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따뜻하고 나에게는 시크한 아내...
젊은 시절 아내는 모두에게 따뜻했고 모두에게 시크했다. 그때 아내는 담배를 피웠다. 나는 아내에게 담배 피우는 법을 알려준 선배이다. 시간이 지나자 아내는 모두에게 따뜻하고 나에게는 시크한 사람이 되었다. 아내는 담배 피우지 않는 사람도 되었다. 나도...
1. 동물병원에 가면 원장님이 키우는 고양이 두 마리와 강아지 한 마리를 만나게 된다. 고양이의 이름은 숙자와 베리, 그리고 강아지는 캐시(캐쉬는 아니겠지)이다. 캐시는 사람을 아주 좋아해서 출입문이 열리면 버선발로 뛰어 나온다. 숙자는 고고한데 털을 깎이고 나서 한 동안 실의에 빠져 있었다. 베리는 은둔형이어서 자주 얼굴을 보여주지 않다가 불쑥 까맣게 나타나서 사람을 놀라게 한다.
“선생님 근데 캐시가 리트리버인가요?”
“예? 딱 봐도 보더콜리잖아요.”
아내한테 지청구를 먹는다. “형은 덩치 큰 개만 보면 다 리트리버래...” 겸연쩍어 수다스러워진다. “아, 제가 이런 대형견을 키우는 게 로망이거든요. 고양이랑 같이 키워도 상관없을까요?” “캐시랑 베리는 나름 친하고, 숙자는 캐시를 무시해요.” 어떤 개냐 어떤 고양이냐에 따라 경우의 수가 다양하다는 이야기일 거다. 아내가 말을 낚아챈다. “집에서 저 큰 개를 어떻게 키워?” “나이가 더 들고 집도 더 커지고 하면 키울 수도 있지 뭐...” 얼른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아내가 나를 잡아끈다. 선생님과의 수다를 그만 두고 집으로 향하는 길, 잠자코 있던 아내가 갑자기 내게 묻는다.
“근데 형... 나이가 들면 집이 저절로 커져?”
“아............ 그게, 그럴 리가..........”
2.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를 봤다. 영화의 초반부에 엄마 역의 키키 키린과 그 딸의 대화가 나온다.
딸 : 멍하니 있으면 치매 생겨, 친구를 만들어.
엄마 : 지금 새 친구 만들면 장례식 갈 일만 늘어.
나는 왠지 아내가 할머니가 되면 키키 키린과 닮아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천연덕스럽게 비정한 유머를 구사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