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차 비선출 축구지도자의 성장일기
21년 12월부터 현재까지 축구선수 비선출인 사람으로서 축구지도자를 하고 있다. 5세부터 16세까지 가르쳤다. 여성 및 남성 레슨까지도 진행했다. 그래도 가장 나랑 많은 시간을 보냈던 대상은 5세~10세 정도의 아이들인 듯 하다.
여러 마음이 교차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비선출인 내가 처음으로 축구 지도자라는 직업을 경험할 수 있게 도와준 감독님과 대표님께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 21년 하반기 나는 집에서 축구 데이터 분석만 하면서 살았다. 삶은 조금씩 건강하지 못한 쪽으로 흘러갔다. 마침 코로나 19가 터졌고 비프로 11 경기수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큰 문제가 없었을 터. 하지만, 나는 책임져야 할 아내가 있었고 나의 마음도 '도전'을 속삭였다. 그렇게 구직 사이트에서 축구 지도자를 구인하는 회사에 모조리 이력서를 넣었다. '축구 지도자'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그나마 교회에서 축구를 가르친 경험이 몇번 있었고 여러 축구관련 활동들을 이력서에 다 넣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한 10군대 이상 지원을 했던 듯 하다. 그 결과, 단 2곳에서만 연락이 왔다. 어떤 곳에서는 선생님의 능력이 너무 넘쳐 저희가 감당치 못하겠다는 어이없는 답변도 받기도 했다.
그나마 2곳 중 1곳은 개인 사유로 면접조차 볼 수 없었다. 그렇게 경기도 구리시의 한 풋볼클럽에서 '나'에게 면접 제안을 했다. 그렇게 나는 면접을 봤다. 40분~1시간 정도 면접을 봤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모든게 신기했다. 그렇지만, 월급이 무척 적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이유가 되지 않았다.
아직 합격도 안했는데 스스로 큰 고민을 했다.
이 생각이 계속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당시의 나에게 '축구 지도자'는 미지의 영역이었고 이 기회가 아니라면 그리고 지금도 30대인데, 시간이 더 지나면 이 직업을 경험해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무조건 간다고 했다. 사실, 무조건 간다고 한 행동은 아내의 지분이 95%였다.
아내는 내게 "여보, 한살이라도 어릴 때 축구로 아이들 가르쳐봐야지. 언제 또 경험하겠어. 무조건 간다고 해요"
그렇게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축구 지도자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처음에 내가 감독님께 넘겨 받아 수업을 했는데 지켜보시던 어머님께서 감독님께 심하게 컴플레인을 거셨다. 그리고 한번에 3명이 그만두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안그래도 한 곳에 정착하기까지 오래걸리는 나는 더 주눅들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한달을 다 채워갈 즈음에는 접촉사고까지 냈으니 오죽했을까. 생전 사고라고는 당해보기만 했지 내본 적도 없는 내가 처음으로 사고를 내고 무척 당황했다. 게다가 나의 차도 아닌 회사차로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대한축구협회 D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한 후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독님께서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를 신뢰해주셨다. 그렇게 아이들을 조금씩 조금씩 더 많이 만났다. 나는 아이들을 처음부터 사랑했던 사람은 아니다. 그냥 귀엽다 정도였지 그닥 큰 관심은 없었다.
그런데, 볼 수록 시간이 지날 수록 아이들이 예뻐보였다. 어떤 선생님 말씀으로는 "보기만 해도 귀여운 나이 대가 있다"고 하는데 참 맞는 말인 듯 하다. 아무튼, 그렇게 아이들과 점점 정이 들고 어린이에 관한 책도 보면서 아이들을 조금씩 이해해 나가보려고 했다.
거기에 비선출의 한계를 극복해야하는 과제가 있었던 나는 감독님께 레슨을 받고 매일같이 남아서 1시간 또는 30분정도 드리블 연습을 하고 퇴근했다. 참 행복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해당 지점의 지점장이 됐다. 부모님과의 상담, 차량 안내표, 신규회원 안내, 수업 스케줄 안내 등 조금씩 많은 부분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13개월이 흘렀고 여러가지를 고려한 끝에 나를 지도자로 처음 받아준 이 곳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 생각을 하기까지 한 2개월 정도가 걸렸다. 거의 밤에 잠을 잘 못 잤고 루틴도 깨졌다. 지금까지 연애하면서나 지금 결혼한 아내에게도 한번도 '헤어지자'는 말을 해본 기억이 없는데, 첫사랑에게 혹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헤어지자'고 말한다면 바로 이 기분일까? 싶을 정도로 마음도 많이 괴롭고 많이 슬펐다. 왜인지 배신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내와 가정을 생각해야했고 나의 1년은 10살이나 어린 다른 선생님들의 1년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에 마음은 아프지만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렇게 어려운 결정을 했고 정들었던 나의 첫 직장 (축구 지도자)을 떠났다. 지난주에 내가 담당했던 모든 아이들의 어머님들께 연락을 했고 인사할 수 있는 분들에게는 작별인사를 했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참 좋은 직업이다. 사랑이 없는 사람이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 순수한 어린이들로 인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이 되어지고 그렇게 알아주시는 어머님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가라고 해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겠다. 어머님들께서 해주신 칭찬과 마음을 기쁘고 감사하게 받되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착각은 하지 말자. 또 내가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고 축구가 한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렇게 해준 것이다. 절대 나의 것이 아니다. 취하지 말자.
지난 주에는 이렇게 작별인사를 하느라 마음이 많이 허했다. 내일 다시 새로운 직장에 출근해야 하는데 한동안 계속 마음에 남을 듯 하다. 이제 이런 작별은 그만하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센터를 차려서 내가 아닌 아이들이 떠날 때 안아주는 지도자가 되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