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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Oct 07. 2024

설거지는 벌?

아내의 영민함이란...

  결혼 후 아내와 나는 구체적으로 집안 일을 나누고 기록하여 명시하지는 않았다. 서로가 서운하지 않을 정도로 요령껏 그리고 눈치껏 알아서 했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었고, 그당시 거의 매일 술 먹으러 다니는 나보다 아내가 압도적으로 많이 집안 일을 했을 것이다. 아내가 대놓고 지적한 적은 없지만 분명하다, 이런 일화를 떠올려 보면...


  당시에 나는 술을 마시면 종종 핸드폰이니 지갑을 잃어버렸다. 비가 많이 와서 어쩔 수 없었어(비가 오는 거랑 핸드폰 잃어버리는 것이 무슨 상관인데?), 집에 오는 길에 불쌍한 고양이를 발견했어(고양이가 지갑을 물어간 것도 아니잖아?) 등등으로 나의 분실을 얼버무렸고, 아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하면서도 넘어가 주었다.

그렇게 만취의 데미지가 다음 날까지 이어진 어느 날, 저녁상을 치우던 아내가 나를 돌아보고 말했다.


  "어제 술 마신 벌로 오늘 설거지는 형이 해!!!"


  나는 냉큼 그러겠다고 하고는 싱크대 앞으로 바짝 붙어섰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힐끔힐끔 아내를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내를 발견했다. 아내는 그러고도 한참 동안 더 나를 바라 보다가 이렇게 일갈하였다.


  "그런데 말이야, 형. 그럼 나는 지금까지 내내 벌을 받고 있었던 건가?"


  아, 아내의 명민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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