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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딸 Oct 23. 2020

맹자 엄마를 생각하며

진주 갔다 오는 길에 아들 하숙집에 잠시 들렀는데 처음에는 방이나 좀 닦아줄 생각이었다. 집도 오래되고 장마 통이라 그런지 대문 들어서면서부터 퀴퀴한 냄새가 참 역겨웠다. 시어머니 말처럼 “그 망할 놈의 여편네”가 청소라도 한 번씩 해주면 이렇게나 고약시러운 내는 안 날 텐데, 참말 못된 년이다.


아들 말로는 새벽같이 일어나 잠이 덜 깬 고3들이 하숙집에서 먹는 아침을 굶을지언정 그 달콤한 잠을 어찌 양보할까마는 그중에 어떤 놈은 그래도 충실하게 밥상 앞에 앉는 수도 있단다. 집에서 다녀도 마찬가지겠지만 무성의한 하숙집 여편네가 차려내는 아침밥상이 뭐 그리 입맛 당기는 게 있을까. 늦은 밤 독서실에 꽂혀 있을 아들놈이 어떤 때는 안 됐다는 생각이 들어 문자로 안부를 물으며 늘 하는 말이 “우짜든지 세끼 밥은 꼭꼭 챙겨 먹어야 한다. 니 밥 안 묵어봐야 그 하숙집 여편네만 좋은 일 시킨다” 같은 말이다.


고3 아들 때문에 온 집이 비상이 걸리고 신경이 쓰여 힘들다고 말하는 아줌마들을 보면 아들에게 좀 미안한 마음도 든다. 제가 좋아 진주로 유학을 하러 갔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부모와 함께 지내는 친구들이 부러운 모양이다. 얼마 전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아는 분이 내 아들더러 힘들겠다고 얘기하자 자식이 대뜸 하는 말이 아직도 목에 걸려 있다. 밤늦게 독서실에서 하숙집으로 들어서면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기다렸다가 어깨도 두드려주며 고생했다고 간식도 만들어 준다던데 그런 게 부럽다고 했다. 저는 집 앞 편의점 김밥이 고작인데. 그래서 어떤 때는 고생한다고 안부를 물어주는 편의점 아줌마가 더 친근하단다. (짜아식이….)


독서실 가고 없는 빈 하숙방이 알싸한 머슴애 냄새로 낭자하다. 먼지가 켜켜이 쌓이고 방바닥엔 머리털인지 뭔지는 모를 것이 시력이 엉망인 내 눈에 보일 정도니, 생각할수록 주인 여편네가 괘씸하다. 제 새끼도 학교 다니는 놈이 있다더니만. 밥을 해주든 빵을 주든 벅수같이 주는 대로 먹고 한 놈도 음식 투정이라곤 하지도 않는 관심도 없는 머슴애들이 학교 가고 나면 종일 컴퓨터 앞에 그 살찐 몸뚱이로 앉아 고스톱이나 치고 채팅이나 하는 게 일상이라는데 무슨 하숙생들 방 청소가 생각날까. 서울 조카가 있는 하숙집 아줌마는 일 년 열두 달, 비 오나 바람 부나 쉬는 날도 아픈 날도 심지어는 외출도 거의 없다는데 망할 여편네는 걸핏하면 주말 외박 아니면 장거리 출장을 간다고. 하숙생 끼니는 돈으로 해결하고 말이다. 맘 착한 우리 아들자식을 비롯한 나머지 자식들이 이젠 아주 그 일에 익숙해 협조도 잘한단다. 벅수 자식들. 저 어매 약발 받는 줄도 모르고 자식이 신나게 떠들어대면 기가 찬다.


고3은 고3인가 보다. 자식이 요새는 자주 엉뚱한 소릴 해대니 간이 떨어질 뻔한 일이 잦다. 최악의 시기인가. 그만큼 견디기 힘들다는 말이겠지. 죽고 싶다는 둥 자살하고 싶다는 둥 별의별 소리를 다 해쌌는데 나중엔 듣다가 화가 난다. 나는 우리 엄마 속을 이렇게 썩이지 않았는데. 참말 모범생으로 고3 시절을 보냈는데. 비단 우리 아들뿐이랴. 힘들어하는 아들놈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든다. 거쳐야 할 과정치곤 참으로 고통스럽게 보이는 아이들이 왜 이리 안되어 보이는지.


하려던 방 청소는 못하고 이부자리만 걷어 왔다. 냄새가 나서 아예 속통까지 빨아 보낼 참으로. 터골 동네 맑고 깨끗한 몰에 담가 발로 지근지근 밟아 오래 묵은 하숙방 냄새를 싹 날려, 여름 장맛비 사이사이 눈부신 볕에 뽀송뽀송하게 말려볼 참이다. 잠시라도 깨끗한 이불 냄새에 파묻혀 곤한 잠을 잘 우리 아들놈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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