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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phael Jul 09. 2020

프로 퇴직러의 삶으로 뛰어들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대하는 자세


퇴사 시 주변 사람들의 조언은 정말 나를 위한 조언인가,
본인들을 위한 스스로의 방어기제인가



 “내가 봤을 때 넌 그럴 만한 역량이 안되는 거 같은데, 뭐가 그렇게 잘난 거니? 스스로 무엇인가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거니?"


필자가 처음 퇴사를 주변에 밝혔을 때 들은 말 중에 하나입니다. 유관 부서의 고참이었던 그분의 솔직하고도 적나라한 그 질문을 받은 그때 그 순간의 감정이 쉽게 잊히지 않아 지금까지도 종종 생각이 나는가 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분도 늘 야근을 반복적으로 하며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던 것 같은데, 그 와중에 필자가 퇴사를 한다고 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괜히 심술도 나고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혈기 왕성했고 어렸던 그 시기에 필자 역시 지고 싶지 않아 감정적으로 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남들보다 크게 뛰어나지도 않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도 다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할 수 있다' 와 '했다' 는 다른 겁니다.”라고요.


퇴사 의향을 밝혔을 때 주변 분들 대부분이 만류했습니다. "나가면 얼마나 힘든 지 모르지?", " 어디 잘 되나 보자, 얼마 안 가서 후회할 거야"라는 말은 참으로 많이 들은 것 같습니다. 아마 필자가 그분들에게 그만큼의 신뢰를 주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후 해외 유학에 성공하고, 유학 후 해외 취업에 성공하자, 이제 필자가 새로운 무언가를 하겠다고 무슨 말을 하든 "그래 넌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시선으로 바뀌는 걸 느꼈습니다. 개인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는 편은 아니지만, 질투, 비난을 받는 것보단 응원과 독려를 받는 편이 아무래도 더 마음이 편하기는 한 것 같습니다.


출국일 이른 새벽에 공항을 향하는 인천대교


우리는 영화, 책 등 다양한 대중 매체를 통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해라, 자기가 원하는 삶을 추구해 나가라'라는 메시지를 자주, 많이 접하고 살아가고, 그 순간에는 '아 그렇지! 그렇게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하다 가도 왜 이리 쉽게 다시 현실 속에 살게 되고 실제로 행동하고 실천으로 옮기는 건 어려운 걸까요? 주변에서 누구도 쉽게 그런 상황을 독려하고 응원하지 않는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직장 내에서도 "나가서 어디 갈 데는 있느냐?", "밖은 춥다 못해 전쟁터다", "어쩌려고 그러냐" 등 셀 수 없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질문들로 다시 생각해보라는 설득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많은 질문들에서 진정으로 ‘나'를 염려해서 해주는 말들이 얼마나 될까요? 그들이 의도적으로 악의적인 말을 하고 무엇인가를 방해하려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필자의 생각으론 그들 스스로가 불안해지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그들이 위치한 곳이 본인들이 생각하는 ‘안정된 공간'이라고 여기거나, 혹은 그러하기를 희망하는 마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본인들이 현재 있는 그 자리, 그 위치가 매우 안정적이고 옳은 선택임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고, 누군가 그에 반하는 선택을 하면 그 공간에 남아 있는 자신은 뭔가 뒤처지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의식, 혹은 관성적으로 지내왔던 것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불편함을 느끼는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그러한 생각과 판단의 전제는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 가능한 ‘옳고 그름'의 선택과 결론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좋고 싫음의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이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그 판단 결과 역시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타인과의 ‘비교’의 문제적 사고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본인에게 가장 맞는 정답을 찾기란 불가능합니다. 필자는 퇴사 시마다 늘 듣는 같은 조언들이었지만, 퇴사 후 한 번도 필자의 결정을 후회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비교'라는 사고의 틀을 벗어났기 때문이죠.


Spain, Madrid 공항에서 Zaragoza를 향하는 기차 안



퇴사해도 큰일 나지 않더군요. 사전에 준비를 잘 해왔다면 말입니다.



필자는 대학교 4학년 때 졸업 전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2010년 1월 최종 현대건설에 공채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기 전에, 이미 포스코건설의 신입사원, 대림산업의 채용연계형 인턴으로 근무하고 사직서를 제출해본 경험이 두 번이나 있었으니, 어린 나이에 제법 사직서 내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지고 익숙해졌었나 봅니다.


그렇게 현대건설에서 근무를 시작하여, 8년 7개월 정도의 제법 오랜 기간 일을 해왔습니다. 그중에 MBA를 준비한다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GMAT 공부를 했던 시기도 있고, 결혼도 하고 아기도 생겼습니다.


그러한 ‘남들이 보기에’ 평범한 삶을 살던 어느 날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빨리 늙어서 은퇴를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한 생각의 배경에는 아마 하루하루 치열한 삶과 스트레스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1분 1초가 아까워서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어야 마땅할 필자의 삶이 어느샌가 해야만 하는 숙제와 같이 지나가고 있던 것입니다. 갑자기 너무나 무서워졌습니다. 더 나중에 늦은 깨달음 후에는 되돌릴 수 없음에 아찔해서 몸서리쳤습니다. 그날 저녁을 기점으로 필자는 퇴사를 결심하고 바로 행동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퇴사 후 유럽에서 공학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졸업 후 삼성전자 이탈리아 법인에서 현지 채용되어 근무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다시 이직을 하게 되는데, 해외에서 새로운 문화와 다양한 도전을 기대했던 필자였기에, 다시 본래 필자가 희망했던 다문화 기업에서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Spain, Zaragoza, 스페인의 씨에스타를 맞이하는 자세



주변에서는 "퇴사를 그렇게 쉽게 해도 괜찮은 것이냐"하고 걱정을 많이 하곤 합니다. 일정 부분은 준비 없이 무모한 결정을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필자가 퇴사를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또한, 단순히 무모하다고 하기에는 평상시에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았을 제 나름대로의 수많은 준비와 노력이 뒷받침돼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월했다고 생각됩니다.


이직에는 많은 전략과 노하우, 스킬, 그리고 노력이 필요합니다. 개개인의 상황이 다르겠지만, 본인에게 어느 정도 가용한 시간과 자원의 여유가 있다면 일단 퇴사를 하고 준비를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고, 필자와 같이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경우 혹은 가능한 한 근로소득의 공백 기간을 줄여야 하는 경우이면 사전에 미리 많은 준비를 하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특히나 필자와 같이 교포도 아니고 조기유학 경험도 없는 토종 한국인으로서 해외취업을 염두에 두고 계신다면, 절대적으로 이에 맞는 전략과 방법으로 접근하시기를 강력하게 권해드립니다. 왜냐하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나중에 철학을 공부해보고 싶기도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를 가져보고 싶기도 합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 정해 놓은 ‘정답 사회'로부터 그동안 10여 년 넘게 내려놓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는 조금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Spain


[원글: https://blog.naver.com/kimstar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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