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나를 전혀 보호해 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7~8년을 다니다가 퇴사한 남자 직원은 소위 ‘똘아이’ 짓을 많이 함에도 위에서는 변화를 주지 않았다. 서로의 업무 분야가 있음에도 나의 업무까지 좌지우지하려 했고, 회계 일까지 맡고 있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영수증 관리, 현금 관리, 재고 관리 등등 살림살이를 꼼꼼히 챙겨야 했지만, 비협조적이었고 더 나아가 거짓말을 하고, 터무니없이 돈을 지출하고, 회사 물품을 빼돌리고, 남 탓하기 급급하고……처음 겪어 보는 사람의 유형이었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했다. 과묵하게 넘기기도 하고, 좋은 마음으로 경청해 보기도 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 보기도 하고, 하지만 이런저런 방법은 먹히지 않았고, 결국 ‘나도 똘아이가 되자’ 하는 마음으로 터프하게 그를 대했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방법을 취했다. 그랬더니 나를 좀 건드리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 또한 피폐해져 갔다. 몇 년 만에야 방법을 터득했다고 해야 할까. 그사이 나는 수많은 과의 병원을 들락날락했다. 위염이 생기고, 위에 용종이 생겨 떼어내기도 하고, 심장이 늦게 뛰는 듯 호흡이 힘들기도 해 심전도 검사도 하고, 이석증에 세상이 핑 돌기도 하고, 스트레스로 한의원에 가서 열을 내리기도 하고, 탈모 증상에 한의원에 가서 머리에 대침을 꽂기도 하는 등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 당시 아래 여직원이 있었다. 현재도 다니고 있다. 그런데 남직원보다 이 사람에게 서운함이 더 컸고, 짜증이 더 많았다. 내가 5년간을 남자 직원으로 인해 고생 중일 때 자신은 중간을 지키겠다고 하듯 곁을 내주지 않았고 선을 그었던 사람이었다. 오히려 남자 직원이 나와 같은 팀장이었어도 전체 관리를 하고 있었던 수석팀장이었기에, 나와 그 사이에서 줄타기하다가 그에게 ‘붙은’ 그녀였다. 그러다가 남직원이 점점 이상한 행동을 하며 위로부터 눈 밖에 나고 자신에게도 피해가 생기기 시작하자 나에게 ‘붙은’ 사람이다.
일을 제대로 주지 못하던 남직원과 달리 여직원에게 나의 일을 분배해 같이 업무를 보았고, 남직원이 상관없는 일을 시켜 해도 되지 않는 야근이나 퇴근을 못 하게 하는 경우는 발 벗고 나서 지켜주기도 했다. 그렇게 여직원과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남직원과 여직원의 공통점이 있었다. 자기 말을 하지 않고, 남의 말만 듣고 있다는 점, 내성적이나 내성적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음흉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회사 대표의 미래가 밝기에 직장에 계속 잘 붙어 있을 거다’라는 식의 생각을 하고 있었던 두 사람이었다.
나와는 성향이 너무도 달랐기에 초반에 내가 선호하는 유형의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렀다. 남직원은 퇴사했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서 같이 일을 잘하고 있다. 하지만 그 여직원은 일의 속도만 빠르지 매번 실수가 많아 다시 체크해 줘야 하고, 디자이너임에도 자기의 줏대나 의견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경우가 없어 다시 뒤집어야 하는 경우도 많고, 일일이 체크해 줘야 한다. 하지만 자기의 부족한 점을 생각하기보다는 남 탓하기 급급한 친구다. 업무를 맡아 일을 진행할 때도 자기 이름이 들어가는 경우는 열심히 하지만, 자기 이름이 들어가지 않는 경우는 불성실하다. 자기의 위신에 흠집이 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런 경우에만 최선을 다하는 친구다.
‘아! 정말 에너지가, 진이 빠진다!’
작년 12월부터 내게도 그간 참아왔던 힘듦이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했다. 이혼과 건강 문제 등으로 내 체력이 바닥이 나자 일일이 챙기는 것에 화가 났다. ‘왜 당신은 의견 없이 일하면서 그 일에서 잘못이 생길 경우 뒤로 숨는가?’ 하는 마음에 화가 났다. 남직원과의 줄타기에서 남직원에게 붙더니 자기에게 피해가 가고 남직원의 자리가 위태하니 금세 나에게 붙은 그녀가 내 뒤로 숨고는 나를 총알받이로 삼았던 그때의 상황이 떠오르며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정말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다’ 하는 생각이었다.
며칠 전 그녀를 보는데, 정말 여기를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참아 온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갑자기 사무실에 있던 책과 신발 등 내 짐을 싸 퀵을 불러 집으로 보냈다.
“나는 사직서를 내려고 한다. 잘 있어라. 부장님께 말씀드리려고 한다” 하고는 4시 반쯤 퇴근을 했다. (올해 업무 관련) 작업 중에도, 그녀에게 “10년이다. 실력에 대해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다.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것인가?” 하고 혼을 내기도 했다. 책임감과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부탁보다는 화로 표현한 것이 맞을 것이다.
상담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의 답답함을 적절히 표현하지 못하고 ‘화’의 형태로 표현하여 동료들을 불편하게 하는 나의 이런 모습이 마치 상담 중 나를 직면하고 싶지 않은 순간을 맞닥뜨린 기분이 들었다.나를 직면해야 하는 현실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오롯이 나를 느끼고 봐야 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을 나에게 적용해 인싸이트가 오기를 바라면서 그래도 좋은 시간이 되어 주겠지 하고 생각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런 내 모습을 보기 위해 며칠 전 교육분석 상담 선생님께 말씀드렸고, 나는 나의 감정조절에 대한 부정적인 면면을 살펴보자는 피드백을 기대하며 상담 시간을 맞았다.하지만 선생님의 메시지는 전혀 달랐다.
“OO 씨, 조심하면 좋겠어!”였다.
오랜 시간 나를 봐 왔던 분이었기에 이 회사에 대한 문제점, 그 속에서 나의 업무 강도, 나의 포지션 등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에,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셨다. 원래 회의 때 자기 말 안 하고 있는 친구들이 나중에 고소 고발하고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메일로 일을 주고받고 그 친구에게 공적으로만 대하라는 내용이었다. 무능한 친구인 게 맞고 그로 인해 다른 동료도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인데 회사에서 그것을 관리해 주지 않으니 답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중요한 것은, 나는 내 속을 다 얘기하기에 너무 잘 보이는데, 그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이브하게 현실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나를 보호해 주지 않는 위험한 모습으로 보인다는 내용도 있었다.
상담 선생님의 어찌 보면 현실적인 조언을 듣고 나니, 누군가가 나를 고소하는 상황을 상상하니 두렵고 무섭기까지 했다. ‘아, 나를 지켜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부분을 간과하지 말고 제대로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회사는 퇴사하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 내가 있을 수 없는 곳이다. 내가 죽어 가는 곳이다. 나를 보호해 주지 않는, 나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곳. 내가 나의 가치를 살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