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치치 Mar 17. 2023

나이 든다는 것

오늘의 인생(20230317금)

아침에 넷째의 소아과 예약이 되어있었다. 혜경스의 컨디션 난조로 내가 대신 갔다. 나는 당연히 내가 며칠 전에 갔던 이비인후과에 예약된 줄 알고, 접수하고, 독감 문진표까지 작성했다. 잠시 후 넷째를 진료 의자에 앉았는데, 의사 선생님이 최근 병원에 방문한 이력이 없단다.


“최근에 우리 이비인후과에서 진료 본 적이 없는데요?”

“네?”

“작년 12월에 있고, 최근에는 없어요.”

“그래요. 잠시만요.“


나는 넷째를 다시 유모차에 태우고,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급하게 혜경스에게 전화를 하니, 이비인후과가 아니라 소아과란다.


‘아뿔싸.’


다행히 예약한 소아과는 이비인후과 아래층에 있었고, 나는 넷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잽싸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소아과에 도착했다. 다행히 예약한 시간에 늦지 않았고, 독감 주사까지 잘 맞았다. 진료를 마치고, 유모차를 밀고 집에 오면서 생각했다.


’나이가 들었나 보다. 어쩔 수가 없구나. 이제 조금씩 버벅대는구나.‘


집과 회사에서도 조금씩 버벅대는 일들이 생기고 있다. 회사의 신발장에서 신발을 손에 들고 있으면서 신발을 찾는다든지. 차량 유류 보고를 하는데, 쉬운 덧셈을 틀려서 문서가 반송된다든지. 음식물 쓰레기 버리고, 쓰레기통을 안 가져와서 잃어버린다던지.


나이 든다는 게 이런 건가 싶다. 그러나 나이가 드니, 버벅대지만 한 가지 좋은 점을 발견했다. 나이가 조금씩 드니, 상대방을 향한 이해의 폭이 깊어지는 게 느껴진다.


’화가 날 만한 상황에서 상대방이 왜 그랬을까?‘

’설거지하면서, 혜경스가 넷째와 아이들 돌보느냐 힘들었겠군.‘


아직까지 모든 일에 다 그렇지는 않지만, 분명히 전보다는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생겼다. 전에는 화내기 바빴는데.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듯 나이가 드니 내 고개도 상대방을 향해서 조금씩 고개 숙이는 법을 배워가는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아이 같은데,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사실 난 어른 같지만 아이겠지.



이전 19화 오늘도 어김없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