은 아무 위안이 되지 않았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몹시 딱하다. 특히 윤은혜와 이희진. 그녀들의 가냘픈 목선과 어깨선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나의 거북목과 승모근은 여전히 치열한 전쟁 중이다.
아무튼 2025년 새해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 따윈 없지만, 인공지능과 자율 주행차 같은 놀라운 것들이 계속 등장하는 시대다.
하지만 여전히 전쟁이 벌어지고, 비행기가 추락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다.
2025년은 조금 더 다정하고 평화롭고 안전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분들에게 - Happier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