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타인의 이익 사이
자기 보존 본능과 이기심 없이 베풀기만 하면 정도를 지나치기 십상이다. 성공한 기버는 받는 것보다 더 많이 주되 자신의 이익도 잊지 않으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베풀지 선택한다. - 애덤 그랜트 / 기브 앤 테이크 -
또 하나의 제안발표가 있었다. 주최측에서 마련해준 대전의 모 호텔 세미나실에는 10여 명의 심사위원과 관련자들이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심사위원장으로 보이는 분이 준비되었으면 발표를 시작하라고 주문을 한다. 수없이 제안발표 현장에 섰지만, 어제처럼 긴장되고 떨리던 적은 없었다. 입안 건조증으로 발표자로는 최악의 조건을 가졌지만 중간 중간 눈치건 물을 마셔가며 무난하게 진행하는 것도 유독 그날은 더 긴장되어서 그런지, 물을 평소보다 더 많이 필요로 했다.
20분의 발표와 10분의 질의응답 시간이 짧을 정도로 그날 발표현장에 참석한 나를 비롯한 2명의 배석자들은 최선을 다했다. 50장이 넘는 파워포인트 장표를 20분 내에 압축하여 꼭 필요하고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더군다나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많을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건 욕심이다. 평가하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심사위원으로 참석하시는 분들이 모두 전문가들은 아니므로 더욱 전달하는 메시지가 발표자 위주로 되면 안된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끝나고 나면 아쉬움이 많다. 그때 이렇게 대응했으면 어떨까? 왜 좀 더 적극적으로 호소하지 못했지, 좋은 사례가 있었는데 충분히 활용을 하지 못했네, 등등 모든 것이 끝나고 난 이후 복기 하는 과정에서 아쉬움은 항상 남는다. 상식 밖의 질문, 자질이 떨어지는 질문에는 더더욱 현명한 대응이 필요하다. 쉽고, 명확한 사례 중심으로 대응해야 한다. 알면서도 현장에서는 잊고, 나중에는 생각이 난다. 평소답지 않게 컨디션도 엉망이었다. 오랫동안 서 있어도 다리에 경련이 올 정도는 아니었는데, 밤새 수 차례 경련이 오고, 이동하는 지하철 내에서도 서 있기가 불편해서 힘들어 하는 나를 본 앞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의 헌신적 양보에 냉큼 받아 먹기도 했다.
탈진, 나에게도 이런 단어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일주일 이상 야근과 주말작업, 심지어 마지말 날은 날밤을 새고, 제안마감일 5분을 남기고 겨우 마감을 할 정도로 공을 들이고, 사흘만에 발표를 했으니, 나로써는 연일 강행군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전에서 올라오는 내내 온 몸에 힘이 없었다. 속은 메스꺼움으로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었고, 하루종일 커피와 간단한 토스트로 견디고 있음에도 배는 고프지 않았다. 제대로 신진대사가 작동되지 않은 것이다. 집에 와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어만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이 나이에 사서 고생하고 있는가? 이제 겨우 환갑을 넘긴 나이지만 아직 해야 할 일도 많고, 남은 여생도 짧지 않다는 것을 알겠는데, 꼭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 사실 나는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이렇게 고생을 자초하는 것은 아니다. 딸린 식구들 때문이다. 나 혼자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은 이미 내정되어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나를 믿고 같이 일을 하고 있는 어린 식구들, 그리고 동업자들의 생계를 어느 정도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이기심 없이’ 베풀기만 하는 기버는 타인의 이익을 중요시하고 자신의 이익을 하찮게 여긴다. 그들은 자신의 욕구를 돌보지 않고 타인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바치며 그 대가를 치른다.
- 애덤 그랜트 / 기브 앤 테이크 -
애덤 그랜트는 그의 책 ‘기브 앤 테이크’에서 나의 이익보다 타인의 이익을 더 중요시 여기는 ‘기버’의 유형에 대해 설명한다. 특히, 성공하는 기버와 실패하는 기버에 대해 정의하는데, 성공을 거둔 기버는 단순히 동료보다 더 이타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고 말한다. 즉, 타인의 이익을 위해 마냥 베풀기만 해서는 실패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기버와 테이커의 구분을 ”당신은 자신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 중 어느 것을 더 중요시하는가?“라는 질문으로 구별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진정한 기버는 공동의 이익 즉, 타인의 이익을 위해 일하데 동시에 자신의 이익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게이츠 재단의 이사장인 ‘빌 게이츠’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세계 경제포럼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인간에게는 이기심과 타인을 보살피고자 하는 두 가지 강한 본성이 있으며, 그 두 가지 동력이 뒤섞인 사람이 가장 큰 성공을 거둔다.“ 그의 말을 추론하면 자신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은 서로 독립적인 동기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즉 남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기버라도 자신의 건강을 돌보면서 타인을 배려해야 연료를 완전히 소진하는 일이 없이 더 크게 번영할 수 있다는 뜻이다.
카네기 멜론의 심리학자 ‘비키 헬지슨’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자신의 행복을 고려하지 않고 계속 베풀기만 하면 정신적, 육체적 건강를 해칠 위험이 있음을 밝혀냈다. 타인에게 관심을 쏟는 만큼 자신의 행복도 돌보면서 베풀면 건강을 헤치지 않는다. 자신과 타인의 이익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사람이 더 행복해하고 삶의 만족도도 더 크다는 결론이다. 이번 제안발표의 결과와 상관없이 당분한 몸을 추스르며 나에게도 책임감이란 굴레에서 자유를 선물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