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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phael Jul 09. 2020

백수 생활 2~3달간의 심리 변화

프로이직러의 삶이란


자신감은 생각보다 빨리 사라지고,
그 자리에 불안감이 순식간에 퍼지더라



필자가 몇 년 전부터 계획했던 일정에 따라 해외 석사과정을 지원하고 어렵게 합격 통보까지 받게 되면서, 지난 8년 7 개여 월 간 재직 중이던 현대건설 퇴사를 실행에 옮기게 됩니다. 퇴사를 상대적으로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퇴사 후의 일정이 미리 '유학'으로 계획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약간은 안정이 되어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어찌 되었든 다음에 갈 곳, 할 일이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졸업 이후에는 이렇다 할 계획이나 보장된 생활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퇴사를 실행에 옮기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무모한 결정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설마 내가 가족들을 굶게 하고 길거리의 나앉게 되기야 하겠어"라는 알 수 없는 자신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입학 시기와 맞물려 마침 아들이 태어나면서 가족과 상의 끝에 입학을 다음 해로 연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였고, 결과적으로 1년이라는 준비 기간이 더 주어졌기에 회사 업무와 함께 가용한 개인 시간을 유학 및 이민 준비에 투자하는 등 효율적인 시간 관리를 병행할 수 있었습니다.




한가로운 오후의 광장, Spain




하지만, 필자는 글로벌 다국적 기업에 대한 구직활동을 본격적으로 해본 경험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해외의 채용 절차가 기본적으로 3~4개월, 길게는 5~6개월까지 소요되기 때문에 필자에게는 상대적으로 더 오래 걸리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따라서 구직기간에 대한 준비를 사전에 철저히 해두지 않으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많은 압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필자는 운 좋게 이직이 성공적으로 잘 되었지만, 현실은 늘 그렇게 항상 장밋빛일 수만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타 유럽 국가들의 지원자들처럼 영어는 물론 독일어, 불어, 스페인어 등 현지 유럽 언어를 최소한 한두 개 정도 구사하지도 못할뿐더러, 또한 비자 스폰서십, 가족 이민 지원 등을 회사에서 추가적으로 진행해 주어야 하는 아시안을, 그것도 매니저 급으로 채용을 하기란 현지 회사 입장에서도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라는 건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문 백수의 삶 첫 번째 날을 맞이하며 가장 먼저 한 일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기'였습니다. 그 이전까지의 학업과 업무 및 개인적인 스트레스의 과중으로 몸도 많이 약해져있고 정신적으로도 지쳐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자신만을 위한 휴식 시간을 주기로 마음먹은 거였죠. 실제로 필자가 한창 업무가 과중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시즌에는 체중이 약 6~7kg 정도 감량 되는 등 신체에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약 2주간의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를 남부럽지 않은, 하지만 남부끄러운 백수 생활을 지낸 후 정신을 차려 이력서와 Cover letter를 정비하는 등 본격적인 구직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Spain 축제의 투우 관람




하지만, 역시 인생은 복불복, 타이밍이었던가요. 때 마침, 한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 수가 연일 갱신되고 있었던 시기이자, 유럽 내에서도 본격적으로 전파가 시작되고 있는 시기였습니다. 특히 필자가 거주하던 이탈리아 밀라노의 상황은 매우 안 좋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전 세계적인 감염병으로 인해 3월에 접어들자 채용공고는 감염자 수와 반비례하여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더불어, 서류 전형을 통과하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어렵사리 얻은 면접에서도 탈락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손쉽게 이직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자신감이 바닥을 치는 시기였죠.


그동안 힘들었던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진실된 '내 삶'을 찾고자 우선 퇴사를 했지만, 생각보다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와 더불어, 냉정하다 못해 북극의 빙하 수준이었습니다. 본인만의 꿈을 찾던 이상은 어느샌가 차가운 현실의 벽에 부딪혀, 본래의 목적한 바를 잊게 끔 만듭니다. 불현듯 찾아오는 낯설고 날카로운 불안감들이 새벽 내내 잠 못 들고 뒤척이게 만드기도 합니다. 마냥 편하고 좋을 것만 같던 시간들이 어느샌가 부정적이고 짜증으로 섞인 나날이 되기도 합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은 약해지고, 심하면 자괴감이 들 수도 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러한 불편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대부분의 이유는, 아마 사전 준비가 충분하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필자의 경우도 물론 장기적으로 세부 계획을 세우고 이에 맞춰서 이직을 한 경우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구직 기간을 단축하고 수월하게 진행이 되었던 이유는 재직 중에 이미 준비가 많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필라르 성당 야경, Spain




퇴사를 처음으로 하게 되면 많은 감정, 대부분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 던 다양하지만 늘 유쾌하지만은 않은 감정들을 접하게 됩니다. 이러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본인이 가야 할 방향을 꿋꿋이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이정표가 필요합니다. 주변의 많은 격려와 응원은 물론 도움이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불현듯 세상에 혼자가 된 것 같은 끝없는 고독감이 밀려올 때는, 그 이정표만이 어두운 길의 빛을 밝혀주고 여러분을 붙잡아 앞으로 나아가게 이끌어줄 힘이 될 것입니다.


만약 퇴사를 결심하셨다면 부디 내면에서부터 무너지지 않게 미리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발걸음을 떼어 옮기기 시작하셨다면 소풍 가는 즐거운 마음으로 여정을 떠나시길 바랍니다.


그 여정이 언젠가는 웃으며 회상할 수 있는 즐거운 추억으로 남게 될 테니까요.



[원글: https://blog.naver.com/kimstar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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