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이 동생 들풀이가 우리에게 왔다...
고양이 용이가 우리를 떠나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아내가 잠을 자다 슬프게 울었다. 대성통곡에 이르기 직전의 구슬픈 울음이었다. 나는 얼른 아내를 흔들어 깨우며 꿈이야, 꿈이야, 라고 몇 차례 말해주었다. 아내는 알았다고 대답하고 나서도 한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잠시 앉았다가 다시 누워서야 울음이 잦아들었는데, 무슨 꿈을 꾼 거야, 라고 물어도 고개를 흔들며 아니야, 라고 말하는 게 전부였다.
아내는 잠꼬대를 많이 하는 편이다. 아내의 잠꼬대는 숫자인 적도 있었고, 배구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누군가를 달래기도 했고, 대개는 그저 혼자 웃는 것들이었다. 아내가 자다가 우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고양이 용이가 떠나고 일주일쯤 지난 다음의 일이었다. 다시 일주일이 흐른 다음 내가 갑자기 물었다. 그날 너 울었을 때 말이야, 용이를 만난 거야? 아내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그렇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으로부터 급한 호출이 있었다. 동생네 주차장에 사는 새끼 고양이 네 마리 중 한 마리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살펴보니 뒷다리를 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위급하다고 판단되어 일단 병원에 데려가기로 했다.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녀석이었고, 기를 쓰고 도망치려 했지만 뒷다리를 쓰지 못하니 역부족이었다. 나는 얼른 잡아 케이지에 넣었다.
24시간 운영하는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뒷다리 하나가 부러진 상태였다. 엉덩이와 다리가 연결되는 골두 부위가 끊어졌는데, 깁스를 할 수 있는 부위가 아니고 아예 잘라내야 한다고 했다. 잘라낸다는 말에 크게 당황했는데, 다리를 조금 절기는 하겠지만 사족 보행의 동물이니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상의 끝에 수술을 결정했다.
수술을 한 다음부터 열흘 동안 사무실 한켠에서 돌보던 고양이는 결국 우리집으로 데려와야 했다. 사무실에서 키우기에는 환경이 적당하지 않았고, 형제들이 있는 바깥으로 돌려보내자니 아직 여의치 않은 다리로 적응을 장담할 수가 없었다. 열흘 동안 녀석의 성정을 살펴보았는데 집에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해보였다. 집에 오는 길에 고양이 용이의 마지막을 돌보았던 선생님에게 먼저 들렀다. 오육 개월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살펴보더니 유치가 그대로라며 사 개월쯤의 고양이라고 알려주었다.
용이가 떠난 후 남아 있는 고양이 들녘이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 들녘이도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슬퍼서, 그때는 그 슬픔을 감당할 수조차 없을 것 같아서 다른 고양이를 들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이렇게 빨리는 아니었다. 아내와 나는 심사숙고 끝에 결국 우리 밖에 없잖아, 라고 결론냈다. 운명처럼 나타나는 고양이가 있겠지, 라고 말하며 아내와 내가 고개를 주억거린 지 오래지 않았는데, 그렇게 나타났다.
아픈 고양이라서 튼튼이, 라고 부르려고 했는데, 그 이름 가진 강아지들이 많고 그 강아지들이 하나같이 수선스럽다는 동물 병원 선생님의 말을 듣고 음, 포기했다. 후배가 들녘이 동생이니 동녘, 이 어떠냐고 했고 마음에 들었지만 아내가 고개를 저었다. 들, 자 돌림을 찾아보라는 아내의 말에 머리를 싸맸고 들풀, 이라는 이름으로 결정했다. 그렇게 들녘이 동생 들풀, 이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