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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이 Apr 11. 2024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 그 너머를 향해

올해 1월, 발리로 여행을 떠났다. 꽤 오랜만에 떠나는 장기간의 여행이었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이것저것을 계획했다. 여행지에 도착하기 전에 촘촘히 계획을 짜두는 성격은 아닌지라 그날그날 뭘 먹고 어딜 갈지를 찾아봤다. 그러다 문득 알아차린 것이 계속해서 다음 일정을 찾아보는데 꽤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공들여 찾아온 곳에서 온전히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그다음은, 그다음은? 하고 끊임없이 뭔가를 찾아보고 있었다. 숙소에 있을 때도, 우붓의 거리를 걸을 때도 어느 음식점을 가고 어느 카페를 갈지, 어디를 구경하러 갈지 계속해서 휴대폰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물론 계획하는 것도 필요하고 여행 내내 휴대폰만 붙잡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토록 에너지를 쏟았던 것은 내 마음 가운데에 '작은 것 하나도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처에 있는 식당 중에서 어딜 가야 후회하지 않을지, 어딜 가야 당황하지 않고 가장 안전한 선택지가 될지 하는 식으로 밥 한 끼 식사를 하는 데에도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빠르게 작동했다. 생각해 보면 밥 한 끼 맛없게 먹었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맛없는 커피 한 잔을 마셨다고 그날 하루를 망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조금도 손해 보고 싶지 않은 마음, 후회하고 싶지 않은 마음, 안전한 선택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일인가. 아무런 실패도 하지 않고 정말 무결한 선택만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가정인데도 불구하고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은 삶의 여러 영역에서 나를 꽁꽁 동여맨다. 밥 한 끼, 커피 한 잔조차 실패하지 않으려 애쓰는데 하물며 다른 것들은 어떨까. 실패하지 않기 위해, 내가 정해놓은 어떤 라인 밖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럽게 살피는 모습이 떠오른다.


사진: Unsplash의 Johen Redman


실패하지 않는 안전한 선택지만 고르는 것보다 실패해도 기꺼이 툭툭 털고 일어나 다른 선택지를 찾을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실패하지 않으려는 두려움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다거나 내가 추구하는 의미나 가치와는 다른, 예상 가능한 뻔한 답안지 안에서만 맴도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자꾸만 실패하지 않으려 스스로를 묶어두는 것 같은 답답한 마음이 들 때면 찾아 읽는 글이 있다. 허지원 교수님의 '실패에 우아할 것'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기대하세요. 내일의 날씨, 이따가의 점심메뉴, 오랜만의 시내 외출, 개봉할 영화와 새로운 드라마.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실패에도 다시 일어나는 힘은, 지치지 않는 기대에서 나옵니다. 오늘 점심으로 먹은 달걀샌드위치가 형편없었대도, 저녁으로 먹을 소고기덮밥은 괜찮을 수 있습니다. 이번 학기의 학점이 개판이었대도, 내일 보기로 한 영화는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취미는 '기대하는 것'. 백 번을 실망한대도."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다음을 기대하고 꿈꿀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싶다. 인생은 결코 한 번의 선택으로 단정 지어질 수 없기에. 정말 강한 사람은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실패 없는 선택만 반복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패하더라도 그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기에, 오늘도 지치지 않고 또 다른 기대를 품어보기로 한다.


*허지원 교수님의 '실패에 우아할 것' 전문

실패에 우아할 것. < 불안·공포증·강박증 < 삶과 마음 < 칼럼 < 기사본문 - 정신의학신문 (psychiatric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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