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도 감정노동자

by 어거스트

회의에서 말 한마디를 하고 나면, 가끔 생각이 멈춘다.
'이 말이 동력이 되었을까, 아니면 상처가 되었을까'


최근 프로젝트에서 팀이 꽤 빠르게 결정을 내린 일이 있었다.
재무적 리스크, 실행 복잡도, 일정 문제까지 고려하면 꽤 큰 건인데, 생각보다 덜 논의된 채로 결정됐다.

나는 그 상황이 걱정돼서 말을 꺼냈다.
"결정이 빠르네요. 놀랐어요. 그래도 지지하겠습니다. 다만 이로 인한 영향은 분석해서 보고해 주세요."


말만 보면 정중한 피드백이다. 하지만 솔직히 그 속에는 서툰 업무 처리에 대한 실망, 우려, 그리고 조금의 짜증이 섞여 있었다. 그래서일까. 팀은 내 말을 ‘지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날 오후, 한 팀원이 조심스럽게 찾아와 물었다.
"혹시… 아까 말씀은 그냥 분석해서 보고 드리면 되는 건가요? 아니면 결정을 다시 바꿔야 할까요?"

그 순간 피로감이 확 올라왔다.
내 감정을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오히려 내 말의 진위를 해석하는 부담을 팀에게 떠넘긴 꼴이 돼버렸다.




요즘은 리더라는 자리가 생각보다 훨씬 더 섬세한 감정 노동이 요구되는 자리다.
의도보다 감정이 먼저 읽히고, 말보다 말투가 먼저 전달된다.
내가 유럽인 위주의 다국적 팀과 일하고 있어서인지, 그냥 요즘 세대의 소통 방식인지 모르겠다.

일에 관한 논의 끝에 돌아오는 피드백이 "이건 동의하거나 동의할 수 없습니다"는 보다 "그 말투, 상처받았어요"일 때가 있다.


그리고 아무도 묻지 않는다.
"당신은 괜찮으세요?"





김미경 강사의 유튜브 영상에서 들은 이야기다.
당시 조직에 인사 변화가 있었고, 일부 직원들이 "CEO가 회사를 망쳤다", "나가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강사님은 직원들과 마주치는 게 무서워 엘리베이터도 못타고 계단으로만 다녔고, 혈압은 189까지 올랐으며, 응급실에 다녀왔다고 한다.


김미경.jpg


리더도 사람이다.

상처받고, 버겁고, 무너지기도 한다.




오늘은 월요일이지만 네덜란드의 공휴일이라 여유롭게 차를 마시면서 좋아하는 수진언니랑 전화로 간만의 수다를 나눴다.

언니가 해준 얘기. 장원영이 (그 꽃처럼 예쁘고 어린 사람이) 유퀴즈에 나와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보상 없는 고통은 없다."

장원영.jpg



처음엔 웃음이 났다. '스무 살 아이돌이 뭘 안다고'.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나이에도 자기 자리에서 감당하는 무게가 있구나.
그렇다면 우리 팀의 어린 직원들도 다르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피드백이 성급하거나 직설적일 수는 있어도, 그 안에는 나름의 진심과 치열함이 있을 수 있다.
그걸 조금은 다르게 들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리더십은 권위나 완벽함이 아니라 복잡함을 감당하는 태도다.
피로와 오해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매일의 선택이다.


"오늘은 좀 더 따뜻하게 말하자."
이 글도 그 다짐의 연장선이다.





(대문 이미지: https://www.nytimes.com/article/emotional-labo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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