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 직면해야 한다

감정 알아차림<2022. 3. 9>

by 세만월

3월 3일 맹장염 수술을 했다. 두 달 전부터 복용하기 시작했던 류머티즘 항생제가 맹장염을 지연시켜, 맹장염 수술 날짜를 미리 정해 놓고, 스케줄에 맞춰 입원해 수술할 수 있었다. 사실 맹장염이 있다는 사실은 한 달 전 건강검진을 통해 난소에 혹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산부인과 복부 CT를 찍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이었다.


3월 25일 오른쪽 난소 제거 수술에 마음 아파하고 있었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서 마음을 다잡고 차분해진 상태였다. 다만 난소암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고, 설사 그렇더라도 담담히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인 상태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맹장염 수술이라니! 복부 CT 결과를 듣기 위해 산부인과 외래진료 중, 의사 선생님에게 "난소 제거 수술 말고도 맹장염 수술도 하셔야 해요"라는 말을 듣고, “네?” “맹장염이요?” 하고 반문했다.


그냥 웃었다.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진료실을 나서 외부 대기석에 앉자마자 마치 비련의 여자 주인공마냥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륵 뺨을 타고 흘러 마스크 윗부분을 적셨다.


“주여!”

한때 교회를 다니며, “주여, 주여, 도와주소서!” 하며 눈물의 기도를 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교회에 발을 끊은 지도 오래다.


작년 11월 말 갑작스럽게 이혼이 진행되었다. 1년 전부터 남편과의 관계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집에서 2학기 공부를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주말에 가 있는 친정집에서 밤 시간만이 공부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각종 발제 준비와 시험 준비, 리포트 등을 초집중하여 다음 날 아침이 오기 전까지 무조건 끝내야 했다. 회사에서는 분기별로 책이 나오기 때문에 작업해야 하는 교정지도 만만치 않았다. 12월 14일 심리진단 및 평가 수업의 기말고사를 보았고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30분 후, 지난 시간 끝내지 못한 우리 조의 심리검사 사례분석 발제를 해야 했다. 발제 중에 남편에게서 사무실로 전화가 수 차례 걸려왔다. 수화기를 들지 않으면 사무실로 쫓아올 것만 같은 기분에 발제를 하면서 티 나지 않게 수화기를 들고 바로 끊고를 여러 차례 반복해야 했다. 내가 사무실에 있다는 것을 남편에게 알려주기 위해. 무사히 기말시험과 발제를 마치고,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가 그다음 날 있을 이사 준비를 했다. 그런 중에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변호사 사무실에 방문하여 자초지종을 설명드렸고, 며칠이 지나 여러 장의 기본 서류들을 준비해야 했고, 또 며칠이 지나 진술서와 호소문을 작성해야 했다. 몇 주간 남편에게 문자와 전화가 지속적으로 왔다. 모든 것들이 신경 쓰였다. 남편의 글만 보아도 하루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예민해지고 우울해지고 긴장되기도 하고 짜증도 나고 여러 부정적인 감정들로 기분이 가라앉았다. 일이 되지를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대출받아 원금 이자를 전부 내가 부담하고 있어서, 그 아파트에서 나와 이사를 했지만, 재산분할을 통해 현실적으로 자금이 융통되기까지 갑작스러운 생활고까지 겪어야 한다. 당분간이 될지 더 길어질지는 이혼 소송이 어떻게 끝냐느냐에 따라 결정될 뿐이다. ‘이번 학기는 정말로 휴학을 해야 할까?’ 하는 착잡한 심정으로 몇 주간 고민의 고민을 이어갔다. 변호사 선임비를 마련하느라 긁어모을 수 있는 돈을 탈탈 털었기 때문에 은행에서도 더 이상 대출을 받기 힘들다는 결과를 들었다. “제2금융권으로 가보세요”라는 은행 창구 직원의 말을 듣고 그 길로 바로 새마을금고를 갔으나, 그곳에서도 안 된다는 입장만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카드론 대출을 알아봤으나 그것도 대답은 No였다. 직장 동료의 학자금 대출을 알아보라는 말을 듣고, 신청을 했으나 오랜 시간 승인이 나질 않았다. 수강 신청을 하고 며칠이 지나서야 대출 승인이 떨어졌고, 등록금을 낼 수 있었다.


10년간 회사를 다니며 여름-겨울 휴가 외에 3일간 연장으로 연차를 써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 3주 만에 8kg가 빠졌다. 식욕이 사라진 지도 오래되었다. 먹는 기쁨을 느낀 때가 언제였는지 잊은 지도 오래다. 의욕이 나질 않았다.

부장님, 죄송하지만 3일간 휴가를 다녀와도 될까요?”

나의 개인사를 부장님이 알고 있던 터라 선뜻 받아들여졌다. 부장님에게 감사했다.


“아! 이런 감정들을 떨쳐내고 새로 시작하자!” 하며 오랜 시간 받지 않고 있던 건강검진을 신청한 거였다.

“대학병원 산부인과를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친정집 읍내 개인병원 의사 선생님이었다.

“난소에 7.16cm짜리 혹이 있는데, 위험해 보입니다”, “난소 외에 맹장염도 있으세요. 맹장염 수술도 해야 합니다.” 대학병원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었다.


언제 끝이 날까? 지금까지 만 41년간 쉽게 쉽게 가는 인생은 아니었지만, 타로카드의 ‘타워 카드’처럼 번개 맞아 타워가 붕괴되듯, 땅에서 흔들고 하늘에서 내리쳐 정신없이 난타당하는 적도 처음이었다. 몇 개월 간의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 버텨내기 바빴다. 하루를 살아내고, 하루에 일어난 일들을 처리하면 다행이었다.

맹장염 수술을 마치고 무사히 퇴원했다. 배가 너무 아파 한 걸음 내디딜 수도 없어 간호사 분에게 이틀 정도 입원을 더 하고 싶다고 했으나, 바로 의사 선생님이, 괜찮을 거다, 항생제도 주고 하니 호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퇴원을 해도 된다는 얘기였다. ‘무심도 하여라. 나는 정말 아픈데…….’

퇴원을 하면서 내가 꼭 해야 하는 환자로서의 미션이 있었다. 빨간 소독약과 방수밴드를 약국에서 사고, 집에 가서 하루에 한 번씩 꼭 상처에 소독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으~~~, 아파 죽겠는데, 그 상처 부위를 건드려 가며 밴드를 떼고, 그 위에 소독약도 발라야 하다니. 병원에서 해 주면 얼마나 좋아.”

밴드를 떼고 붙이는 과정에서 상처 부위를 건드리면 너무나 아플 것이 뻔한데, 어떻게 하랴! 싶어 도저히 자신이 없어 하루를 그냥 넘겼다.


직장 동료와 톡을 하던 중에, 아직 소독을 못 하고 있다, 상처 부위를 본 적도 없는데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면 더 아플 것 같아 못 보겠다고 톡을 보내는 중에 깨닫는 바가 있었다. 바로 직면! 마치 상담 과정 중에 내 문제에 직면하기 싫어 상담을 회피하고, 상담가가 묻는 질문이나 상담가가 이끄는 흐름을 거스르기도 하고, 어쩔 땐 아예 말도 없이 잠수를 타버리기도 했던 예전 상황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어떤 시기가 오면 직면을 할 수 있게 된다. 그 직면을 통해 나의 상황이 수용되면서 나의 아픔이 치유되었다.


‘이렇게 있으면 또 하루가 지난다. 그럼 이틀째 나는 소독을 않는 것이다. 오늘 밤, 지금, 소독을 해야 한다.’

조심스럽게 병원에서 퇴원 당일 오전에 붙여줬던 세 장의 밴드를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빨간약을 조심스럽게, 스테이플러 알이 꽂혀 있는 세 곳의 상처 부위를 바로 앞 전신 거울을 통해 처음으로 마주했다. 생각보다 징그럽지 않았다. 그리고 그전까지 상처 부위가 세 곳인지도 몰랐다. 배꼽 주변 하나라고만 생각했다. 새로 산 방수밴드를 붙이며 소독을 마쳤다.


참으로 뿌듯했다. 직접적으로 느끼는 고통의 순간에서 내 상처를 놔두지 않고 용감하게 마주했다는 기분에서였다. 정말로 수술 직후의 계속되는 고통이 조금 잦아든 것 같았다. 그리고 정확하게 나의 상처를 보고 명료해졌다. 상처 부위는 한 곳이 아니라 세 곳이었고, 생각보다 실밥은 길지 않았고, 크지 않았고, 잔혹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칼을 대고 피를 보면서까지 나에게서 끊어낼 것들을 정리시키는 신의 가호를 느끼며 마음의 안정과 함께 감사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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