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승부를 겨루는 사람...
함께 사는 사람과 취미를 공유하면 여러 가지로 좋다. 지난 봄 서울 마라톤 대회를 끝내고, 아내와 나는 달리기를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변주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이것도 그 중 하나이다.
형, 나는 아무래도 승부욕이 없는 것 같아.
승부욕? 뭐, 누군가와 승부를 겨룰만한 수준의 승부욕은 아니지...
혹시 내가 승부욕이 없어서 더 잘 달리지 못하는 걸까?
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래도 승부욕이 있으면 아무래도...
아 됐어. 이 나이에 승부욕을 불태우면 노욕이야.
흠... 근데 형 아침에 리커버리 런 했어?
흠... 안 했는데...
그럼 얼른 나가서 달리고 와.
알았어...
ps1. 올봄 서울 마라톤 대회에서 나는, 20킬로미터 지점에서 퍼져버린 아내와 남은 거리를 함께 했다. 한 걸음 뒤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숨소리에 맞춰 페이스를 조절했다. 그런 아내가 종합운동장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고 골인 지점이 보이자 갑자기 질주를 시작했다. 나는 어,어,어,어 갑자기 왜 그래 하면서 쫓아갔고, 아내는 나보다 1초 앞서 골인했다.
ps2. 아내가 승부욕이 없는 건 사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아내는 다른 사람과 승부를 겨뤄 이기려는 생각이 희박한 사람이다. 그런데 가만 보면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승부를 겨루는 사람같기도 하다. 달리기라는 운동이 아내에게 잘 어울리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