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생활 2~3달간의 심리 변화

프로이직러의 삶이란

by Raphael


자신감은 생각보다 빨리 사라지고,
그 자리에 불안감이 순식간에 퍼지더라



필자가 몇 년 전부터 계획했던 일정에 따라 해외 석사과정을 지원하고 어렵게 합격 통보까지 받게 되면서, 지난 8년 7 개여 월 간 재직 중이던 현대건설 퇴사를 실행에 옮기게 됩니다. 퇴사를 상대적으로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퇴사 후의 일정이 미리 '유학'으로 계획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약간은 안정이 되어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어찌 되었든 다음에 갈 곳, 할 일이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졸업 이후에는 이렇다 할 계획이나 보장된 생활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퇴사를 실행에 옮기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무모한 결정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설마 내가 가족들을 굶게 하고 길거리의 나앉게 되기야 하겠어"라는 알 수 없는 자신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입학 시기와 맞물려 마침 아들이 태어나면서 가족과 상의 끝에 입학을 다음 해로 연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였고, 결과적으로 1년이라는 준비 기간이 더 주어졌기에 회사 업무와 함께 가용한 개인 시간을 유학 및 이민 준비에 투자하는 등 효율적인 시간 관리를 병행할 수 있었습니다.




20180902_115050.jpg 한가로운 오후의 광장, Spain




하지만, 필자는 글로벌 다국적 기업에 대한 구직활동을 본격적으로 해본 경험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해외의 채용 절차가 기본적으로 3~4개월, 길게는 5~6개월까지 소요되기 때문에 필자에게는 상대적으로 더 오래 걸리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따라서 구직기간에 대한 준비를 사전에 철저히 해두지 않으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많은 압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필자는 운 좋게 이직이 성공적으로 잘 되었지만, 현실은 늘 그렇게 항상 장밋빛일 수만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타 유럽 국가들의 지원자들처럼 영어는 물론 독일어, 불어, 스페인어 등 현지 유럽 언어를 최소한 한두 개 정도 구사하지도 못할뿐더러, 또한 비자 스폰서십, 가족 이민 지원 등을 회사에서 추가적으로 진행해 주어야 하는 아시안을, 그것도 매니저 급으로 채용을 하기란 현지 회사 입장에서도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라는 건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문 백수의 삶 첫 번째 날을 맞이하며 가장 먼저 한 일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기'였습니다. 그 이전까지의 학업과 업무 및 개인적인 스트레스의 과중으로 몸도 많이 약해져있고 정신적으로도 지쳐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자신만을 위한 휴식 시간을 주기로 마음먹은 거였죠. 실제로 필자가 한창 업무가 과중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시즌에는 체중이 약 6~7kg 정도 감량 되는 등 신체에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약 2주간의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를 남부럽지 않은, 하지만 남부끄러운 백수 생활을 지낸 후 정신을 차려 이력서와 Cover letter를 정비하는 등 본격적인 구직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20180818_185053.jpg Spain 축제의 투우 관람




하지만, 역시 인생은 복불복, 타이밍이었던가요. 때 마침, 한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 수가 연일 갱신되고 있었던 시기이자, 유럽 내에서도 본격적으로 전파가 시작되고 있는 시기였습니다. 특히 필자가 거주하던 이탈리아 밀라노의 상황은 매우 안 좋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전 세계적인 감염병으로 인해 3월에 접어들자 채용공고는 감염자 수와 반비례하여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더불어, 서류 전형을 통과하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어렵사리 얻은 면접에서도 탈락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손쉽게 이직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자신감이 바닥을 치는 시기였죠.


그동안 힘들었던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진실된 '내 삶'을 찾고자 우선 퇴사를 했지만, 생각보다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와 더불어, 냉정하다 못해 북극의 빙하 수준이었습니다. 본인만의 꿈을 찾던 이상은 어느샌가 차가운 현실의 벽에 부딪혀, 본래의 목적한 바를 잊게 끔 만듭니다. 불현듯 찾아오는 낯설고 날카로운 불안감들이 새벽 내내 잠 못 들고 뒤척이게 만드기도 합니다. 마냥 편하고 좋을 것만 같던 시간들이 어느샌가 부정적이고 짜증으로 섞인 나날이 되기도 합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은 약해지고, 심하면 자괴감이 들 수도 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러한 불편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대부분의 이유는, 아마 사전 준비가 충분하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필자의 경우도 물론 장기적으로 세부 계획을 세우고 이에 맞춰서 이직을 한 경우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구직 기간을 단축하고 수월하게 진행이 되었던 이유는 재직 중에 이미 준비가 많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20181012_224008.jpg 필라르 성당 야경, Spain




퇴사를 처음으로 하게 되면 많은 감정, 대부분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 던 다양하지만 늘 유쾌하지만은 않은 감정들을 접하게 됩니다. 이러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본인이 가야 할 방향을 꿋꿋이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이정표가 필요합니다. 주변의 많은 격려와 응원은 물론 도움이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불현듯 세상에 혼자가 된 것 같은 끝없는 고독감이 밀려올 때는, 그 이정표만이 어두운 길의 빛을 밝혀주고 여러분을 붙잡아 앞으로 나아가게 이끌어줄 힘이 될 것입니다.


만약 퇴사를 결심하셨다면 부디 내면에서부터 무너지지 않게 미리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발걸음을 떼어 옮기기 시작하셨다면 소풍 가는 즐거운 마음으로 여정을 떠나시길 바랍니다.


그 여정이 언젠가는 웃으며 회상할 수 있는 즐거운 추억으로 남게 될 테니까요.



[원글: https://blog.naver.com/kimstar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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