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일 《만약 우리의 시 속에 아침이 오지 않는다면》
“한 사람의 죽음이 가져오는 파장 또는 물결,
한 사람의 죽음이 일으키는 세상의
새 리듬에 대해새 생각해보았다.
한 사람의 죽음은 세상을 리셋시키고 재가동시킨다.
사랑하는 사람을 산으로 모시기 전에
입관식을 지켜본 적이 있다.
나무 관 속에 망자가 들어가자,
마치 새로운 건전지를 끼워 넣은 듯 내가 알던 세상이
전혀 다른 리듬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슬프도록 경이로웠다.
그것은 좋거나 나쁘거나의 차원이 아니었다.
그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세상에 아직 죽은 이들 그리고 어린 이들과 함께 살아갈.”
<시인의 말, 2022년 봄, 김중일>
‘세상에 아직 죽은 이들’이라는 표현을 읽자니 ‘천년동안도’라는 재즈 카페의 이름이 떠올랐다. 기구하고 불온한 아이러니가 배어 있는 표현들이다. 아직 죽은 이들, 이 아니라 여태 죽은 이들, 이었다면 기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천년동안도, 가 아니라 천년동안에도 혹은 천년동안이라도, 였다면 불온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심코 발을 들여놓으면 도무지 발을 빼기 힘들다는 점에서 닮았다.
“‘다가올 밤은, 사실은 모두 같은 밤이다’ / 내일 밤은 오늘 밤이 녹아 물든 것이다 / 오늘 밤은 어젯밤이 녹아 물든 것이다 / 언젠가 반드시 지구의 마지막 밤이 올 텐데, 그 밤도 결국 지구의 첫날 밤이 물들일 것이다 // 앞으로 내게 다가올 밤들은, 그가 죽은 그날 밤뿐이다 / 오늘 나무 그늘 아래에는 오래전 봄밤에 죽은 그가 있다 / 지금도 나와 시간을 공평히 나눠 쓰는 사람이다” - <다가올 지난 밤들> 중
오늘 밤에는 나를 채근하기로 한다. 온기의 확산을 도모하는 것같던 대기는 잠시 주춤하기로 했나 보다. 숨을 고르는 대기 속으로 향하였던 발걸음의 회로를 비틀어야 했다. 가슴의 어디쯤을 절개하였다. 그곳에서 나온 숨과 그곳으로 들어간 숨으로 약도를 만들고자 하였으나 실패했다. 때마침 길을 잃은 것들과 조우하였다. 잠, 밤, 담,,, 날랜 고양이, 느린 강아지, 이족 보행의 죽음...
“귓가에 속삭이던 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연다. / 커튼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 너는 내일 아침에 또 보자는 약속도 없이 창문을 통해 시 밖으로 빠져나간다. / 너는 / 시 속으로 들어올 때와 나갈 때가 다른 사람 같다. / 시 밖에서 우리는 생면부지다.” - <만약 우리의 시 속에 아침이 오지 않는다면 ―‘시’라는 침실> 중
나의 손가락에 나의 손가락을 걸면 작은 날개가 생긴다. 어느 밤 나의 손가락에 나의 손가락을 걸면 오래전 나를 떠났던 작은 날개가 돌아오기도 한다. 나의 손가락에 너의 손가락을 걸거나 너의 손가락에 나의 손가락을 걸을 때는 좀처럼 생기지 않는 날개다.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그 날갯짓을 확인하기에 용이하다. 그 날갯짓을 본 것은 먼 과거이고 그 날갯짓의 소리를 들은 것은 더욱 먼 과거이다.
새들의 호주머니
새들이 자꾸 내 호주머니 속에 둥지를 튼다
내가 호주머니에 무심코 손 한번 넣었다가 빼는 정도의 시간을 머물며 먹고 자고 새끼를 낳고, 순식간에 날아간다
날아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네 손을 처음 잡았던 그 순간의 내 손처럼
언제든 미련 없이 날아가려는 듯, 그날의 새가 낳고 버린 내 손이
어느새 또 자라 호주머니 속에서 날개를 들썩인다
다급히 빠져나가는 내 두 손 때문에
바지 밖으로 딸려 나온 호주머니는 새가 두고 떠난 날개다
새들의 날개는 빈 호주머니다
새들은 호주머니를 채울 손이 없다
새들의 손은 이미 새들을 버리고 오래전 하늘 밖으로 날아가고 없다
자신을 버리고 간, 잃어버린 두 손을 찾으러
새들은 제 몸보다 커다랗고 텅 빈 호주머니를 밖으로 빼고 펄럭이며 오늘도 날아간다
모르는 사람을 따라간 적이 있다. 모르는 고양이를 따라가거나 모르는 새를 따라가기도 하였다.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고양이의 꼬리의 뒤를 밟은 이후로 내게는 세 마리의 고양이 생겼다. 두 마리가 아직 함께 하고 있다. 새의 그림자를 따라 첨벙거리며 개울을 건넌 다음에 물 공포증이 사라졌다. 나는 속도가 빠르지 않은 강쯤은 빠르지 않게 건널 수 있게 되었다. 바다에서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다.
“인간의 ‘몸’은 처음부터 ‘잠’으로 뭉친 반죽 덩어리 / 몸 속의 잠이 한 방울도 남김없이 완전히 빠져나와 너의 몸을 갑옷처럼 단호하고 단단하게 감싸던 그날 /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같이, 네가 나무 관 같은 잠 속에 들어가버린 날 / 내 안에 사는 잠은, 슬프고 동시에 두려워 / 내 몸 안 가장 깊은 곳으로 꼭꼭 숨었다 / 그날 이후 내 잠은 겁먹은 짐승처럼 몸 안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 쉬이 나는 잠들지 못한다” - <잠의 몸 ― 관념적인 시·2> 중
잠에는 몸이라면, 밤이라면 봄, 그렇다면 담에는, 담에는, 담에는, 다음에 짝을 맞춰보기로 한다. 나는 최근 잠이나 몸과 유화적이다. 그 친근함으로 밤은 짧아지고, 발가벗겨지는 아침을 자주 목격한다. 봄은 서둘지 않는다. 그저 갑작스러울 뿐이다. 봄은 담을 타고 넘어오기도 하고, 봄은 담을 돌아오기도 할 것이다. 여하튼 우리는 두 번 어리둥절할 것인데, 한 번은 나타남으로 또 한 번은 사라짐으로 그러할 것이다.
김중일 / 만약 우리의 시 속에 아침이 오지 않는다면 / 문학과지성사 / 192쪽 /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