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인문계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고3시절, 공부로는 대학을 못갈듯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축구 선수를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물론 저는 축구부도 아니었고 그냥 인문계를 다니던 고딩이었습니다 ㅎㅎ
당시 제가 다니던 학교 후문에 전직 프로축구선수가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서 그분에게 찾아가 코치를 받고 축구선수가 되면 어떨까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그때의 생각은 추억이 됐고 어느덧 저는 26살의 청년이 됐습니다. 저는 공익판정을 받고 26살에 산업기능요원으로 군복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26살의 저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20대 초중반부터 일을 했기에 대학과는 무관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산업기능요원으로 일을 하는것도 아니고 대학교를 휴학하고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것도 아닌지라 적잖이 고민이 많았습니다. 당시 산업기능요원 복무기간이 2년 2개월이었으니 29살에 가까운 28살에 제대를 하게 되는데 무언가 이뤄논 것도 없었기에 암울한 미래가 눈앞에 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면서 학점은행제 수강신청을 했고 그제서야 저의 대학생활(?)이 시작됐습니다. 공장에서 근무하는 시간은 아침 8시부터 밤8시 30분까지였습니다. 야근을 하는 월요일, 수요일, 목요일에는 이 시간대로 일을 했고 화요일과 금요일에는 5시까지 일했습니다.
공장에서 근무를 하니 온몸이 녹초가 되서 작업복을 입은채 잠들기 일쑤였습니다. 한번은 밤 새서 무언가를 하고 출근하며 근무를 했는데 깜빡 졸다가 큰 사고가 날뻔했습니다. 그뒤로 다시는 밤샘을 하지 않고 무조건 빨리 일어나서 아침에 할일들을 했습니다. 저는 점점 빨리 일어나 새벽 4시에 일어났습니다.
학점은행제는 학점은행제대로 병행하면서 제가 아침에 한것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일과 축구를 한것이었습니다. 아마추어를 기준으로 제 축구실력은 '상' 또는 '상하'정도 됐는데 어느날 조기축구팀에서 축구를 하면서 제가 긴장하거나 압박이 심한 상대를 만나면 실수가 잦다는 것을 알게 됐고 긴장이되도 압박이 심해도 축구를 잘해야 진짜 축구를 잘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뒤로 매일 아침 축구를 연습했습니다. 몸이 너무 피곤해서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면 밤에 조금이라도 축구를 했습니다. 이때는 그냥 축구를 지금보다 더 잘하고 싶고 나에게 만족스러운 실력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서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제가 근무했던 공장의 마당이 콘크리트바닥이었는데 항상 그 앞에서 풋살화를 신고 축구연습을 했습니다. 그렇게 꼬박 2년이 흐르고 저는 리프팅을 200개하던 수준에서 1700개정도 하는 수준이 됐습니다.
제대했을때는 매일 아침 축구하던 습관이 이어져서 아침에1시간-2시간정도 축구연습을 하고 아침9시30분부터 근무를 했습니다.
그렇게 한 3년의 시간이 흐른뒤에는 리프팅을 거의 3000개 가까이 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유투브에서 혼자축구연습할 수 있는 영상들을 찾아보고 꼬깔과 접시콘을 두고 드리블 연습, 슈팅연습등을 했습니다.
혼자 축구 연습을 3년 즈음 하니 조기축구팀에서는 거의 원탑정도가 됐습니다. 그때즈음 막 고알레에서 트레인 위드 알레를 기획해서 진행했었는데 그곳에 참여했습니다. 평소 성격이 내성적이고 자신감은 없던 터라 조기축구팀원들이 '잘한다'고 말을 해줘도 믿지 않았었는데 트레인위드알레에 참석해보니 제가 축구 실력에 자신감을 가져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트레인위드알레가 끝난직후에는 TNT 아카데미도 수강하게 됐고 그곳에는 선수출신분들도 몇분 와서 더 수준높게 공을 찰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선수출신분들이라 긴장도 많이하고 그랬지만 평일에 항상 운동하고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나가니 선수 출신들과도 '비벼볼'만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른뒤, 다시 혼자서 축구연습을 하다가 문득 '한국에서는 아마추어로 시작해서 프로선수의 꿈을 이룬 사람이 없나?'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한국에는 제이미 바디같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물어도 아마추어로 시작해서 축구선수가 된 사례는 없었습니다.
한국에 바디같은 사람이 없었음을 확인했음에도 마음 한켠에서 울리던 '축구 선수의 꿈'은 계속 저를 불지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유투브에서 제가 찾고자 하는 팀을 소개하는 어떤분의 영상을 접하게 됐고 인터넷을 뒤져 그 팀을 알아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곤 곧바로 그 팀에 합류했습니다. 실제로 6개월만에 아마추어가 태국프로팀에 합류하게 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는 29살이었고 팀에서는 나이가 가장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랑곳 않고 꼭 프로선수의 꿈을 이뤄보고자 아침에도 연습했고 오후에는 팀에 가서 연습을 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왕복 4시간-5시간 정도의 거리를 일주일중 4일을 다니면서 정말 간절히도 축구를 했습니다. 팀 회비가 저에게는 조금 부담이 됐기에 6개월정도의 시간만 도전하자는 생각으로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그해 여름은 폭염이 무척이나 심했습니다. 저는 그 여름에도 얼굴을 물에 적신 수건으로 감싸고 런닝을 했고 오후 팀 운동이 너무나 빡셌지만 아침에 따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2시간 개인운동도 병행했습니다. 오후에 팀 훈련을 할때 무릎이 아팠지만 참으면서 계속 축구를 했습니다.
그렇게 2개월-3개월이 지났을즈음, 팀훈련을 하면서 가볍게 다리근육운동을 했는데 갑자기 허벅지 뒤쪽이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햄스트링 부상이었습니다. 제 몸이 운동량을 버티치 못해서 근육이 다친듯 했습니다.
한달이 지나도 회복이 안됐고 2개월이 지나도 회복이 안되 초조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들을 병행하면서 병원에 꼬박 꼬박 나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빨리 치료를 받아야 빨리 축구를 할 수 있었기에 매일 매일 병원에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녔습니다.
3개월-4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어느정도 회복이 됐고 복귀한 첫날이 연습경기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연습경기에 후반교체멤버로 투입됐습니다. 저희 팀이 수비를 하는 상황에서 수비수가 볼을 클리어했고 공이 제 앞으로 바운드됐습니다. 시야를 확보한뒤 우측면에 있던 저희 팀 동료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곧 바로 롱패스를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또 허벅지에서 안좋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시 또 부상을 당했습니다. 쉬는 시간은 길어지고 여자친구가 있던 저는 결혼 생각도 해야 했고 빨리 취업도 해야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축구 선수로 취업하자는 생각에 더 간절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부상이 계속 이어지고 병원비로 나가는 비용과 팀 훈련비용으로도 지출이 많았던 터라 현실적으로 도전을 더 이어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감독님께 말씀드리고 축구 선수의 꿈을 포기했습니다. 축구 선수의 꿈을 내려 놓았을때 마음 한켠이 아팠지만 그럼에도 참 좋았습니다. 무모했지만 제가 가진 거의 모든것을 걸고 도전했기에 도전의 끝에는 후회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선수의 꿈'은 저에게 없습니다. 조기축구팀에서 축구를 잘하고 싶다는 미련도 사라진지 오래더군요 ㅎ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축구'와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예전에 축구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며 알게된 분이 한 축구매체를 관리하셨는데 제가 적었던 축구 관련 글이 '괜찮다'는 평가를 해주셨고 우연찮게 일요일에만 기자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비록 6개월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골닷컴등에서 활동했던 에디터님에게 많은 부분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특히 매체에는 어떤 글을 기고해야 하는지, 기자는 어떤 덕목을 지녀야 하는지등을 깊이 있게 배웠습니다. 이후 저는 다른 매체로 옮겨 프리랜서기자로 활동을 이어가고있습니다.
사실, 저는 축구를 보고 분석하고 공부하는 일보다 그저 축구하는 것을 좋아했었던 사람이어서 그런지 프리랜서 축구 기자라고 소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축구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더 축구를 잘 알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